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순정·신원식 '노년기 성에 대한 노인들의 인식 유형'…사회적 지원제도 마련·인식 전환 시급

영화나 드라마, 또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듯 노년기 성 문제는 이제 감추거나 억눌러선 안 될 이슈다.

경남대 인문과학연구소가 발간하는 <인문논총> 최근호에는 노년기 성에 대한 노년 자신의 인식 유형을 살펴보고 바람직한 해법을 모색한 황순정(경남대 행정대학원 석사)·신원식(경남대 사회복지학과 부교수)의 논문이 실렸다.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젊은 것'들께선 대부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남우세스럽게 나이 들어 무슨 섹스냐고. 이성에 대한 집착이냐고. 그러나 노년기 성생활에 대한 각종 연구에 따르면, 노년 역시 생물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성적 욕구가 지속되며 행복한 삶에 중요한 요소로 자리한다.

몇몇 연구자들은 좀 더 '과학적'으로 이야기한다. 노년이 만족스러운 성생활을 하면 신경, 뇌 등 신체 전반에 자극이 가해지면서 교감신경이 활성화돼 건강에 기여한다고. 노화와 치매, 건망증 등을 억제하고 전립선 보호에도 도움이 됨은 물론이다. 어떤 연구자는 "성적 욕구가 충족이 되지 않는 경우 노인의 퇴행이 촉진되며 노인의 성행위는 관절염 치료를 돕고 심리적 긴장감 감소에 도움을 준다"고 말하기도 했다.

현실은 그러나 이런 상식과 순리를 무시하고 외면한다. 황순정·신원식 두 논문 저자가 말하듯 "노인의 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노인을 남성도 여성도 아닌 무성(無性)적인 존재로 바라보는 등 편견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안 그래도 배우자의 사망과 노후 이혼, 질병, 경제적 의존성 등 때문에 이성교제나 노혼 기회를 극히 제약받고 있는 그들인데 말이다. 논문은 "노년기 부부관계의 어려움은 노인의 외로움과 우울증을 유발함으로써 삶의 질을 저하시킨다"면서 "그러함에도 노년기 성과 관련된 문제는 노인 개인이나 가정에서 해결해야 하는 것으로 치부하며 사회적인 지원을 위한 제도 마련에 소홀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13일 오후 서울 명동 라루체 웨딩홀에서 중구청 주최로 열린 '어르신 사랑 효도미팅'에 참가한 할아버지(왼쪽)가 파트너로 선정된 할머니와 대화 시간이 끝나자 아쉬운 듯 손을 붙잡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다. /연합뉴스

◇남성도 여성도 아닌 무성?

저자들은 성에 대한 노년 자신의 인식을 알아보기 위해 지난 3~4월 창원시 소재 노인복지관 만 60세 이상 이용자 31명을 대상으로 면접조사를 했다. 성생활 실태와 중요성, 저해 요인, 성적 관심에 관한 총 27가지 질문을 던지고 노년의 인식 유형을 분석했는데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됐다.

유형 1은 '적극 수용형'이다. 이들은 노년기 성생활을 인간의 기본 권리이자 삶의 필수조건으로 생각한다. "노인이 성적인 관심을 보이는 것은 체면을 깎는 일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사회적 편견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유형 2는 '회피형'이다. 말 그대로 성에 대해 지나치게 관심을 보이는 것은 주책맞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 심기를 불편하게 할 수 있으므로 스스로 자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노년층이다. 80대까지도 성생활이 가능하다는 건 공감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중요한 관심사가 아니라고 본다.

주목할 만한 건 이들 유형 응답자 모두가 여성이라는 사실이다. 논문은 "여성이 성을 밝히는 것은 부도덕하며 남편 말에 무조건 순응해야 한다는 한국 사회 정서가 부부간 성생활에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자신의 성적 결정권이 무시된 채 남편의 강요된 요구에 부응함으로써 갖게 된 부정적 경험이 성 자체를 회피하는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해석했다.

유형 3은 '본능 추구형'이다. 언뜻 유형 1과 비슷해 보이지만 좀 다르다. 노년기 성에 긍정적 인식을 갖고 있는 건 동일하지만 유형 1이 성의 의미를 성행위(섹스)에 국한해 좁게 받아들이는 반면, 유형 3은 성을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 충족을 위한 것으로서 성적 파트너 유무와 상관없이 개인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성과 직접적인 성행위가 없어도 남성다움이나 여성다움에 성적인 감정을 갖고, 정서적 소통을 통해 본능적인 욕구를 충족하고자 하는 '광의의 개념'에 속하는 유형이라는 것이다.

◇전문상담기관 설치 필요하다

이상의 조사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각 유형마다 차이는 있지만 모두 다 어떤 식으로든 사회적·제도적 지원이 절실하다는 사실이다. 유형 1과 3은 별 문제가 없는 것 같지만 성적 욕구가 강한 만큼 자칫 심각한 고독감에 빠져들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린다. 유형 1의 노년층은 건강한 성생활을 할 수 있는 의료적 지원과 심리·정서적인 지원이 필요할 것이며, 육체적인 건강뿐 아니라 정신적 측면에서 성생활, 이성관계를 중시하는 유형 3 역시 건전한 사교의 장을 만들어 주거나 여가 활동을 지원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뒷받침돼야 한다.

'회피형'인 유형 2는 의식 개선이 먼저로 보인다. 저자들은 "성 자체를 부도덕하고 불쾌한 것으로 간주하는 의식을 개선하기 위한 교육이 이들에게 실시되어야 한다"면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나 자기 의사를 분명히 하고 성적인 영역에서 즐거움을 만끽하며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물론, 부부간 결혼 생활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논문은 보다 실질적인 지원을 위한 대안으로 노년 대상 전문상담기관 설치와 전문인력 양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심리적 갈등 해소를 도울 뿐만 아니라 개인적 상황에 따라 다양한 선택지를 알려줄 수 있는 역할로서 전문기관·전문인 이야기다. 노년 스스로 솔직한 상담에 나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은 만큼 이 같은 기관·인력풀의 구축은 갈수록 시급한 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저자들은 노년기 성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대중매체의 역할 재정립도 강조했다. 자극적이고 과대 포장된 형태의 담론 전파가 아닌, 누구나 노년의 성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진지하고 체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인간의 기본 권리로서 행사되어야 하는 성이 단지 고령이라는 생애 주기적 조건에 의해 제약당하거나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면서 "노년기 성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인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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