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비춤]한·중 자유무역협정의 그늘..."동북3성에서만 3000만 마리 사육, 가격경쟁 불가능"

지난 10일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을 선언했다. 닷새 뒤 박 대통령은 한·뉴질랜드 FTA 협상 타결 소식도 알렸다.

정부는 이른 시일 내에 국회 비준 절차를 거친 후 시행하겠다는 계획이다. 잇따르는 FTA 체결 소식에 젊은 축산인 조성래(45·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씨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 '지난 2012년 한·미FTA 국회 비준 전후 일어난 소값 파동으로 축산농민들이 큰 고통에 휩싸인 사실을 벌써 잊었단 말인가….'

그는 그동안 FTA가 축산 농가에 끼친 피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무 대책 없이 '덮어놓고 FTA'를 체결하는 정부에 깊은 불신이 쌓였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소값 파동이 일어나자 정부가 도축을 허용하고 직불금에 폐업지원금까지 줘 가면서 많은 축산농가를 문 닫게 했습니다. 그런 일이 이번에 다시 되풀이되지 말라는 법이 없어요." 그에게도 한·미FTA 당시 기르던 소 100마리를 서둘러 판 기억이 남아 있다.

이번 한·중FTA 협상에서 정부는 중국산 육우를 시장 개방 대상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중국에는 한우와 비슷한 호주산 '화우'를 대량 사육하는 기업농이 늘고 있다. 쇠고기 관세율 40%를 적용해도 저가 중국 쇠고기가 국내에 대량 유입하면 축산업계 타격이 불가피하다. "현재 동북3성 사육 두수만 3000만 마리입니다. 중국 정부는 이를 대규모 기업농으로 육성하는 정책을 펴고 있어요. 한우 큰놈이 500만 원이면 중국 소 큰놈은 150만~200만 원 선입니다. 생산비 경쟁이 안 돼요. 중국산 수입 소든 쇠고기든 유입하면 문제가 큽니다."

조성래 씨가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축사에서 자신이 키우는 소를 바라보고 있다. 한·중FTA 소식 탓에 그의 표정에는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박일호 기자

안심되는 건 FTA와 관계 없이 '동식물에 대한 위생검역기준'에 따라 구제역 상시 발생국인 중국 소 국내 수입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제질서 속 '힘'의 논리는 이 정도 제도쯤은 쉽게 뛰어넘으리란 판단이다. "한·중FTA는 마치 '토끼와 거북이' 경주나 다름없습니다. 중국은 한 개 성(省)이 우리나라 크기만큼 농업을 합니다. 생산량과 가격면에서 중국 농축산물과 국내 것이 경쟁이 됩니까. 정부가 애초에 하면 안 되는 경주를 시작한 겁니다. 이제 한·미FTA 때 그랬듯 축산농가는 생산비 절감에 목맬 겁니다. 인력 줄이니 노동시간 두 배, 세 배 늘어나고, 경쟁력 갖추려 규모화하면 빚도 늘어납니다. 살아남을 농가가 몇 되겠습니까."

잇따른 FTA 체결은 축산 시장을 교란하는 주범이 됐다. "축산인들은 소값 상승·하강 주기를 10년으로 봅니다. 그런데 정부가 소값이 올라 쇠고기가 비싸다고 FTA 수입 물량을 늘리면 하락 주기를 어렵게 견딘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이미 FTA는 축산시장을 항상적인 소값 파동 형국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이러니 축산농가만이 아니라 전체 국민을 위해서라도 '덮어놓고 FTA'를 당장 그만둬야 한다.

"한자로 소(牛)를 보십시오. 사람 인(人)에 열십(十)자입니다. 소가 10사람 힘을 냅니다. 근데 소 한 마리는 100사람 먹거리가 됩니다. 축산업이 흥하면 소먹일 때 필요한 농사도, 사료 공장도 잘돼 1000명을 먹여 살립니다. 농축산은 생명의 고리이자 비타민입니다. FTA를 하더라도 5∼10년을 내다보는 확실한 농가 대책 세워 이해와 설득을 구하고 진행해야 합니다."

그는 젊은 나이에 일찌감치 축산 농민 길에 들어섰다. 부친 때부터 이어진 45년 가업이다. 진주농림전문대학 축산과를 나와 20년 넘게 축산에 매진한 그는 현재 400마리 가까운 소를 키운다. 어떤 날 비가 오기 전에는 꼬박 25시간을 일할 때도 있다. 소값 파동으로 하루아침에 재산 가치 절반을 잃어 실의에 빠진 때도 있다. 사료값이 오르고 소값이 내리면 생활비도 제대로 못 버는 때도 있다. 그래도 20년 전 시작 때 마음으로 끝까지 농촌 땅을 지킨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잇따르는 FTA는 그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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