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페이스라는 의도적인 가면까지는 아닐지라도 세월이 어느 정도 흐른 후라면 제 바닥의 민낯 정도는 그만 드러내지 않을 법도 한데, 아직도 사람들은 첫인상으로 내 얼굴이 검은빛이라고 말하길 자주 한다. 어둡고 우울하다는 뜻이다.

원인과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자면 아마도 아주 어릴 때부터 '죽음'이란 것을 가장 민감하게 또 숱하게 경험해서가 아닐까 싶다. 자라오는 동안 이상하게도 집안에 유독 죽은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처음 뵌 것은 이미 돌아가신 후 영정사진으로였고 열 살 적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신 것을 기점으로 그 전에 삼촌 두 분이, 이후로는 큰아버지와 막내삼촌이 각각 사고와 병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불길한 죽음의 그림자는 최근 사촌들의 운명에까지도 하나 둘 어두운 빛을 드리우고 있다. 한번 씩 마치 혼자 살아남은 전쟁병사처럼 환멸감에 젖어들 때마다 나는 아직도 차가운 화장터 바닥에 혼자 남아 우는 열 살배기 아이다.

흰 눈이 겨울보다 먼저 왔다//안개처럼 흩어지는 흰 눈 속의 아버지 /마흔이 고비였다/깊은 잠 중간을 썰어버린 심장의 떨림/처음도 끝도 아닌 한가운데의 세계//서른아홉이 마흔을 넘지 못하고 토해낸 검은 피/흰 눈밭/임종을 앞두고 누군가가 우리를 불러냈다/배우지 못한 흰 눈밭/시간이 흘러 눈이 녹기도 하고 얼기도 하고 고랑을 만들기도 하고/미끄러운 흰 눈 고랑 사이를 열 살 박이 빨간 신발이 풀쩍풀쩍/저 눈을 밟으면 아버지는 없다//동네 한 바퀴를 돌아온 다음에도 놓지 않았던 숨소리/깩깩 우는 검은 피/내게 남긴 하얀 손/그저 절벽의 필사적인 등반/다만 별처럼 반짝이는 눈은 희뿌연 기억 속의 아버지//그렇게 겨울은 십이월보다 먼저 왔다

(나의 부족한 시, '흰 눈이 겨울보다 먼저 왔다' 중에서)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먼지나 연기같이 하염없이 사라져버리는 것에 많은 의미를 두고 산 것이.

아무래도 어릴 때 쓴 위 시에서처럼 '죽음'이란 것이 계기가 아닌가 싶다. 어느 나라 장례 풍습에는 유골을 모신 항아리를 침대맡에 평생 두고 살아간단다.

그렇다. 누군가의 말처럼 애도란 극복이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그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자리에서 침몰해버린 배다. 살아가는 동안 계속 머리맡에 두고 사는 유골항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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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삼십여 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늘 새것인 그 내 감정은 최근 어느 시사 잡지에 실린 단원고의 세월호 생존 학생 인터뷰에서 다시 불거졌다.

"친구 생각이 나면 몸이 푹 꺼집니다. 뜬금없이 그런 시간이 찾아와요."

/서은주(양산 범어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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