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사람] '에너지절약 선두주자'박용규 창원시 경화대동다숲아파트 관리소장

매월 셋째 주 토요일 오후 8시 30분. 1300여 가구가 사는 창원시 진해구 경화동 아파트(대동다숲아파트·삼정그린코아아파트·포스코더샵아파트) 단지 불이 꺼진다. 순식간에 어둠에 휩싸인 단지. 하지만 불평하는 주민은 없다. 아무 일 없다는 듯 느긋하게 양초에 불을 붙이거나 밖으로 나와 이웃과 담소를 나눈다.

대규모 정전이 의심되는 이 상황은 진해구 경화동 아파트 주민이 지난해부터 펼쳐온 '한 달에 한 시간 불 끄기 운동'이다. 오후 8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 이곳 주민은 매월 한 시간씩 '에너지 절약'을 몸소 실천해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박용규(59) 경화대동다숲아파트 관리소장이 있다.

박 소장이 불 끄기 운동을 제안한 것은 지난해 3월이다. 매년 3월 29일 열리는 '지구촌 불 끄기 운동'이 계기였다. 불 끄기 운동이 한 해 일회성 행사로 그치는 데에 아쉬움을 느낀 박 소장은 몇몇 주민에게 '우리 동네만이라도 이 운동을 정기적으로 펼쳐보자'는 뜻을 밝혔다.

단순한 의견 제시로 끝날 수 있었던 박 소장 뜻이 날개를 단 건 '창원시 저탄소 녹색아파트 경진대회'였다. 당시 창원시는 경진대회에 참가한 아파트별 '특색 있는 사업을 펼쳐보라'고 주문했고 박 소장은 불 끄기 운동이 그 중심에 설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물론 이는 주민 의지가 밑바탕 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2012년 창원시 환경수도과가 펼쳐온 '탄소포인트제'를 접하게 됐어요. 간단한 절약행동 요령만 생활화한다면 적절한 인센티브가 주어지는 등 주민 생활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봤죠. 적극적으로 홍보하며 주민 가입을 유도했어요. 탄소포인트제 가입률은 점차 높아졌고 자연스레 에너지 절약과 관련한 주민 인식도 달라졌죠. 우리 주민이라면 불 끄기 운동도 성공적으로 정착할 것이라 믿었죠."

한 달에 한 시간 불 끄기 운동을 전개하며 에너지 절약을 실천해 오고 있는 박용규 경화대동다숲아파트 관리소장. /박일호 기자 

그렇게 지난해 '창원시 녹색의 날(매월 22일)'을 기념하며 3월 22일 처음으로 불 끄기 운동을 펼쳤다. 주민의 자발적인 참여를 목표로 삼고 '사정이 있으면 불을 켜도 된다'는 안내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어요. '왜 불을 끄냐', '불편하다'는 등의 주민 불만도 더러 있었죠. 하지만 개의치 않았어요. 불 끄기는 강제사항이 아니었고 주민 의사가 가장 중요했으니까요."

시간이 지날수록 주민도 박 소장 뜻에 힘을 보태기 시작했다. 22일이면 시간에 맞춰 자연스레 불을 껐고 아파트 내에서는 불 끄기가 최고의 대화 주제로 떠올랐다. 앞장서 다른 에너지 절약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주민도 생겼다. 어느새 주민 참여율은 90%에 다다랐다.

올해부터는 매월 22일이던 불 끄기 시간을 매월 셋째 주 토요일로 바꿨다. '토요일 저녁'이라는 정확한 시간을 더 널리 알리는 동시에 '소소한 문화'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다. 불 끄는 시간에 맞춰 아파트 한쪽에서는 '영화 상영회'도 열었다. 온 가족이 영화를 보러 나오는 가구는 1시간을 훌쩍 넘는 절전 효과를 보이기도 했다.

불이 꺼진 경화대동다숲아파트.

"불 끄기 운동은 1시간 동안 실내등만 끄면 돼요. TV나 컴퓨터 등 다른 전기는 사용해도 상관없죠. 하지만 다른 전기까지 아끼려는 생활 방식이 주민 사이에 싹 트기 시작했어요. 올해는 경화동 으뜸 마을 만들기 사업의 하나로 13가구에 소규모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하기도 했죠. 이제 에너지 절약은 우리 동네의 새로운 문화예요."

가구별 한 달 평균 전기 사용량이 241㎾/h라는 점을 고려하면 불 끄기 운동을 통해 1년 동안 1430㎾/h에 달하는 에너지가 절약된 셈이다.

여기에 박 소장은 불 끄기 운동에 또 다른 의미 하나를 더한다. "불 끄기 운동을 통해 주민 간 소통이 싹텄어요. 자칫 삭막할 수 있는 도심 속 아파트 단지가 정이 넘치는 '우리 동네'로 변화하기 시작한 셈이죠."

박 소장은 남은 바람도 숨기지 않았다. "불 끄기 운동이 우리 아파트뿐 아니라 진해구 전체로 퍼졌으면 해요. 물론 막연한 희망이나 에너지를 절약하고 이웃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이만한 일도 없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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