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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인 세상 읽기]어둠의 적, 인터스텔라

고동우 기자 kdwoo@idomin.com 2014년 11월 26일 수요일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돌려 말할 것 없이 <인터스텔라>는 오만함으로 가득 찬 영화다. 인류는 어떻게든 자기 종족을 보전해 나갈 것이라는 믿음. 지구가 아니면 다른 행성을 찾아내서라도 새 삶의 터전을 만들 것이라는 확신. 그 바탕엔 물론 인간이 자랑하는 고도의 지능과 과학기술의 힘, 수천 년을 이어온 과감한 도전정신, 개척·개발정신 따위가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중대한 진실의 은폐. 지구를 황폐화한 주범으로 묘사되는 병충해와 황사. <인터스텔라>는 이들을 대체 누가, 왜, 어떻게 불러왔는지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영화가 찬양해 마지않는 위대한 인간 그 자신과 인간중심주의적 가치들이다. 인간은 인류의 생존과 번영, 행복이라는 미명 아래 지구의 숨통을 끊임없이 조여 왔다. 병충해와 황사가 무분별한 개발과 과잉 생산·소비, 환경 파괴, 그에 따른 기후변화가 낳은 산물임을 누구도 모르지 않건만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진실에 침묵한다.

<인터스텔라>는 철저하게 미국 중심적인 영화이기도 하다. 배경, 인물뿐만 아니라 인류를 구원하는 주역 역시 미항공우주국(NASA)이다. 하지만 알 수 없다. 그들이 전 인류를 구하는 것인지 아니면 미국인만인지 혹은 일부 '선택된' 미국인뿐인지. 아무리 문명이 발전한다 한들 지구인 전체를 우주로 태워 나르는 게 과연 가능한 것일까?

영화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 우주로 떠난 주인공 쿠퍼의 딸이자 과학자인 머피의 모습이다. /캡처

황야의 고독한 영웅처럼 등장하는 주인공 쿠퍼는 서부시대 '프런티어 정신'을 상징하는 존재다. 미개척 서부에서 미지의 우주로. 카우보이에서 우주 비행사·과학기술자로. 은폐는 계속된다. 도전과 개척을 앞세워 수많은 인디언, 약소국 원주민을 무참히 학살하고 짓밟았던 폭력의 역사. 자본의 무한증식과 자원 확보, 정치·군사적 지배력 확장을 위해 세계 곳곳에서 온갖 '깡패짓'을 일삼아온 탐욕과 패권의 화신.

그러므로 우주로 떠나는 쿠퍼 일행이 가장 먼저 챙겨야 했던 것은 과학기술이나 지식이 아니었다. 반성과 성찰이었다. 상황은 이미 벌어졌고 '죽느냐 떠나느냐' 선택만 남은 현실에서 대체 그런 게 무슨 소용이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과연 그럴까. 만일 그들이 찾아낸 지구와 유사한 행성에 또 다른 생명체가 살고 있다면 어찌할 것인가. 지구에서 하던 방식과 사고 그대로, 오직 인간만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오만함으로 똘똘 뭉쳐 있는 한 그 별 또한 지구의 운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지구인은 외계 생명체에게 자기 터전을 망가뜨리는 '병충해' '모래바람'과 다름없는 존재일 뿐이다.

자식과 가족에 대한 사랑? <인터스텔라>는 인류 구원의 가장 강력한 동력으로 사랑을 내세우지만 역시 마찬가지다. 사랑은 물론 고귀한 것이지만 때로 폭력과 파괴를 정당화하는 섬뜩한 무기가 되기도 하는 법이다. 미국이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이라크를 침략했듯이.

<인터스텔라>는 영화의 핵심 메시지를 함축한 웨일스 시인 딜런 토머스의 시를 내내 반복한다.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오/분노하고 분노해요, 사라져가는 빛에 대해"로 시작하는. 아니다. 인간은 어둠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분노하기보다 공존·적응하는 법을 이제라도 배워야 한다. 자연의 순리를 거부하고 자기 욕심만을 채워왔기에 지구는 지금 우리를 버리고 있는 것이다. <인터스텔라>는 순리를 또다시 역행하자고 선동하는 최후의 발악과도 같은 영화다. 우리는 그게 '답'이 아님을 이미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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