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뚝배기가 왜 사투리가 아니야?"

중간고사 성적이 하도 기가 막혀 공부 좀 하라고 억지로 앉혀 놨더니 5분도 지나지 않아 엉뚱한 소리를 한다.

공부하기 싫으니 별 짓을 다한다 싶어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누르고 갑자기 그게 왜 궁금하냐고 퉁을 줬더니 문제집에서 표준어 고르는 문제를 풀다 뚝배기가 사투리라고 답을 해서 틀렸단다. 공부 안하고 엉뚱한 생각한다고 면박이라도 줬더라면 모처럼 공부한다고 생색 내는 아들에게 되레 한소리를 들을 뻔했다.

엄마들은 공부에 약하지 않은가. 최대한 다정한 몸짓과 가증스런 말투로 뚝배기가 왜 사투리라고 생각하느냐고 반문했더니, "한 뚝배기 하실래예~"라는 어느 광고 속 외국인의 말투를 흉내 낸다. 게다가 엄만 그런 것도 모르냐는 듯 득의만만한 표정까지 아주 가관이다. 이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표준어와 방언 관련 단원을 배우고 있는 열 살짜리가 방언을 구별하는 방법은 서술어였다. 그러니 '~할래예'가 들어가 있는 문장은 당연히 방언일수밖에….

문장과 단어에 대한 개념 없이 어미만으로 문제를 풀다보니 당연히 문제집엔 비가 내린다. 한때 인터넷 가십거리로 떠돌던 유머 중에 어느 초등학생이 '다음 중 가구가 아닌 것은?'이라는 문제의 답을 '침대'라고 고른 이야기가 떠올랐다.

은유법에 대한 이해가 없는 아이들을 어찌 탓하겠는가? 아들 녀석과 딱 같은 수준이다.

남의 얘기는 재밌기만 하더니 아들 이야기가 되고 점수화되니 조금 심각해진다. 아들에게 뚝배기가 표준어라는 설명을 해주고 나니 이번에는 '옴메, 몬 알아보겄다잉'이 강원도인지, 충청도인지, 전라도인지 질문을 한다.

아직 전라도, 충청도라는 지명조차 생경하게 들리는 아이들에게 그 지역 방언까지 공부하라는 문제는 아무리 너그럽게 생각해도 좀 아닌 듯싶기도 하고….

요즘 아이들은 지역에 상관없이 방언보다 표준어에 익숙한 편이다. 방송이나 다양한 매체를 통해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표준어에 노출되는 환경 때문이리라. 그 때문에 지역에 따라 억양 차이는 있겠지만 사용하는 어휘 대부분은 표준어를 구사하고 있어 방언이 오히려 난해하고 낯설기만 하다. 게다가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사는 세대가 거의 없다는 것도 지역 언어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점점 사라지게 하고 있지 않은가?

다행스러운 것은 <응답하라 1994> 같은 드라마의 인기와 함께 한때는 촌스럽다는 말과 동의어처럼 여겨지던 방언의 입지가 상당히 호전되었다는 사실이다. 방언이 격 낮은 언어가 아니라 친근하고 토속적인 우리 민족의 다양한 문화라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져 행복하다. 방언만이 가지고 있는 맛깔스럽고도 독창적인 표현이 주는 멋을 선입견 없이 공감하고 사랑하는 분위기가 고맙고 다행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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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어느 지역 방언인지를 묻고 점수화시키는 교과서적인 학습 분위기가 방언의 매력을 감하게 되지 않을까 염려스럽긴 하다.

/이정주(김해분성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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