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까머리 소년 단발머리 소녀 타임머신 타고 시간여행…동창들과 코스 그대로 밟으며 향수 되새겨

대부분 사람들은 가슴 한편에 아련한 추억 장면 하나쯤을 간직하고 산다. 친구와 우정이든 옛 연인과 사랑이든….

때때로 그 추억 장면을 기억에서 끄집어내 되돌려보면 "내가 이럴 때도 있었지" 하며 작은 미소를 짓기 마련이다. 그 미소는 현실 삶에 따스한 위로가 되기도 한다.

특히 학창시절 수학여행을 함께한 친구들에 대한 옛 이야기는 언제나 가슴 설렌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의 애틋한 향수가 묻었기 때문일까.

어떤 때는 그 향수를 추억으로만 맡기에는 좀 아쉬운 구석이 있다. 그 추억을 현실로 만들면 어떨까.

창원시 의창구 중동에서 공인중개업을 하는 박봉남(51) 씨는 얼마 전 추억을 현실로 만드는 작업을 했다.

중학교 동창들과 37년 전 함께 떠난 수학여행지를 다시 한 번 여행하는 시간을 마련한 것이다. 구남중학교 5회 졸업생인 박 씨는 지난 2월 여학생으로는 처음으로 동창회장이 됐다.

공인중개사 박봉남 씨.

매년 정기적으로 하는 산행이나 모임이 특색이 없고 늘 보던 이들만 보게 만드는 단점이 있음을 느낀 그는 친구들과 추억을 색다르게 기억할 수 없을까 고민했다. 일상에서 얻은 스트레스도 해소하면서 친구간 정도 돈독하게 하는 방법을 찾던 박 씨는 '수학여행'에 마음이 닿았다.

학창시절 떠난 수학여행은 학업에 고통스러웠던 자신을 해방시키고 친구들 사이에서 말수 적고 수줍은 아이로 기억되던 자신을 더 명랑하게 만들어 준 기억이 있어서다.

"친구들은 제가 겉으로 말수도 없어 그런지 조신하고 수줍음이 많다고 생각한 모양이더라고요. 근데 제 내면에는 친구들과 밤새 수다도 떨고 다양한 끼가 잠재돼 있었거든요. 이를 발견하게 해 준 것이 당시 수학여행이었죠."

구남중학교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반동리에 있다. 인근 구복리, 내포리, 난포리, 심리, 옥계리 일대 사는 학생들이 모여 공부한 학교다.

바다를 끼고 산으로 둘러싸인 이곳 학생들은 지역적 기질을 타고나서인지 겉으로 과묵하면서도 개구진 끼가 많았다. 학교에서는 말수 없는 조신한 친구로 기억되던 박 씨지만 집안에서는 개구쟁이로 통했다. 세 자매 중 막내딸로 부모님 사랑을 담뿍 받은 덕이었을까.

구남중학교 5회 졸업생들이 37년 전 경주 수학여행 당시 불국사를 배경으로 찍은 단체사진.

집안에 있는 쇠붙이를 엿으로 바꿔먹기도 하고 그림그리기를 좋아해 수업시간과 쉬는 시간 공주와 공주 드레스 그리는 삼매경에 빠졌다. 만화도 좋아해 만화 속 인물을 따라 그리며 소녀 감성을 키우기도 했다. 과묵해도 남들 하는 건 다 하는 그런 학생이었던 셈이다.

이런 마음 쓰임새가 '추억의 수학여행'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였다. 여행은 지난 16일 하루 일정으로 진행했다. 37년 전 경주로 간 수학여행 코스를 그대로 따랐다. 불국사와 석굴암, 안압지, 대릉원과 천마총, 첨성대, 포석정 등으로 이어지는 코스는 지난 시절을 추억하는 데 충분했다.

"최대한 중학교 때 일정에 맞추려 노력했어요. 옛 추억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도록 말이죠.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도 친구들은 가슴 속에 옛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나 봐요. 다보탑에서 누구와 사진을 찍었는지, 안압지에서 누가 어떤 장난을 쳤는지를 다 기억할 정도로 말이죠."

단순히 옛 장소를 가본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경주에 가면서 그때 그시절 즐겨 듣던 노래를 들으며 여행하는 콘셉트도 잡았다. "옛날에는 아바(ABBA), 엘비스 프레슬리, 비틀스가 부른 팝을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런 노래들을 준비해 같이 들으며 가려 했는데 여건이 안돼 아쉽게 그러지는 못했어요."

그래도 동기 간 정을 나누는 일에는 몸소 추억을 되새기는 일만한 것도 없음을 느꼈다. "예전 같으면 동창이 20명 남짓 오면 많이 왔다고 했어요. 그런데 이번 여행에는 무려 35명이 함께 추억을 찾아 떠났거든요. 동창회 활동에 소극적이던 친구들도 수학여행으로 다시 만나 함께 옛 정을 나누다 보니 다들 중학생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어요."

구남중 5회 동창생들이 지난 16일 추억의 수학여행을 떠나 불국사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

자신이 원하고 재밌어하는 일이라면 반드시 찾아 하는 박 씨는 지난 2005년부터 공인중개사 일을 하고 있다. 제약 회사와 홈쇼핑 계통 등 일을 했지만 결혼, 자녀들 뒷바라지를 이유로 그만 두고 십여 년을 보낸 후 적성에 맞춰 찾은 직업이다. 시간에 매이기보다 자유로우면서도 이런저런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 좋은 집은 돋보이게 해주고, 안 좋은 집을 좋게 포장하지 않는 '솔직함'을 무기로 중개 일마다 최선을 다한다.

"늘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사람 대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솔직함 덕분인 것 같아요." 아련한 옛 추억이든 미래를 그리는 꿈이든 뭐든 실현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인드로 살아가는 젊은 50대 청춘이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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