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농을 찾아서] (81) 김수태 산청 부농농장 대표

마치 빨간 보석 같다. 단단해 보이는 과육을 입에 넣으면 순식간에 새콤달콤한 부드러움이 침샘을 자극한다.

평생 농부의 손끝에서 잘익은 딸기는 보석이 돼 대형마트와 동남아 등지로 나가고 있었다.

◇지역 농민들의 길잡이로 = 산청군 단성면 관정리 이장을 맡고 있는 부농농장 김수태(57) 대표는 평생 농사를 지어온 농군이다. 하지만 관행 농업에 머물지 않고 누구보다 앞서 나가기 위해 노력한다. 물론 그만큼 실패도 많이 하고, 그래서 가족들의 고생도 상당했다.

처음에는 고구마 농사를 지었다. 하지만 소득의 한계로 대체 작물을 찾다 딸기에 눈을 돌리게 됐다. 딸기를 도입한 지는 22년쯤 됐다. 딸기는 11월부터 다음해 6월 정도까지 수확하고, 고구마는 3월 초순 심어 6월 초순 출하한다.

김 대표는 농사일만 하진 않았다. '사람'을 찾아다녔다.

"보통 평생을 농사만 짓다 보면 그 동네 사람밖에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사람을 많이 알려고 돌아다녔습니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농사를 짓고 있는지, 나는 또 어떻게 대응하면 되는지를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하면서 알아나갔습니다. 교육도 많이 다니면서 서로 자문하고 정보를 교류했죠."

그렇게 알게 된 정보는 작목반에 전파했다. 새로운 기술을 알게 되면 먼저 자신의 밭에 적용해보고 괜찮다 싶은 것은 작목반원들에게 권했다. 길잡이 역할을 해온 것이다.

"손해도 많이 봤습니다. 하지만 작목반이 잘 되기 위해서는 한두 사람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나 혼자만 남보다 빨리 돈을 벌어야지 하는 욕심을 가지면 작목반을 유지 못 합니다. 지금 이곳 관정리는 부촌입니다. GAP(우수농산물) 인증도 받았고, 80% 정도가 대형마트에 납품도 합니다."

산청군 단성면 관정리 부농농장 김수태 대표와 아내 김영이 씨.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가족들의 든든한 지원 = 김 대표는 산청자연친환경작목반에서 활동하고 있다. 작목반에는 16농가가 함께 하고 있으며, 이 일대에서는 모두 27농가가 GAP 인증을 받아 산청 딸기의 이름을 높이고 있다.

김 대표가 밖에서 활동하는 동안 농사일은 동갑내기 아내 김영이(57) 씨 몫이 됐다. 아내가 고생을 많이 했겠다는 물음에 김 대표는 겸연쩍은 듯 시선을 피하고, 김영이 씨는 얼굴에 은근히 웃음을 짓는 게 대답을 듣지 않아도 지난 세월을 짐작할 만했다.

현재 고구마 재배는 아들 영민(35) 씨가 도맡아 하고 있다. 부부는 아들이 농부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영민 씨는 꽤 두각을 나타내 교수에게서 연구실에 남으라는 권유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군 제대 후 고구마 농사를 짓겠다고 선언했다. 김 대표 부부의 노련한 경험과 아들의 젊은 기술이 만나 부농농장의 고구마는 보다 맛있어졌다.

◇토양분석으로 과학 영농 = 1990년대, 경상남도의 100대 농장에 참여하게 되면서 컴퓨터를 접하게 됐다. 컴퓨터 교육을 받으러 다녔다. 홈페이지가 잘 된다는 남들 말에 홈페이지를 개설해 고구마를 판매하려 했다. 그런데 도통 반응이 없었다.

"개설만 해놓고 마냥 기다리기만 하니 1년에 1상자 주문이 들어오더군요. 안 되겠다 싶어 영농일지도 올리는 등 일종의 생산이력제를 했더니 1년이 지나면서 5상자, 10상자 주문이 들어왔습니다."

품질 개선으로 경쟁력을 높였다. 다 똑같아 보여도 먹었을 때 맛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구마는 수확 후 숙성 과정이 중요합니다. 이때 단맛이 올라옵니다. 여름에 사람을 위해서는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지만 고구마를 선별해 숙성시킬 때는 창고에 에어컨을 온종일 켭니다. 시들지 않으면서도 단맛을 강화하고, 물러지지 않도록 숙성시키는 것, 이것이 바로 기술입니다."

딸기를 도입하고 고생을 많이 했다.

"처음에는 토경재배를 했는데, 질참흙이었습니다. 물을 주면 흘러내리고 계속 죽어 보식하는 게 일이었습니다."

왜 농사가 되지 않는지 몰랐다. 농사에 대해, 땅에 대해 분석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다 농업기술센터 직원들을 만나고 다른 농민들을 만나면서 땅을 분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토양이 바뀔 때마다 분석을 다 했습니다. 처음에는 퇴비를 많이 주면 되는 줄 알았는데, 이제는 분석 결과에 맞춰 적절히 땅에 처방합니다."

이렇게 하나하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노하우를 쌓아갔다. 물론 김 대표는 노하우를 작목반 등 주변에 모두 공개했다.

"실패했을 때 부끄럽죠. 하지만 영농일지에 모두 기록해서 경험으로 남깁니다. 실패한 것도 결국은 좋은 경험이 됩니다."

현재 부농농장은 딸기 7300㎡(2200평), 고구마 3만 3000㎡(1만 평)의 농사를 짓고 있다. 딸기 면적은 내년 2000㎡(600평)가량 더 늘리는 등 점차 확대할 계획이다.

◇하이베드, 7번의 실패 = 부농농장 딸기는 토경재배가 아닌 하이베드에서 양액재배하고 있다. 즉 사람 허리 높이의 시설에서 키우는 고설재배 방식이다. 이를 도입한 지는 6년가량 됐다. 지금의 농장 위치로 옮겨오면서 도입했다.

"1년가량 땅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베드를 올렸습니다. 당시에는 규격이 특별히 있는 것이 아니어서 베드 높낮이가 다 다르고 엉망이 됐죠. 당시에는 물을 주는 방법 등 여러가지를 노력과 경험으로 찾아야 했습니다."

적확한 기술 없이 만든 하이베드는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7번이나 내려앉았다.

지금이야 하우스 내 온도와 습도 등을 몸으로 느껴 기계를 보지 않아도 기본적인 환경 제어가 가능하지만, 이곳에 처음 자리 잡았을 때는 사정이 달랐다.

"골짜기에 있다가 이곳으로 오니까 환경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하지만 똑같은 방법으로 관리를 하다 보니 첫해는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작물이 다 죽어버렸죠. 당시에 워낙 실패를 많이 겪어서 이젠 다른 사람이 무슨 문제가 생겼다는 말만 해도 원인을 척 알 정도가 됐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안주하면 안 됩니다. 지금부터 또 나아가야 합니다."

GAP인증을 받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관련 교육 이수와 시설 설치 등 여러 가지 조건을 갖춰야 했다.

그러다 진주원협 등과 인연이 닿아 전국의 대형마트에 산청 딸기를 납품하고 있다.

"이곳 딸기가 전국에서 가장 빨리 나오는 편입니다. 이마트에서 판매되는 딸기 중 11월 말까지는 거의 이곳 딸기라고 보면 됩니다. 올해부터는 빙수 전문점에도 9명이 납품하고 있습니다."

GAP 인증을 받았다고 해서 단가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관리도 어렵다. 하지만 그만큼 판로 확보가 쉬워 대형 판매처를 많이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한다.

◇농사 전념해 더욱 많은 노하우 전수하고파 = 부농농장에는 전국에서 벤치마킹을 많이 온다. 농민뿐 아니라 농기계 등 영농자재 회사 관계자들도 이곳에 찾아와 견학한다.

"물으러 오는 사람들에게는 세밀하게 전부 가르쳐 줍니다. 여기까지 올 열정이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리고 저는 그만큼 또 앞서가면 됩니다. 그러면 제 수익이 줄지 않습니다."

내년 이장 임기가 끝나면 이젠 농사에 전념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많은 노하우를 쌓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천성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 노하우를 다른 농민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다고 했다.

이곳 딸기 품종은 설향이다. 새콤달콤한 맛에 수확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수확물량의 절반가량을 싱가포르와 대만 등 동남아에 수출하고 있다.

김 대표는 향후 당도와 경도(단단함)를 높인 차별화된 딸기 생산을 목표로 한다. 딸기는 쉽게 물러지기 때문에 택배 발송이 쉽지 않다. 인터넷을 통해 고구마의 대부분을 팔고 있으면서도 딸기는 올리지 않는 이유다. 그래서 농사에 전념하게 되면 시설을 확대하고 여러 가지 시도를 통해 품질 향상을 꾀하려 하고 있다.

<추천 이유>

◇최인락 경상남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가 = 산청농업영농조합법인 김수태 대표는 딸기 고설수경재배로 연간 40t의 많은 수확량을 올리는 지역 핵심지도자입니다. 특히 과학적이고 체계적적인 운영으로 전국 대형유통센터에 생산량 80% 납품계약으로 농가소득을 창출하는 수경재배의 일인자이자 전국 많은 딸기농가의 귀감이 되는 성실한 지도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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