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동구 밖 생태·역사교실] (25) 밀양

진해 해담·참살이지역아동센터 아이들과 함께 11월 22일 밀양을 찾아 얼음골옛길을 걸었다. 두산중공업에서 진행하는 '토요 동구밖 생태체험' 열세 번째 나들이였다. 얼음골옛길은 얼음골케이블카 조금 못 미쳐 마련돼 있는 널따란 주차장에서 얼음골 있는 데로 살짝 올라가다가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지면 4km 정도 이어진다. 옛날에는 얼음골로 들어가는 자동차들이 여기로도 많이 다녔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아스팔트로 포장까지 돼 있는 이 옛길은 승용차 같은 경우 두 대가 마주쳐 지나가도 아무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넓기까지 하다. 또 얼음골 있는 데서 남명마을 쪽으로 걷기 시작한다면 죄다 내리막길이면서 경사도 많이 져 있지 않다. 그러니까 좁지 않고 너르며 거의 평지를 걷는 수준으로 평탄한 길인 셈이다. 여기에 더해 걷는 사람을 불안하게 하는 자동차조차 거의 다니지 않으니 요즘 보기 드물게 걷기 좋은 길이라 할 수 있겠다.

더욱이 날씨까지 아이들 걷기 좋도록 받쳐줬다. 초겨울답지 않게 따뜻했으며 바람도 불지 않았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는 햇살이 걷는 내내 내리비쳤다. 그늘에 들면 시원한 그늘이라서 좋고, 양지로 나서면 따사로운 햇살이 밝게 빛나서 좋았다. 4km가량 되는 거리가 아이들한테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아직 학교에 들어가지도 않은 여섯 살짜리 꼬맹이부터 중학교 다니는 아이들까지 거의 모두 즐겁게 발품을 팔았다.

진해 해담·참살이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이 22일 밀양 얼음골옛길로 토요 동구밖 생태체험을 떠났다. 산길을 걸으며 모은 나뭇잎을 스케치북에 붙여 나름의 그림을 그리고 있는 아이들. /김훤주 기자

그러니까 사방이 콘크리트로 가득한 도시에서 그리고 텔레비전이나 보고 게임이나 하는 집안에서 벗어나 자드락 산길을 걷는 자체가 즐거움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사방 천지에 가득한 나뭇잎들도 아이들을 반겼다. 깊어가는 가을을 맞아 붉거나 노랗게 색깔을 바꾼 잎들은 나무에 매달려 있기도 했고 바닥에 떨어져 있기도 했다. 어쩌다 바람이 일면 바닥에 깔려 있던 잎들이 일어나 울긋불긋 흩어지기도 했고, 나무가지에 매달린 것들이 속절없이 휘말리며 떨어지기도 했다. 아이들은 이런 나뭇잎들을 향해 달려가며 손을 펼치거나 입을 벌리거나 했다.

아이들은 지역아동센터 선생님이나 두산중공업사회봉사단에서 나온 선생님까지 쳐서 서너 사람이 한 팀을 이뤄 함께 걸었다. 걸으면서는 벚나무·서어나무·단풍나무·민들레·엉겅퀴·강아지풀·쑥부쟁이 같은 나무와 풀의 가지와 잎들을 따고 주워 모았다. 단풍이 든 녀석도 있었고 이미 물기 없이 마른 녀석도 있었고 아직 푸릇푸릇한 녀석도 있었다. 아이와 어른들은 덕분에 즐거웠고 걷는 속도는 덩달아 느려졌다.

조금 지나니 옛길 양쪽으로 그 유명한 얼음골사과를 기르는 과수원이 이어졌다. 벌써 많이 따내서 사과가 몇 알 남지 않은 나무도 많았지만 가지가 처지도록 열매를 매단 나무도 여럿이었다. 주렁주렁 매달린 사과는 아이들에게 또다른 볼거리였다. 걷다가 보니 사과를 베어물고 있는 아이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어떤 친구는 "길가에 떨어져 있는 것을 닦고 씻어서 먹는다" 했고 어떤 아이는 "'사과 얼마 해요?' 물었더니 할머니가 그냥 하나 주시더라" 했다. 그러면서 "차갑고 시원해요, 맛이 좋아요" 했다. 오늘 아이들은 복받았다.

얼음골옛길을 이렇게 걷는 데 1시간 20분가량 걸렸다. 12시 30분 즈음 바로 아래 얼음골폭포농장으로 버스를 타고 옮겨가 뷔페식으로 차려진 점심을 먹었다. 맛있게 먹고는 다리를 건너 남명초등학교 뒤편에 있는 솔숲으로 향했다. 솔가리도 깔려 있고 그늘도 내려앉아 있는 데에 자리를 잡고는 얼음골옛길을 걸으면서 모은 잎사귀들을 스케치북에다 그럴듯하게 붙이는 일을 했다.

얼음골옛길에서 그럴듯한 나뭇잎을 찾고 있는 꼬마.

아이들과 선생님이 삼삼오오 팀을 이뤄 이런저런 모양을 만들었다. 어떤 팀은 노랗게 물든 둥근 잎을 붙여 달 모양을 나타내고 다른 여러 색깔 잎사귀로는 들판과 나무를 표현했다. 어떤 팀은 붉은 나뭇잎을 커다랗고 둥글게 붙인 다음 솔방울을 얹어 놓고는 피자라고 했다. 또 어떤 팀은 사람 얼굴을 나타내기도 했으며 어떤 팀은 무엇인지 알아보기 어려운 추상 작품도 만들어 내놓았다. 아이들 돌멩이 투표로 셋을 고른 다음 선생님들로 하여금 다시 고르게 했더니 하나만 떨어뜨리고 둘을 뽑았다. 두 팀 여섯 아이에게는 1000원씩이 든 장학금 봉투가 돌아갔다.

어른들도 그런 경우가 많지만 아이들은 설명을 하기 시작하면 늘어지거나 고개를 돌려버리기 십상이다. 설명이 사람을 생각하는 주체가 아니라 듣는 객체로 만들기 쉽기 때문이다. 아이들 궁금증과 호기심을 끌어올리는 데 적격인 것 가운데 하나가 '도전! 골든벨'이다. 쥐꼬리만하지만 장학금까지 걸려 있으면 아이들은 더 능동적으로 된다.(물론 다 그렇지는 않다.) 오늘은 소나무들이 기품 있게 자라는 솔숲에 들어 그런 기운 아래에서 낙엽 붙이기까지 했으니 소나무가 주제다.

첫 번째 문제는 소나무가 많은 숲이 젊은 숲일까 아니면 소나무가 적은 숲이 젊은 숲일까였다. 아이들은 재미있어 하면서도 많이 헷갈려했다. 정답은 '소나무가 많을수록 젊은 숲'. 확인해 보니 절반이 넘게 틀렸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알고 있었다. 소나무는 잎이 좁아서 잎사귀가 넓고 큰 참나무 같은 활엽수에게 자꾸자꾸 밀려난다는 사실을. 그러니까 처음 생겨난 젊은 숲에는 소나무가 많지만 세월이 흘러 늘어갈수록 줄어들고 대신 참나무 같은 활엽수는 많아지는 것이다.

나뭇잎 그림을 누가 더 잘 만들었는지 둘러보는 아이들.

소나무는 꽃이 필까요? 피지 않을까요? 같은 문제도 있었다. 꽃이 피지 않는 줄 아는 아이가 뜻밖에 많았다. 모든 나무는 꽃이 핀다. 무화과나무도 꽃이 핀다. 소나무에 피는 꽃은 나중에 솔방울이 된다. 그렇지만 소나무 꽃가루=송홧가루를 먹을 수 있는지 여부를 물었더니 대부분이 먹을 수 있다고 정답을 적었다. 아이들은 역시 먹는 것에 강하다. 또 소나무 에이즈라고도 하는 나무병이 무엇인지 객관식으로 물었더니 이 또한 대부분이 맞혔다. 아이들은 역시 매스미디어 영향을 많이 받는다.

더불어 소나무에서 나는 버섯(송이버섯), 소나무가 막걸리를 마시면 어떻게 될까?(싱싱해진다) 등등 모두 열세 문제를 내었다. 어떤 아이는 진지하게 답을 적고 어떤 아이는 궁금증 가득한 눈망울을 굴리기도 했다. 가장 많이 맞힌 아이에게 돌아가는 1000원짜리 장학금 봉투는 여덟 문제에서 정답을 적은 친구가 받았다.

이렇게 놀고 거닐고 하다가 솔숲 그늘에서 몸을 빼낸 때가 오후 2시 20분 즈음. 남명초등학교 운동장을 가로질러 걷는데 햇살이 쨍했다. 밀양서는 때때로 이순신 장군보다 사명대사가 더 대접을 받는다. 같은 임진왜란을 맞아 나라를 위해 왜적과 싸운 이들인데, 사명대사 고향이 밀양이기 때문이다. 남명초교 운동장 동상들이 그랬다. 사명대사는 한가운데 건물 들머리에 우뚝 자리잡은 반면 이순신 장군은 건너편 운동장 한쪽 구석에 외따로 있다. 걸으면서 이런 얘기를 해줬더니 동상 생긴 모양을 한 번 더 바라본다.

※이 기획은 두산중공업과 함께합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