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동구 밖 생태·역사교실] (26) 밀양

11월 22일, 두산중공업 사회봉사단이 함께하는 토요동구밖 역사탐방은 진해 다문화·진해지역아동센터 아이들과 더불어 밀양으로 떠났다. 아이들 기억 속 밀양은 가족들과 휴가 때 강가나 계곡에서 했던 물놀이가 대부분이다. 밀양은 무엇보다 물이 많고 맑고 좋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밀양강이며, 호박소·얼음골 그리고 표충사 골짜기 시원한 물줄기는 여름철 많은 발걸음을 밀양으로 끌어들인다.

이번에 찾은 첫 번째 장소도 물과 관련이 있다. 기찻길 옆 급수탑을 보기 위해 밀양 삼랑진읍 한가운데 삼랑진역에 갔다. 급수탑이 역사탐방이랑 무슨 관계가 있는지 연결짓기가 어렵기는 아이나 어른이나 매한가지인 모양이었다. 급수탑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차 이야기부터 끄집어내야 맞다.

삼랑진역은 1905년 문을 열었다. 일제는 1910년 나라를 집어삼키기 전에 이미 철도를 설치·운영할 권리를 빼앗아갔다. 1905년 1월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선이 삼랑진을 지나기 시작했고 5월에는 삼랑진과 마산을 잇는 마산선이 생겨났다.

진해 다문화·진해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이 밀양 삼랑진역 급수탑 앞에서 찍은 기념 사진. /김훤주 기자

삼랑진역 급수탑은 1923년 세워져 디젤기관차가 나오는 1950년대까지 구실을 했다. 급수탑은 증기기관차와 짝을 이룬다. 석탄을 때서 물을 데우고 거기서 생긴 수증기의 높은 압력으로 엔진을 움직여 기차를 달리게 했다. 물이 없으면 달릴 수 없는 것이 증기기관차다. 이렇게 군데군데 급수탑을 만들고 수증기로 빠져나간 만큼 물을 채워야 했던 까닭이다. 급수탑은 큰 역마다 있었지만 지금 경부선에서는 삼랑진역밖에 남아 있지 않단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아기 잘도 잔다~ 칙~폭, 칙~폭 칙칙폭폭~ 칙칙폭폭~ 기차소리 요란해도 아기아기 잘도 잔다." 지금 어른들은 어릴 적 이런 노래를 흥얼거리며 자랐다. "칙칙폭폭~칙칙폭폭~", 석탄을 때서 움직이던 증기기관차가 달리면서 내는 거친 숨소리다.

지금이야 마산·진주 등지에서 서울을 가려면 여러 길이 있다. 대전통영고속도로며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통해 버스로도 3~4시간이면 족하다. 예전에는 달랐다. 기차를 타고 삼랑진에서 경부선 상행선으로 갈아타야 했는데 그러니까 삼랑진은 경남에서 가장 붐비는 교통 요지였다.

급수탑 앞에 모여 즐겁게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런 기회가 없다면 어쩌면 한 번도 못 보고 무심하게 지나치기 십상이었을 물건이 급수탑이지 싶다. 지난 세월 속 아련한 추억으로 남은 급수탑을 아이들은 그저 무감하게 바라들 본다. 몸으로 겪고 보면서 생기는 감흥이 마음을 사로잡기 마련인데 그런 시절과는 너무 멀리 떨어진 빤질빤질한 KTX 세대 친구들에게는 그다지 감흥이 일지 않을 수도 있겠다.

이런 얘기를 덧붙였다.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사람들이 당한 괴로움은 엄청났다. 그럼에도 한편으로 일본이 우리한테 근대화를 이루도록 도움을 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옳지 않다. 일본이 멀쩡한 옛길을 죄다 뭉개고 철길을 덮어쓴 것은 순전히 그네들 욕심을 채우는 수탈이 목적이었다. 일본이 없었어도 스스로 근대화는 가능한 일이었고 그런 능력은 이후 우리나라 발전상만 봐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냥 스치듯 던진 말이었지만 이런 한 마디가 더 새겨지기 바라는 마음이 밑바닥에 깔려 있지 않았을까….

다음으로 영남루를 찾아갔다. 영남루는 급수탑에 비긴다면 아이들도 많이 알고 있다. 영남루는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누각으로 꼽힌다. 버스에서 정자와 누각를 어떻게 구분하는지 간략하게 말해줬다. 정자는 발이 땅에 닿을만한 1층짜리라 보면 되고, 누각은 향교 앞 풍화루나 표충사 들머리 수충루처럼 1층은 출입문 노릇을 하고 2층은 어울리거나 놀거나 하는 2층짜리로 생각하면 쉽다고 얘기해 줬다.

영남루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아이들과 선생님들.

영남루는 내려다보이는 밀양강과 어우러지는 운치가 아주 그럴듯하다. 강바람을 맞으며 시름을 잊고 쉬는 공간으로 더없이 좋다. 고개를 돌려 보면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현판들이 유독 눈에 많이 띈다. 1843년 영남루를 고쳐 지을 당시 밀양부사 이인재의 아들들이 썼다는 현판도 섞여 있다. 이 현판을 찾아서 사진에 담는 미션이 아이들에게 주어졌다. 큰아들 열한 살 종석이 썼다는 '영남제일루'와 일곱 살 현석이 썼다는 '영남루'를 찾기 위해 아이와 어른이 함께 팀을 이뤄 바삐 움직였다.

'석화(石花)', 노래 '애수의 소야곡'과 관련된 건물 찾아 사진에 담기, 그리고 '밀양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근사하게 사진 찍기'까지 미션을 끝낸 팀들이 하나둘 다시 모였다. 우리 친구들의 한결같은 소감은 "우리보다 어린 일곱 살짜리, 열한 살짜리가 이렇게 글을 잘 썼어요?"였다. 다음에 친구나 가족과 영남루에 왔을 때 오늘 찾아본 현판 이야기를 해주면 아마도 무척 유식해 보일 것이라고 한 마디 걸쳤다.

근처 중국음식점 태화루로 옮겨가 점심을 먹었다. 짜장면과 탕수육과 군만두가 차려져 있었다. 예전에는 짜장면이나 탕수육이 별식인 시절도 있었다. 졸업식이나 입학식 때 부모님과 손을 잡고 먹으러 갔던 추억의 음식이기도 하다. 짜장면을 맛있게 먹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다이어트한다고 한 그릇을 두셋이 나눠 깨작깨작 먹는 어린 여학생들도 보인다. 다이어트 안해도 보기 좋은 그냥 보통 몸이다. 뭐든 잘 먹고 잘 움직이면 건강하고 예뻐진다. 요즘 아이들은 유난히도 움직이기를 귀찮아하고 겉모습에 더 신경쓴다. 다 어른들 탓인 듯해 더욱 씁쓸하다.

마지막에는 밀양시립박물관을 들렀다. 아이들이 이날까지 역사탐방을 네 번째 하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박물관을 즐길 줄 알게 됐다는 데 있다. 사실 아이들에게 박물관은 그다지 흥미로운 존재는 아니다. 잘 모르면 박물관보다 더 지루하고 재미없는 곳이 없을 정도다. 10~20분 만에 다 돌아보고 더 이상 볼 것이 없다고 한다.

밀양시립박물관에서 미션 수행을 위해 전시 자료들을 꼼꼼하게 살피는 모습.

그런데 미리 답사를 해서 꼼꼼하게 준비한 미션을 수행하다 보면 박물관은 아이들에게 가장 재미있는 놀이터가 된다. 밀양에서도 그랬다. 문제만 보면 어른들도 쉽지 않은 것이 많다. 그래서 미리 겁을 먹는 아이도 있다. 하지만 조금만 마음을 가다듬고 돌아보면 보물찾기처럼 정답을 알아낼 수 있다. 처음엔 심드렁한 아이도 이런 재미를 알면 금세 박물관과 친구가 된다.

밀양시립박물관에서 목판 인쇄 체험을 하는 아이들.

답을 찾아 이리저리 뛰어다녀도 좋을 만큼 새로 지은 밀양박물관은 넓고 좋았다. 박물관은 대부분 입장료가 없지만 밀양박물관은 그렇지 않다. 대신 목판 인쇄 체험이나 여러 모양 태극기 스탬프 찍기 체험은 따로 돈을 들이지 않고 마음껏 할 수 있다. 아이들은 몸을 움직이는 체험을 언제나 좋아한다. 문제를 풀고 체험을 하는 동안 주어진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버스를 타고 돌아오면서 적은 소감 글은 100%가 밀양박물관이었다. '즐거웠다', '재미있었다', '도움이 되었다'. 인상 깊었던 장소에 대한 글에서 이렇게 한 군데만 꼽힌 경우는 처음이었다. 물놀이만큼이나 박물관이 재미있었다니…. 박물관이 즐거웠다는 글들을 보면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이끌지에 대해 어른들 몫이 아주 크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김훤주 기자 pole@idomin.com

※이 기획은 두산중공업과 함께합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