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비춤]경남 인디음악시대를 열다

지난 3월 네팔을 마지막으로 4년간의 긴 여행을 끝냈다. 부모님이 계신 창원으로 돌아왔다. 이유없이 꼬박 한 달을 앓았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보니 가슴 한쪽이 휑했다. 사람들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나는, 그저 아무렇게나 거리를 방황했다.

난 혼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선 도시에 비밀을 간직한 채로

이렇게 바람이 불어오는 데

이곳이 숲이고 별빛이고

추억이고 사랑인데

어쩔 수 없는 생각들로

나를 가둬두던 시간들은

더 소중한 맘들을 드러내지 못하고

이렇게 꿈들이 멀어질 때

(권나무 '여행' 중)

어느 날 갤러리를 하는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는 나를 진주에 있는 어느 카페에 데리고 갔다. 그곳에서 밴드 공연이 있었다. 밴드 이름은 '엉클밥'이라고 했다. 나처럼 창원에서 왔다는, 조금은 괴상한 친구들이 노래를 시작했다.

사람들

그대 마음 몰라주는 사람들

그댈 떠나버린 사람들 사람들

사람들 그대가 상처준 사람들

그대가 버려버린 사람들 사람들

사랑들 나를 울게 하는 사랑들

나를 웃게 하는 사랑들 사랑들

사랑들 나를 살아가게 하는

나를 사라지게 하는

사랑, 사람, 사랑

(엉클밥 '사람들사랑들')

휑한 가슴 한쪽으로 뭔가 뭉클한 것이 차올랐다. 코앞에서 부르는 노래였지만 마치 아득히 먼 곳에서부터 조용히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 카페에는 수줍은 컨트리 '조용호'도, 청아한 포크 '권나무'도, 춤추는 록 '바나나코'도 있었다. 한 명 한 명이 모두 개성강한 인디 음악을 하는 싱어송라이터들이다. 그 후 나는 자주 진주에서, 때론 창원에서, 가끔 김해에서 그들을 만났고, 노래를 들었다. 그리고 긴 여행 뒤 허방을 짚는 듯했던 마음도 서서히 안정을 찾았다.

일어나 기지갤 펴봐

이 세상이 다 네 앞에 웃고 있어

왜 그렇게 웅크리고 앉아 있니

살아있는 건 즐거운 일인데

(바나나코 '기지개')

음악가들은 모두 젊은 친구들이었다. 그리고 젊은이다운 고민을 한가득 품고 있었다. 때로 그들과 술잔을 앞에 두고, 때로 세상의 아름다움에 대해, 때로 세상의 부조리에 대해, 때로 먹고사는 일에 대해, 오래오래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이렇게 고뇌하는 감성은 그대로 노래를 만들었다.

인디 음악가들은 그렇게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어린애처럼

집에 돌아감을 걱정하네

비로 덮혀진 차창

지친 히피들의 세계

와이퍼는 모든 걸 닦아 주는데

어린 날에 내 감상은

한낱 투명한 글씨였네

(조용호 '거창에서 내려오는 길')

어느 술자리에서 권나무가 말했다. 형님, 가끔은 음악을 한다는 게 좋은 것도 같은 게요, 다 말할 필요 없이 그냥 느끼게 할 수 있거든요. 내가 솔직하게만 음악 한다면 사람들이 알아서 느낄 거고, 또 자신의 삶에 비추어 그 이야기를 또 이해하겠죠.

지난 몇 년간 도내 인디 음악가들이 부쩍 늘었다. 활동도 제법 활발하다. 하지만 여건은 아직도 녹록하지 않다. 노래만으로는 살기 어려워 부업을 하고, 무대가 작아 서울로 갈 고민을 한다. 그래도 이 인디 음악가들은 꾸준히 지역 무대에 선다. 젊은 관객들도 이들이 부르는 노래와 함께 고민하고 함께 성장한다. 이들의 노래는 그 자체로 큰 위로다. 이제 우리가 그들을 격려할 차례다. 이번 주말 공연장에 가보자.

엉클밥의 공연 사진을 바탕으로 그린 삽화.일러스트/서동진 기자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