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농을 찾아서] (80) 하동 악양왕언니농원 안현자 대표

"빨리 빨리 온나. 어찌하는지 보면 모리나. 따가지고 와서 살짜기 부면 된다 아이가."

"가매야~ 가매야~ 니는 이리 와서 따논 거 좀 골라라. 숙자야 니도 이리 온나."

하동군 악양면 중대리에 있는 악양왕언니농원 대봉감 과수원. 주인 안현자(65) 씨의 중학교 동창들이 감 따는 것을 도와 주러 하루 짬을 냈다.

하지만 주인의 휘몰아치는 닦달에 이내 불만이 터져 나온다.

"야~ 몇 개 땄으니깐 먼저 묵어보고 나중에 따자."

"밥은 안주나. 밥부터 먹이고 일을 시키야제."

그런데 닦달하는 주인도, 푸념하는 일꾼도 얼굴에는 웃음 가득이다. 모두 환갑이 지난 나이지만 마치 50여 년 전 학창 시절로 돌아간 듯 왁자지껄하다.

41년간 교직생활을 마감하고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대봉감 과수원을 운영한 안현자 대표. 언제나 웃음이 가득하다. /김구연 기자

◇자원봉사 끊이지 않는 농원 = 안 대표 농장은 일꾼을 거의 쓰지 않는다. 2남 2녀를 두고 있어 사위·며느리까지 일손을 도우러 오면 큰 힘이 되는데다 동창 등 지인들의 일손돕기 발길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올가을에도 안 대표의 중·고등학교 동창들과, 하동군의회 의장 출신인 남편 임정수(73) 전 군의원과 인연을 맺은 타 시군의회 전 의장 부부 등 여러 사람이 농원을 찾아 대봉감을 땄다.

이날도 진서중학교 동창 5명이 악양왕언니농원을 찾았다. 활달하고 흥이 많은 안 대표의 곁에서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안 대표는 교직 생활 41년을 하고 교감으로 정년퇴직했다. 그것이 2011년 8월 일이다. 그전부터 농원은 갖고 있었다. 임 전 의원과 1977년부터 녹차를 재배하는 춘추다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점차 녹차만으로는 힘들다는 생각에 1988년 무렵 대봉감 나무를 일부 심었다.

그러다 2010년 춘추다원의 녹차를 완전히 갈아엎고 대봉감으로 전환했다. 마침 2009년 하동군은 악양대봉감을 '지리적 표시제' 등록을 했다. 지리적 표시제란 농산물이나 가공품의 명성, 품질 등이 특정지역의 지리적 특성에 기인하는 경우 그곳에서 생산된 특산품임을 표시하는 것이다.

◇퇴직 후 본격적으로 농사 시작 = 처음 농사일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안 대표가 아니라 임 전 의원이었다.

"원래 이곳은 완전 다랑논으로 된 산이었습니다. 그것을 남편이 굴착기로 밀고 작업해서 평탄화하고 과수원으로 꾸몄죠. 많은 작업을 기계로 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요즘은 대농으로 기계화하지 않으면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면장 등 공무원 생활을 하다 보니 농원에 신경을 쓸 수 없었다. 결국 실질적인 농사일은 친척 등 남의 손에 맡기고 주로 관리를 하게 된다. 그러다 퇴직 후인 2011년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내가 직접 하는 것과 남에게 맡기는 것은 차이가 컸습니다. 막상 본격적으로 하려고 보니 모든 것이 엉망이었죠. 그때부터 농업기술센터에 가서 교육이란 교육은 다 받았습니다. 옛날 것을 가지고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보화 시대, 온라인 등 배울 것이 너무 많았다. 한편으로는 신이 났다. 그동안 40여 년 가르치는 입장에 있다가 어느 날 배우는 입장이 되니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강소농 교육, e비즈니스 교육 등 교육이 있다면 열심히 받으러 갔다. 바쁠 때는 감을 따다가도 교육받으러 갔다가 중간에 농원에 와서 일하고 다시 달려가기도 했다. 가지치기도 전문가에게 다시 배웠다.

자연은 배운 만큼, 투자한 만큼 돌려줬다. 배움을 놓을 수 없는 이유다.

◇자연을 지키는 환경 조성이 비결 = 아무래도 농사를 짓다 보면 제일 문제는 병해충이다.

"배운 대로 해도 안 될 때가 있습니다. 현장 상황에 맞게 바로바로 적용하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제일 힘든 건 자연재해입니다. 태풍이 왔을 때 제일 속상했죠. 지난해에는 기후가 갑자기 변해 감이 다 떨어졌습니다. "

악양왕언니농원 대봉감 생산량은 연간 20t가량. 크게 4곳에 흩어진 농원은 모두 4만 1000㎡(1만 2500평)에 이른다. 생산된 감은 농협 등에 절반 정도 나가고 나머지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직거래로 나간다. 상품성이 떨어지는 감은 곶감이나 말랭이로 가공된다.

판매에 큰 어려움을 겪지는 않는다. 그 첫 번째 비결은 크기가 크고 당도가 높고 색깔이 좋은 감 품질이다.

"땅을 지켜줍니다. 몸 건강을 위해 보약을 먹듯 땅 관리를 잘해야 좋은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소 농가와 연간 계약을 해서 소 거름 1년 치를 실어 와서 초겨울 감을 따고 나면 덤프트럭으로 과수원에 붓습니다. 그럼 손자까지 온 가족이 다 와서 나무마다 소 거름을 나눠줍니다. 자연을 지켜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화학비료를 쓰면 쉽지만, 땅에 좋지가 않아요."

또 계곡이 바로 옆에 있어 과수원에 적당한 '습기'가 공급되는 것도 좋은 과일을 얻는 비결로 꼽았다.

"악양 대봉감이 나는 지역은 분지 지역입니다. 섬진강물이 안개처럼 뿌옇게 주위에 번지죠. 그래서 맛있는 듯합니다. 같은 나무를 다른 지역에 심었는데 여기만큼 맛이 없더라고요."

또다른 비결은 사람이다. 안 대표의 곁에 끊이지 않는 사람들이 결국 고객이 되고 홍보맨이 된다.

◇체험 프로그램 하고 싶은 교육 전문가 = 안 대표가 하고 싶은 것은 많다.

"교직에 있으면서 국가로부터 40년간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하동, 그리고 악양을 홍보하는 데 힘을 보태는 것이 내가 받은 것을 사회에 갚는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이곳에 쉼터를 만들어 누구나 와서 쉴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오면 하동 특산물 홍보는 절로 될 테니까요."

안 대표는 먼저 교육 전문가로서 자신의 경험과 능력을 살리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또 하동군 자연 학습의 미래를 만들고 싶어 한다.

"지역 환경이나 여건에 맞는 미래를 찾아야 합니다. 자연환경을 이용해 관광지로 만들고 팜파티 등을 하면 도시민들이 즐겁게 쉬러 올 것입니다."

세 번째 꿈은 주위 힘든 다문화가정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안 대표는 2남 2녀를 두고 있는데, 중국 유학을 갔던 둘째 아들은 중국인 며느리를 데려왔다. 또 서울에 살고 있는 둘째딸은 미국인 사위를 데려왔다. 안 대표의 가족이 이미 다문화가정이다.

그런 안 대표에게 어느 날 하동군에서 지역에 있는 어려운 다문화 가정 여성들과 친정 엄마 자매결연을 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안 대표는 단번에 승낙했다. 그리고 베트남에서 온 여성과 결연을 하고 틈틈이 연락하며 지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안 대표는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싶다고 밝혔다.

"손자나 친구들이 자주 와서 자고 갑니다. 밖에 텐트를 치고 자거나 수확 체험 등을 하면 모두 아주 좋아합니다. 그런데 아직 전문적으로 할 여력은 없어 계획만 하고 있습니다."

악양왕언니농원에서는 봄에는 고사리나 녹차, 매실, 가을에는 대봉감, 겨울에는 곶감, 그리고 사계절 내내 감식초나 감말랭이, 매실 진액 등을 가공한다. 지금은 1차 농산물 생산이 주이지만, 점차 가공 등을 확대하고 전문화하는 것도 고려 중이다. 문의 010-9338-9098.

<추천 이유>

◇한종철 하동군농업기술센터 농축산과 부농육성담당 = 악양왕언니농원 안현자 대표는 40년 교직 생활을 마무리하고 자연으로 돌아와 고품질 대봉감, 매실을 재배하면서 농산물체험학습, 악양 관광, 팜파티 등을 연계해 농산물 부가가치 향상과 판매 안정화를 위해 노력하는 강소농입니다. 2013년 농업인대학 여성엘리트반 회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정보화농업인 하동군지회 감사를 맡아 SNS를 통한 농산물 판매와 체험활동 등 다양한 정보교류로 지역농업 발전과 농업6차 산업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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