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해도 좋다…새로운 세상 만날 수 있다면

무모한 도전이었다. 하지만 녀석이라면 해낼 수도 있겠다 싶었다.

"형님, 저 서울 올라갑니다. 무사히 완주하도록 할게요."

그는 지난달 19일 이 메시지를 남기고 서울로 향했다. 목적은 서울∼마산 종단 마라톤이다. 하지만 그는 지난달 24일 출발 사흘 만에 발목 부상으로 이를 포기했다. 그래도 그가 사흘 동안 달린 거리는 180㎞에 이른다.

이효진(30·창원시 마산회원구). 나를 포함해 그를 아는 이들은 그냥 '진'이라고 부른다.

'목적도, 계획도, 준비도 불분명했으니까, 하지만 시작했고, 내가 마주한 수많은 순간은 좋았다.'

진은 이렇게 생각하며 완주 실패 아쉬움을 달랬다. 캐나다에서 평범하게 직장 생활을 하는 그는, 요즘 일이 있어 부모님이 계신 마산에 와 있다. 한국에 온 김에 국토 종단 마라톤에 도전하기로 한 거였다. 서울로 떠나기 전 진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뚜렷한 계획과 목표는 없지만 또 다른 도전을 꿈꾸고 있는 이효진 씨.

"한국에 오기 전에 한국에서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할까 고민했어요. 처음에는 세월호 관련해서 뭘 해볼까도 했었는데요, 그것보다 개인적으로 나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뭘까 찾아보니 그나마 잘하고, 재밌게 하는 게 달리기더라고요. 좀 있으면 만 서른이 되기도 하고, 그래서 일단 해 보자 싶었죠."

진의 도전은 이번만이 아니다. 그는 지난 2011년 인도 여행 중 우연히 만난 인도친구와 함께 2주간 기어도 없는 자전거로 서인도 해안을 따라 3000㎞를 달렸다. 진은 이 자전거로 3300m 정상을 넘기도 했다고 말했다. 여행에서 돌아와서는 마라톤에 취미를 붙였다. 하프는 여러 번, 풀코스는 한 번 완주했다. 이 정도 경험만으로 지난 2012년 4월 108㎞ 울트라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다. 혹독한 비바람 속에서도 16시간 43분에 완주해 참가한 20대 중에서 1등을 했다. 같은 해 6월에는 철인 3종 경기에도 참가해 2시간 48분에 완주, 15위로 골인했다. 그것도 아버지가 5년 동안 타고 다니던 15만 원짜리 자전거로 말이다. 그리고 다시 2년 후 도전한 서울∼마산 마라톤 종단은, 실패로 끝났다. 이런 도전들은 모두 그의 치열한 자아 찾기 과정이다.

마산에서 초등학교 중학교를 나온 그는 마산 제일고등학교 2학년을 중퇴하고 캐나다로 건너갔다. 어머니의 결단이었다.

"집안이 굉장히 어려운 때였어요. 동생은 몸이 안 좋아 수술비가 많이 들고, 당시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이셨죠. 어머니는 이런 환경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저한테 풀게 될까 봐 겁이 나셨나 봐요. 저를 이 가정에서 떨어트려 놔야 한다고 생각하셨어요. 그래서 없는 형편에서 돈을 마련해 캐나다로 보냈어요."

캐나다로 건너간 그는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했다. 그러다 군대에 가려고 한국에 다시 왔다.

"제대를 하고 캐나다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데 아는 형이 아프리카에 가서 사업을 하는데 도와달라고 하더라고요. 아프리카에서 건축 관련일을 하는 거였어요. 따라갔죠. 근데 일이 잘 안 됐어요. 월급을 못 받은 건 아니어서 저한테는 좋은 경험이었지요."

지난 11월 마산종합운동장에서 서울~마산 종단 마라톤 훈련 중. /이효진

그리고 한국에 돌아온 후 그는 다시 긴 여행을 떠났다. 2011년이었다. 그는 7개월 동안 인도, 네팔, 인도네시아, 타이를 돌아다녔다. 여행을 하면서 사진에도 재미를 붙였다.

"아프리카에서 일할 때 퇴직금 대신 받은 카메라가 있었는데요, 여행 때 들고 다녔죠. 노출이고 뭐고 기본 지식도 없이 무작정 찍고 다녔어요. 여행을 마치고 마산 집에 있으면서 갤러리에서 조그맣게 전시회를 열기도 했지요."

그는 곧 다시 캐나다로 돌아간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이 뭘 해야 할지, 뭘 잘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이번 마라톤 종단이 실패였던 것은 분명하다. 그래도 그런 실패 속에 작은 성과, 경험 속에서 얻은 소중한 배움이 있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무모한 도전인 듯해도 조금씩 성장해나가는, 상황에 놀랄 만한 적응력을 보여주는 나 자신을 여러 번 경험했다. 지금 이 순간, 여전히 뚜렷한 계획과 목표는 없지만 2년 후를, 또 다른 도전을 하고 있을 나 자신을 내다본다."

그가 최근 자신의 심정을 담아 남긴 글이다.

서른 살, 자아를 찾기 위한 녀석의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그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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