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감정은 체내 화학물질의 상호작용…화학물질 적절히 조절 마음의 병 치유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이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나뭇잎이 짙어가는 가을의 쓸쓸함을 더한다. 가을비라도 내려 축 처진 낙엽들을 보면 왠지 모르게 마음까지 심란해진다. 누군가 가을은 고독의 계절이라고 했던가? 가을을 노래한 많은 시에서도 가을을 이별·외로움·그리움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인가 가을이 되면 많은 사람이 깊은 감상에 젖거나 고독감을 더 느끼게 된다.

이처럼 인간이 우울해지거나 사랑에 빠지는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인간의 마음(감정, 기분)은 지극히 심리적이고 감성적이지만, 생화학적 측면에서 보면 마음은 인체 내 화학물질의 상호작용으로 설명될 수 있다.

최근 세로토닌(Serotonin)이라는 뇌 신경전달물질이 인간의 우울증과 행복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가 많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인간의 감정은 도파민 신경(쾌락의 정열적 움직임, 긍정적인 마음, 성욕과 식욕 등을 관장), 노르아드레날린 신경(불안, 부정적 마음, 스트레스 반응 등을 관장), 세로토닌 신경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형성된다.

이 중에서 세로토닌은 도파민과 노르아드레날린을 억제하여, 너무 흥분되거나 불안한 감정을 갖지 못하게 하여 평온함을 만들어 준다. 만약 세로토닌이 감소하거나 적정하게 생성되지 못하면 지나친 감정 폭발 혹은 우울증을 앓을 수 있다. 그래서 '세로토닌'은 인간의 행복을 결정하는 중요한 생화학 물질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인간이 상대와 사랑에 빠지는 것도 3단계에 걸친 체내 화학물질의 작용이라고 한다. 사람 간의 사랑이 끌리는 1단계에서는 테스토스테론(남성 호르몬)과 에스트로겐(여성호르몬)이 관여한다고 한다. 사랑의 콩깍지가 씐 2단계에서는 온통 상대방 생각 때문에 주의 집중력이 떨어지거나 경우에 따라 불면증·식욕감퇴·불안감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이 현상은 앞에서 언급한 세로토닌·도파민·노르아드레날린의 상호작용 때문이라고 한다. 상대에 대한 만족감을 느끼는 3번째 애착 단계에서는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이라는 두 가지 호르몬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한편, 한국인이 유독 가을을 많이 타거나 우울증 증세가 심한 것도 과학적으로 설명되고 있다. 영국의 워릭대학교 프로토(Eugenio Proto) 교수의 논문을 보면 세로토닌의 발현을 조절하는 유전자로 포로모토(5-HTTLPR)가 있다. 포로모토 길이가 길면 세로토닌 발현이 잘 일어나서 행복을 강하게 느끼지만, 짧으면 세로토닌 발현이 3분의 1가량으로 줄어들어 우울함을 느끼기 쉽다.

포로모토 길이가 짧은 '우울 유전자'는 지역별·인종별로 그 차이가 있다. 브라질·멕시코·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국가는 전체 국민의 40~50%가 우울 유전자를 가지지만 한국은 그 비율이 70~80%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는 대한민국 사람 10명 중 8명이 선천적으로 우울하기 쉬운 유전자를 타고난다는 뜻이다(세종대 허행량 교수 자료 인용).

불행하게도 한국의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최고 수준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보면 우울증 진료환자가 연간 66만 명에 이르며, 최근 5년 동안 20% 증가했고 한다. 이러한 사실들은 한국인이 높은 우울 유전자를 가졌다는 주장에 과학적 실증을 더해 준다.

결과적으로 인간의 감정·심리 상태는 체내에서 분비·소멸되는 물질들의 화학작용에 의한 결과물이다. 더 나아가면, 우리 몸에서 생성되는 화합물의 상태를 살펴보면 인간의 마음도 읽을 수 있다는 뜻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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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것은 체내 화학물질들의 생성을 인위적으로 조절하면, 인간의 마음도 조절할 수 있다는 다소 섬뜩한 이야기로 들린다. 그렇지만, 이러한 과학적 지식은 부정적인 마음의 병을 고칠 수 있고, 긍정적인 마음의 상태로 전환·유지할 수 있는 희망적인 소식이기도 하다.

늦은 가을의 정취에 취하고 싶은 감성이 인간미 떨어지는 '화학작용'이라 하여 조금 허탈하지만, 행복한 화합물 생성을 위해 기꺼이 화학작용을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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