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그후]마산 신세계백화점 앞에서 푸성귀 파는 할머니-2010년 8월 20일 보도

한동안 따듯한 날이 이어지더니 바람이 제법 매섭다. 지난 1일 창원시 신세계백화점 마산점 앞을 오가는 사람들은 칼바람을 조금이라도 덜 맞기 위해 발걸음 옮기기 바쁘다. 그 속에서 한 할머니는 배추·상추·마늘·더덕·콩나물 같은 채소를 내놓은 채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10년 8월 20일 자 1면에 소개된 푸성귀 파는 유순덕(79·창원시 마산회원구) 할머니다.

할머니는 4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채소 좌판을 펼쳐놓고 있다. 특별한 일이 있지 않고서야 매일 나온다. 예전에는 집 텃밭에서 가꾼 것을 팔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마산 어시장으로 향해 그날 내놓을 것을 산다. 점심시간 좀 지나 하루 장사를 시작해서 백화점 마치는 오후 8시까지 앉아 있는다.

장사하는 위치는 좀 달라졌다. 그때는 백화점 쪽에 바짝 붙어 있었지만, 지금은 그보다 15~20m 떨어진 육교 아래다. 백화점에서 노점을 못마땅하게 여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벌이는 예전과 비교해 크게 줄었다고 한다. 꼭 자리 때문은 아닌 것 같다.

할아버지 약값을 위해 할머니가 백화점 주변 거리에서 채소 장사를 한 지 15년 가까이 돼 간다. 할아버지는 저세상으로 떠났지만 할머니는 여전히 여기를 지키고 있다. /남석형 기자

"성안백화점이던 시절부터 장사했으니 15년 가까이 됐네. 예전에는 수출자유지역(마산자유무역지역) 사람들이 여기로 많이 다녔지. 그때는 못 해도 하루 4만~5만 원어치는 팔았는데, 요즘은 기껏해야 2만 원이나 될까. 그러니 실제 남는 돈은 1만 원도 채 안 되지. 오늘도 몇 시간째 앉아 있는데 1000원짜리 이거 몇 개밖에 없네. 인근에 큰 마트가 있고, 또 하나 더 들어선다고 하데. 마트 주변에 사람이 많다고 하니, 그쪽으로 옮겨볼까 생각도 해봤는데…. 그냥 이리 있는 거지."

할머니가 장사를 시작한 건 할아버지 아프고나서부터다. 4년 전 할머니는 "집에 할아버지가 계시는데 거동이 불편해 아무 일도 못 해. 이렇게 해서 할아버지 약값이라도 벌어야지. 자식들에게 기댈 수만은 없잖아"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이제 곁에 없다고 한다.

"저세상 간 지 딱 2년 됐네. 할배가 오래 아파서 고생 많이 했지. 나도 옆에서 병시중 한다고 말도 못 했고. 할배는 장사하러 나가지 말라고 했는데, 안 그러면 내 입 풀칠도 못 하지. 할배 아플 때 '젊어서 돈 좀 모아놓지 않고 뭐 했나'고 많이 쏘아붙였지. 내가 모진 이야기를 너무 많이 했다 싶기도 하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장사도 그만둘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한동안 일하러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할배 세상 떠났는데, 바로 장사 나오면 주변에서 흉보지. 그래서 두어 달 집에서 쉬었고. 그 참에 아예 손 놓으려고 했지. 그런데 집에만 있으면 할 것도 없고, 경로당도 돈이 있어야 어울리지, 안 그러면 못 가. 자식들한테 기댈 처지도 아니고. 그냥 이렇게 나와서 지나가는 사람들 쳐다보고 있으면 시간도 잘 가지. 몸 성할 때까지는 계속 해야지."

한 30분 이야기 나누다 보니 추위에 온몸이 얼얼했다. 지나가는 한 아주머니가 "할무이, 오늘은 날도 추운데 그만 들어 가이소"라고 했다.

할머니는 목도리만 했을 뿐, 이 추위를 견딜 만한 옷차림은 아니다. "불을 피우면 지나가는 사람들 보기도 안 좋을 것 같고…. 그래도 바람 부는 것에 비해 많이 춥지는 않아. 내일 더 추워지면 나오지 말아야 하나 어쩌나 싶네."

할머니가 내놓은 콩나물·양배추·시금치·상추를 한 바구니씩 샀다. 비닐봉지 두 개 부피가 제법 됐다. 할머니는 7000원 만 달라고 했다. 대부분 한 바구니 1000원 내지 2000원이다. 4년 전 기사에 언급된 가격과 차이가 없다.

좀 더 비싸게 받아도 되지 않느냐고 하자 "싸니까 이 정도라도 팔지, 더 받으면 아예 오는 사람 없어"라고 한다. 할머니는 나지막이 "그래도 1만 원 채웠네"라며 옅은 미소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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