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 3년 차 공동체문화마을 사업 마무리하는 연극 <치마꽃>

마을 주민과 연극인들이 함께 무대에 섰다.

통영연극예술축제위원회가 창작극 <치마꽃>(장영석 작·박승규 연출)을 지난달 29일 오후 7시 30분 통영시민문화회관 대극장에 올렸다.

공연 30분 전부터 문화회관 1층에는 할머니를 응원하러 온 손자부터 생전 꽃다발을 처음 사본 이웃 주민까지 다양한 관객이 모여들었다. 450여 좌석을 가득 채운 이들은 가족이나 이웃이 무대에서 내뱉는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 숨죽이며 더 긴장했고 이내 맞장구치며 크게 웃었다.

◇시집 출간·연극 만들기…

통영시 산양읍 가는개마을(세포마을) 어귀에는 큼지막한 바위가 하나 있다. 바위 형세가 마치 처녀가 치마폭을 감싸고 북녘 하늘을 바라보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습을 하고 있어 마을 사람들은 처녀바위라고 부른다.

창작극 <치마꽃>은 통영의 고기잡이 딸 치마(배우 김지아)와 한양서 내려온 양반집 도령(배우 이규성)의 사랑 이야기를 그렸다.

작품 속에는 조선시대 신유박해(1801년 신유년에 일어난 천주교 박해사건)를 배경으로 사회제도적 모순과 마을 사람들의 삶도 담겼다.

"마을회관에 둘러앉아 점심을 먹는데, 처녀바위에 얽힌 이야기가 쏟아졌지요. 사랑하던 연인이 고기잡이 나가 풍랑에 죽었다는 설과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떠났는데 돌아오지 않아 지금도 기다린다는 설이 대표적이었어요."

<치마꽃> 공연을 보기 위해 관객들이 입장하고 있다. /박정연 기자

작가 장영석(통영연극예술축제위원회 운영위원장)은 주민들 입으로 전해온 설화에서 연극 소재를 찾았다. 그의 나이 65세. 나이가 중요하지 않다 할지라도 주민들과 섞이기에는 동년배인 그의 역할이 무척 컸다.

장 위원장은 통영 극단 벅수골 창단 멤버로서 현재는 극단에서 고문을 맡고 있다. 지난 1981년 창단한 벅수골은 통영연극예술축제위원회의 주축이다.

통영연극예술축제위원회는 지난 2012년 전통문화 콘텐츠를 개발하고자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이 추진하는 '시·도 기획지원사업' 공모에 지원해 채택되었다. 매해 재신청을 거쳐 올해 3년 차 사업을 마무리한다.

2012년 4000여 만 원의 예산에서 시작해 매년 지원금이 늘어 올해 7000여 만 원을 받았다. 3년간 약 1억 5000만 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축제위원회는 주민과 함께하는 공공예술 프로젝트 형태로 '색깔과 이야기가 있는 공동체문화마을' 사업을 진행했다.

주민 시짓기부터 시작했다. 첫해(2012년)는 용왕샘, 빨래터, 산제터 등 마을의 애잔한 흔적을 찾아 주민들이 시를 썼고, 이듬해(2013년)에는 쟁이들의 가난한 숨결을 노래한 시를 써 이를 벽화로 담벼락에 그리기도 했다.

올해는 지난 8월 사업을 진행하며 마련한 야외무대에서 '희로애락 삶의 시, 작은 축제'를 열고, 시집 <가는개마을의 노래>도 출간했다. 시집에는 마을 주민 30명이 지은 시 42편이 담겼다.

매년 12월 창작극도 한 편씩 올렸다. 올해 선보인 연극 <치마꽃>은 가는개마을의 3번째 작품이다.

연극 <쟁이 할미요>(2012)로 수탈에 맞서 임금에게 꽹과리를 울려 고발한 할미 이야기를 다뤘고, 나붓등 바다 앞에서 금괴를 건져 벼락부자가 됐지만 결국 파산한 이야기를 담은 연극 <나붓등>(2013)으로 사상누각의 교훈을 공유했다.

◇색깔과 이야기가 있는 마을

11월 29일 <치마꽃> 공연장은 잔치 분위기였다. 공연 하루 전날인 28일 참석한 '2014년 농촌현장포럼 우수사례 발표대회'에서 전국 1등(대상)을 차지했다는 소식으로 주민들은 더 없이 기뻐했다. 정부세종청사까지 다녀와 자정 너머까지 공연 마무리 연습을 했어도 힘든 기색이 없었다.

가는개마을 주민 15명과 벅수골 배우 10여 명은 지난 9월 대본연습에 들어갔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저녁 7시 30분부터 마을회관에 모여 2시간씩 호흡을 맞췄다.

극에 출연하는 주민 대부분이 60, 70대 고령자로 최고령자는 마을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74세 김부린 씨다.

"젊은 사람들은 1시간이면 외우는데 우리는 10시간이라도 보고 또 봐야 하죠. 촌에서 무슨 연극이냐 생각할지 몰라도 안해 본 사람은 이 맛을 모르죠."

지난달 29일 통영시민문화회관 대극장에서 펼쳐진 창작극 <치마꽃> 공연 모습. 가는개마을 주민 15명과 극단 벅수골 단원 10명이 함께 무대에 올랐다. /통영연극예술축제위원회

창작극 <치마꽃>은 노래로 극적인 요소를 더했다. 주민들이 자연스레 극에 녹아들 수 있도록 마을 이야기와 젊은이들 사랑을 지켜보는 마음을 노랫말에 담았다.

주민들은 '그리움'(장영석 작사·윤용우 작곡)을 부르며 극의 시작을 알렸다.

"천리 길 걸어온 쟁이들 마을 산 좋고 물 좋아도 내 동무 옛동무 그리워지고 대숲 헤치며 대나무 끌어안고 그리움 달래는데"란 대목에서는 1930~1970년대까지 삿갓장이, 양복장이 등 장인으로 살았던 주민들 삶이 드러난다.

평화롭던 마을이 양반네 가족의 등장으로 활기를 얻는 듯하지만 결국 양반네는 아픔만 남긴 채 권력을 좇아 떠나버린다.

장영석 작가는 "순진무구한 사랑이 권력 투쟁 앞에 희생되고 말았음을, 난세를 피해 마을에 살다 권력을 준다는 말에 허겁지겁 한양으로 내빼는 양반네들 모습을, 처녀의 슬픔을 안타깝게 여기는 가는개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드러내고 싶었다"고 밝혔다.

장 작가는 공동체문화마을 사업에서 벅수골의 역할은 "드러내지 않고 주민들을 조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극 <치마꽃>을 비롯해 지난 3년 동안 진행한 사업에 극단 벅수골 이름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가는개마을 주민들의 울고 웃고 기뻐하고 벅차해하는 모습을 보면 그간 벅수골 관계자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왔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29일 축제위원회가 내놓은 200페이지에 달하는 '2012-2014 색깔과 이야기가 있는 가는개 공동체문화마을 결산집'은 극단 벅수골의 지난 3년간 '공공예술 분투기'와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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