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 위한 결정, 구성원들 고려됐나…가족 외치더니 자본논리 앞 팽개쳐

지난달 26일 삼성그룹과 한화그룹이 삼성테크윈, 삼성종합화학, 삼성토탈, 삼성탈레스 매각·인수를 결정했다. 거래 금액만 2조 원에 달하는 말 그대로 빅딜이다. 매각 배경에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해석이 타이틀처럼 뒤따른다. 한화그룹은 이번 인수를 통해 석유화학과 방산 부문에서 시장지위를 강화하고 시너지를 창출할 방침이다. 반면 삼성은 화학, 방산 부문을 처분함으로써 그룹 구조를 전자, 금융, 건설, 중공업, 서비스로 단순화·집중화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또 다른 배경으로 삼성그룹 후계구도를 위한 처분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건희 회장이 갑작스럽게 쓰러진 다음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수순이라는 것이다. 이번 매각으로 이재용 부회장은 그룹의 주력 사업인 전자·금융·건설·중공업 부문을,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호텔사업과 삼성물산의 상사부문을, 이서현 제일기획 사장은 패션과 미디어를 맡는 것으로 정리하는 모양새다. 결국 이재용 부회장 후계구도를 강화하고자 핵심사업을 몰아주고 나머지를 선 긋기를 했다.

이처럼 두 가지 해석이 있지만 꼼꼼히 살펴보면 결국은 일맥상통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선택과 집중의 뜻을 뒤집어 보면 재벌기업 3세 경영을 위해 시너지를 도출하거나 자신이 잘하는 분야에 집중하도록 구조조정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번 매각은 오너 한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지만 '선택과 집중'이란 그럴싸한 말로 포장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더 지켜볼 일이지만 매각 과정에서 100% 고용 승계 보장을 약속했고, 인수하는 회사 또한 대기업이기에 외부에서 보기엔 직원들 사정이 절망적인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속사정은 조금 다르다. 직원들은 매각을 저지하고자 노조 설립을 추진하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잘나가는 사업을 빼가서 결국 껍데기만 남게 됐고, 경영상황이 악화해 매각된 원인도 사측에 있지만 피해는 고스란히 직원이 보게 됐다는 것이다. 또 특성상 수익이 크지 않은 방위산업을, 삼성도 포기한 것을 한화가 얼마나 유지·발전할 수 있을까 우려하고 있다. 직원들은 구조조정이 예상되는 대목이라 말하고 있다. 이 밖에도 삼성맨이라는 자부심이 사라지는 점, 임금이 줄지 않을까 하는 우려, 전환배치를 위해, 위로금이라도 받기 위해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존재할 것이다.

이유야 다양하지만 이들을 뭉치게 한 가장 큰 원인은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처사이기 때문일 터다. 배신감이라 표현할 수도 있겠다. 삼성그룹은 그동안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슬로건 아래 직원들 또한 가족이자 주인이라는 의식을 심었다. 직원은 그룹의 무노조 경영방침에 동참해 사측이 시키는 대로 해왔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버림받았다. 매각 과정에서 직원들은 배제됐고 한 사람을 위한, 그 한 사람의 판단이 수천 명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결국 직원들은 한 회사의 부품 또는 사용하고 버려도 되는 소모품에 지나지 않았다는 깨달음과 직면했다.

이처럼 한 사람을 위해 수많은 이가 아무렇게나 버려지는 세상, 이것이 천박한 자본주의의 민낯이며 우리가 사는 오늘의 현주소다. 경제논리로 따지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경제논리로만 세상을 사는 것은 아니다. 경제논리 이전에 경영윤리라는 것도 있고, 상식이라는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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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처구니없는 사고로 가족을 잃고, 내 뜻과 관계없이 농산물이 개방돼 설 자리를 잃고, 내 뜻과 관계없이 졸지에 회사가 바뀌거나 일자리를 잃고…. 내 뜻대로 사는 것이 어렵고,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세상이 정말 올바른 세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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