[까칠한 맛읽기]파스타의 세계

우리는 언제부터 파스타란 음식을 먹게 됐을까. 지금은 식당에서든 집에서든 흔히 먹는 음식이 되었지만 돌아보면 비교적 근래에 자리 잡은 풍경이지 수십 년 이상까지 된 것은 아니다. 국내 최초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1960년대에 생겼다고는 하나 대중적으로, 그리고 오직 빨간 토마토소스의 '인스턴트' 스파게티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한 시점은 2000년대 들어서라고 보는 게 맞다.

왠지 파스타 하면, 고급 레스토랑에서 나름 격식을 갖추고 연인 등 소중한 사람과 함께 '엘레강스'하게 먹어야만 할 것 같다. 하지만 파스타는 우리가 집에서 밥과 반찬·국을 먹듯, 혹은 국수나 라면을 먹듯 편하게 즐기는 이탈리아인들의 일상식이자 가정식이다. 이탈리아나 프랑스식 코스 요리에서 전채와 고기·생선 요리 중간에 먹는 음식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파스타가 조연이 아닌 주연으로, 일상식이 아닌 고급 음식으로 이토록 우대받게 된 건, 순전히 해외 무슨 무슨 요리학교나 유명 식당에서 요리를 배워왔다는 '셰프'님들 덕분인 듯하다.

◇흥건한 국물은 파스타의 적

파스타에는 수많은 면 종류가 있으며, 우리에게 익숙한 '스파게티'는 그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 정도는 이제 누구나 아는 상식이겠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은 어떨까. 당신은 파스타를 무슨 맛으로 먹는가? 새콤달콤한 토마토소스 맛? 아니면 느끼하고 고소한 크림소스 맛? 그도 아니면 이런저런 국물 맛?

홍합 파스타

물론 취향은 그 어디로도 향할 수 있으나 항상 '기본'은 있어야 하기 마련이다. 아무리 반찬이 맛있어도 나쁜 쌀로 아무렇게나 지은 밥과 함께라면 식사를 망칠 수밖에 없듯 파스타의 기본은 어디까지나 면이다. 잘 삶은 질 좋은 면이라면 마늘과 올리브유, 그리고 약간의 소금과 후추(물론 이들도 질이 좋아야 한다) 정도만 있어도 훌륭한 파스타 요리가 될 수 있다. 이른바 알리오 올리오(aglio olio, 마늘오일파스타라는 뜻). 구수한 면과 알싸한 마늘이 부드럽고 고소한 올리브유와 어우러져 그야말로 중독성 있는 맛을 내는 그런 파스타다.

토마토든 크림이든 소스 중심의 파스타가 아쉬운 건 이러한 맛의 포인트를 거의 '압살'하기 때문이다. 과하지 않으면 상관없으나 질척질척 끈적끈적 진하디 진한 소스는 면과 올리브유 고유의 맛을 거의 느낄 수 없게 한다. 새하얀 크림소스가 연상되는, 카르보나라는 그중에서도 대표적으로 왜곡된 파스타다. 음식비평서 <외식의 품격>의 저자 이용재 씨에 따르면 카르보나라는 원래 탄광 광부들이 간편한 식사를 위해 갓 낳은 신선한 계란과 치즈, 파스타만으로 만들어 먹던 음식이다. 한데 어찌된 일인지 국내에는 계란이 아닌 크림소스 범벅이 카르보나라가 되었다. 유독 크림소스를 좋아하는 분도 있겠으나, 싱싱한 계란과 구수한 면의 조화라는 기본은 전혀 즐기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고등어 파스타

소스 중심의 파스타는 급기야 점성은 하나도 없는 흥건한 국물 중심의 파스타로까지 퇴행을 거듭하고 있다. 유독 국물을 좋아하는 우리 식성을 배려한(?) 파스타인 셈인데, 이는 최악 중에서도 최최악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파스타 면은 우리가 흔히 먹는 칼국수, 짜장면용 밀가루 면과 달라서 매우 단단한 밀(듀럼밀)로 만든다. 따라서 삶으면 쫄깃하거나 부드럽지 않고 꼬들꼬들한 특성을 보이는데 이런 면은 국물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국물은 특히 파스타 면에 남아 있는 전분을 씻어내 면에 맛과 간이 배어들 수 없도록 방해한다. 파스타 면은 왜 다른 면과 달리 다 삶고 찬물에 헹구지 않는지 잘 생각해보시길. 면 따로 국물(소스) 따로, 맛없는 파스타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신선한 재료와 면의 조화

모든 면 요리가 그렇듯 파스타 역시도 면과 부재료, 소스를 어떻게 조화시키는가가 생명이다. 수많은 방법이 있고 난이도도 천차만별이지만 결국은 기본으로 돌아간다. 제철의 신선한 재료.

파스타는 지중해를 낀 이탈리아 음식이라 그런지 해산물과 천상의 호흡을 자아낸다. 홍합이나 바지락, 모시조개 등을 이용한 봉골레(조개) 파스타가 가장 유명한 듯한데, 같은 해산물이라면 한계 따위는 없다. 굴과 멍게를 비롯해 성게, 오징어, 새우, 고등어, 생멸치 등 다양한 재료로 파스타 요리를 만들 수 있다.

굴 파스타

이들은 파스타 음식점의 '내공'을 가르는 대표적인 파스타들이기도 하다. 토마토나 크림 소스는 통조림 등 가공 제품에서 벗어나 직접 소스를 만들어내지 않는 이상 거기서 거기일 수밖에 없지만 이들 파스타는 어떤 재료를 썼고 재료를 어떻게 다루었느냐에 따라, 어떻게 잘 조리했느냐에 따라 맛이 천당과 지옥을 오가기 때문이다.

신선한 재료는 필수겠다. 다음은 이 재료의 맛과 향을 어떻게 살릴지 고민해야 한다. 해산물은 오래 조리하면 촉촉함은 사라지고 금방 말라비틀어지기 마련. 조개류는 마늘+올리브유에 볶다 입을 벌리면 잠시 뒤 꺼내주는 게 좋다. 그러다 나중에 면과 소스를 섞을 때 다시 넣어준다.

면 삶기와 육수도 중요하다. 면에 소금간이 배어들지 않으면 싱거우므로 반드시 삶기 전에 소금을 넣는다. 1리터에 1큰술 정도. 넓고 큰 냄비에 삶아야 달라붙지 않고 잘 삶기며 시간도 잘 지켜야 한다. 정 불안하면 삶다가 면을 먹어본다. 소스의 중심 재료이기도 하고 나중에 면과 소스를 볶을 때 농도를 맞춰주는 역할도 하는 육수는 면수를 주로 쓰지만 감칠맛을 더 살리려면 조개류 등을 이용해 미리 만들어놓는 것이 좋다. 닭육수도 자주 애용된다.

고등어나 굴, 멍게 등은 올리브유와 소금, 허브 등을 넣어 미리 몇 시간 정도 재어놓아야 한다. 그런 다음 역시 마늘+올리브유에 이들 재료를 센불로 볶다가 삶은 면을 넣어 같이 볶아 준다.

물론 토마토나 크림 소스도 나름의 매력이 있다. 하지만 무엇을 더하고 넣어도 천편일률적인 그 맛은 아쉬울 때가 많다. 바다향을 잔뜩 머금은 향긋한 굴과 멍게, 그윽하면서도 짭조름한 조개, 고소하고 묵직한 고등어나 생멸치…. 좀 더 풍성한 파스타의 세계에 함께하실 생각이 없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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