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이야기 탐방대] (4) 청소년

경남이야기탐방대 활동은 한국콘텐츠진흥원과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이 주최·주관하는 프로그램이다. 경남도민일보 자회사 갱상도문화공동체 해딴에가 진행을 맡고 있는데 '경남·부산 스토리 랩'의 일부로 올해는 합천 남명 조식 관련 유적과 의령·창녕 의병장 곽재우 유적, 남해 손으로 빚는 막걸리를 찾고 그 결과를 글·그림·사진으로 내놓는 일을 했다.

경남이야기탐방대는 청소년·블로거·예술인 셋으로 이뤄져 있다. 청소년은 탐방 주제 셋 가운데 막걸리는 빼고 대신 통영-통제영과 통영 예술·예술인을 잡았다. 합천은 8월 24일 찾았고 통영은 9월 14일 찾았으며 의령에서 곽재우를 만난 날은 11월 2일이었다.

합천에서 만난 남명 조식을 아이들은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잘 몰랐지만 모른다고 하면 쪽팔릴까봐 그냥 듣고만 있었다. 검색해 읽어보니 영남학파 거장 퇴계 이황과 어깨를 나란히 견주는 대단한 인물인데 교과서에서 본 기억이 없다. 퇴계 이황은 교과서에서 자주 뵙고 천원 지폐에서도 많이 봐서 친숙하다. 왜 같은 영남학파 거장인데도 조식 선생은 잘 볼 수 없는 것일까? 조식 선생은 합천에서 제자 육성에 평생을 힘쓰셔서 그런 것 같다."(범용원·경상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 2학년)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경남을 대표하고 우리나라 정신사에 큰 영향을 미친 대단한 선비임을 알아가면서 아이들은 자기들을 포함해 지역 청소년 대부분이 알지 못한다는 데 대해 어이없어했다. 퇴계 이황은 대부분 알지만 바로 옆에 있는 남명 조식은 이토록 모를 수 있다니 오히려 신기한 지경이었다. 교과서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왜 나오지 않을까?

남명 조식 선생을 모시는 용암서원 앞에서 기념촬영을 한 청소년 탐방대.

남명의 가문은 퇴계보다 못했다. 퇴계도 남명도 제자가 많았지만 벼슬을 하고 권력을 누린 이는 퇴계 쪽이 많았다. 제자들은 남명 가르침대로 실천을 중시했기에 임진왜란을 맞아 의병을 많이 일으켰고 그 끝이 벼슬살이와 영화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결정적으로는 광해군 때 영의정까지 했던 남명 수제자 정인홍이 인조반정을 맞아 처형당했다. 이후 중앙 정계에서는 남명 제자들이 거의 사라졌다.

청소년탐방대에게는 남명 제자들의 의병장 활동이 뜻깊게 여겨진 모양이었다. "실제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한 수많은 인물들이 그의 제자였으며, 당대 비교됐던 학자는 퇴계 이황 선생이다. 이황은 이론을 중시한 반면, 조식은 실천을 중시했다.…이론을 안다고 삶이 더 윤택해질까? 실천하지 않는 삶은 빈껍데기 삶이 아닐까."(정다현·경해여자고등학교 1학년)

"남명의 교육철학은 제자를 가르쳤던 서당 뇌룡정과 깊은 관련이 있다. 뇌룡은 '깊은 연못처럼 고요하다가 우레처럼 소리치고 시동처럼 가만히 있다가 용처럼 나타난다.' 평소에는 가만히 있다가 꼭 나서야 할 때 나서라는 말인 것 같다. 이런 가르침을 매일 듣고 보고 느낀 제자라면 임진왜란 때 어찌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을까? … 가만히 있다가 꼭 나서야 할 때 나서라는 그런 교육 정말 멋있다."(범용원)

아이들은 현재로까지 생각을 뻗쳤다. "지금 사회를 남명 조식 선생이 보면 어떻게 행동하실까? 저명한 시민단체의 정신적 지주가 되지 않으실까 싶다. 윤리 선생님이 되어 학교에서 올바른 사상을 가르치거나. 아니면 청와대 홈페이지에 명종에게 올렸던 상소(을미사직소)와 비슷한 내용을 쓰지 않으셨을까? 아무튼, 진정성이 결핍된 지금, 남명 조식 선생의 교육이 진심으로 절실하다고 나는 생각한다."(박주희·경해여자고등학교 1학년)

9월 14일 찾은 통영에서 아이들은 더욱 재미있어했다. 통제영에서 세병관 엄청난 크기에 압도되고 십이공방 체험에 빠졌으며 우리나라와 경남에 고유한 옻칠을 품은 통영옻칠미술관은 물론 시간이 모자라 제대로 못 본 박경리기념관에서도 청소년탐방대는 즐거웠다.

정은희(18·고졸 검정고시 합격) 친구는 서울에 뇌물로 보낼 장롱을 만들라는 주문을 통제영 고위 관리로부터 받은 십이공방 장인들이,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장인정신과 다시는 뇌물을 만들라 하지 못하도록 허투루 만들어야 하는 사이에서 갈등하는 콩트를 썼다. 주희는 이야기탐방대 취지에 걸맞은 내용을 원고에 적었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통제영 십이공방과 세병관, 옻칠미술품이 일으키는 감흥과 일제강점기 소설가 박경리의 어린 시절 따위를 한 꾸러미로 엮었다.

9월 통영을 찾은 청소년 탐방대가 통제영 십이공방에서 나전장 송방웅(왼쪽) 어른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있다. /김훤주 기자

11월 2일 의령과 창녕에서 망우당 곽재우를 찾았을 때 친구들은 한층 깊어져 있었다. 현고수 등 곽재우 유물을 바라보면서는 그이 스승 남명 조식도 떠올렸다. 용원은 "좋은 스승이 좋은 제자를 만들고 좋은 제자는 스승을 빛내는 것 같다. 제자는 꽃이고 스승은 뿌리인 셈이다. 뿌리가 좋다 한들 꽃이 피지 못하면 잊혀질 것이다. 나는 그 꽃을 피워내지 못하는 존재이지는 않을까?" 생각했다.

창녕 낙동강가 망우정을 찾은 청소년 탐방대.

은희는 곽재우 탐방에서 보고 배운 바가 많다면서 이야기를 네 꼭지 만들었다. '전쟁이 아닌 정치적으로 봤을 때 곽재우의 위치'. "망우당 곽재우가 왜 정치에는 전쟁 때만큼 활약하지 못하셨는지 생각해 봤습니다." '남명에서 망우당까지-그들의 사상'. "망우당과 남명 선생은 사제지간으로 사상이 같았잖아요. 그 사상 그대로 현대에 오면 어떨까요?" '망우정의 도인 곽재우'.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친구가 찾아와 망우당이 은거하는 까닭을 찾는 내용이에요." '개성 만점! 청춘들의 즉석 토론!-전쟁과 의병'. "학생들이 남북 사이 전쟁 발발 상황을 두고 옛날 의병과 연관시켜 여러 가지 즉석 토론을 해요."

주희는 곽재우가 의병을 모으려고 북을 내걸었던 나무 현고수(懸鼓樹)가 돼서 임진왜란 이후 곽재우를 들여다봤다. "한사코 벼슬을 거부하다 결국 귀양을 갔노라고. 지금 돌아와 조그만 망우정 짓고 조용히 산다고. 나도 모르게 '역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욕심을 버리고 오롯이 신의를 지키며 본인 뜻대로 굳건히 살아가는 사내. 이런 사내를 다시는 못 만날 것 같았다."

청소년탐방대는 지역을 찾아 인물과 역사를 더듬고 돌아와서는 글쓰기를 통해 그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보는 이런 활동을 통해 경남이 품고 있는 여러 이야깃거리를 조금이라도 더 풍성하게 알게 되고 또 더 많이 느끼게 된 것 같았다. 이와 더불어 생각을 펼쳐나가거나 이야기를 구성하는 힘도 세어지고 자신감도 나름 얻게 된 것 같았다.

청소년탐방대가 통제영 십이공방 패부방에서 나전 체험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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