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킹카' 선후배로 만나 양가 결혼 반대 믿음으로 극복

창원시 성산구에 사는 박남용(44) 윤혜숙(43) 부부는 결혼한 지 17년 됐다. 옛 기억을 꺼내기 위해 부부가 마주 앉았다. 처음에는 멋쩍어 했다. 하지만 이내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한 표정이었다.

남용 씨는 은근슬쩍 자기 자랑을 했다.

"고등학교 때 함께 어울리던 무리가 저 포함해 7명이었죠. 모두 키가 180cm 넘고, 얼굴도 장동건 저리 가라예요. 7명이 거리에 나가면 여학생들이 줄줄 따랐죠. 그중 제가 제일 인기 좋았습니다. 밸런타인데이 때 받은 초콜릿을, 거짓말 아니고 1년 내내 먹었습니다."

혜숙 씨는 인정하는 듯 별다른 토를 달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모습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둘은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불교학생회 활동을 했다. 남용 씨가 고3, 혜숙 씨가 고1이던 1987년 어느 봄날, 둘은 스치듯 만났다.

학창시절 소위 잘나가던 남용·혜숙 씨. 

(남용 씨) "신입생들 새로 들어왔다고 해서 얼굴 보러 갔죠. 병아리들이 고물고물 들어오데요. 그 속에서 혜숙이를 보았는데, 음…. 병아리 중에 최고 병아리였습니다."

(혜숙 씨) "학교 다닐 때 멀리서 몇번 볼 수 있었죠. 키가 크고 배구도 잘하는 멋진 선배였어요. 속으로 '저 선배 한번 좋아해 볼까'라고 생각했지만, 그럴 기회가 없었죠."

고등학교 때는 그 정도였다. 그리고 20대 중반이던 1995년 크리스마스 이브날 길거리에서 우연히 재회했다.

(남용 씨) "아까 말한 친구들과 송년회 하는 날이었습니다. 길에서 한 친구가 '쟤 혜숙이 아니냐'라고 하데요. 쳐다보니 버스정류장에 정말로 혜숙이가 있더군요. 그날 그렇게 우연하게 만나 함께 송년회를 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 대화도 안 해봤고, 또 그날 보니 워낙 세련되고 예뻐서 감히 접근할 엄두를 못 냈습니다."

(혜숙 씨) "그때 제 친구도 한 명 같이 있었는데, 제가 조용히 집에 보냈어요. 저보다 조금 더 예뻤거든요. 하하하. 그날 신나게 놀기는 했는데, 저는 선배들 중에 그리 끌리는 사람은 없었어요."

그렇게 또 몇 개월이 흘렀다. 남용 씨 친구 결혼식 날이었다. 남용 씨가 사회를, 음대 나온 혜숙 씨가 피아노 연주를 맡았다. 그런데 식 도중 갑작스러운 정전이 있었다. 이때 혜숙 씨는 피아노 연주를 들려주며 하객들을 진정시켰다.

큰딸 민하가 음악경연대회 대상을 수상하여 기념연주회를 마치고 찍은 사진.

(남용 씨) "성격 급하고 와일드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즉흥 연주를 차분히 정말 잘 하더라고요. 그 모습에 정말 반했죠."

피로연 자리가 이어졌다. 마침내 사건이 벌어졌다. 그 자리에는 남용 씨를 보기 위해 멀리서 찾아온 여자 후배도 있었다. 남자 후배가 둘을 엮으려 했다. 물론 남용 씨 마음은 다른 곳에 있었다. 술이 한잔 두잔 들어가면서 취기가 올랐다.

(남용 씨) "그 여자 후배가 노래 부를 때 제 손을 잡더군요. 저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노래 부를 차례가 되자 혜숙이 손을 잡고 앞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는 녹색지대의 '사랑을 할 거야' '준비없는 이별'을 불렀죠. 저를 따르던 그 여자후배는 울먹이면서 나가버렸고요."

(혜숙 씨) "이 사람이 술이 더 취해, 나중에는 길 한복판에서 제 이름을 부르고, 아주 난리였죠."

둘은 며칠 후 정식 데이트를 하며 결국 연인이 되었다. 6개월 정도 지나서는 결혼 이야기까지 나왔다. 먼저 말을 꺼낸 건 혜숙 씨였다.

"남자들 눈빛을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이전에 만났던 남자들은 길에서 예쁜 여자가 지나가면 눈 돌아가기 바쁘더군요. 그런데 이 사람은 절대 그렇지 않았어요. 한결같았어요."

하지만 둘은 살아온 환경이 달랐기에 양가 반대가 심했다. 그래도 둘은 흔들리지 않았다. 서로 상대방 집안에 대해 "어른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어"라고 했다. 그것은 곧 서로에 대한 견고한 믿음으로 이어졌고, 어른들 마음까지 돌리게 했다. 둘은 1997년 4월 19일 결혼식을 올렸다.

부부는 현재 음악학원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남편은 경영을, 아내는 수업에 집중한다. 부부가 일을 함께하면 그 관계가 원만하지 못할 것이라는 주위 우려가 많았다. 하지만 둘에게는 전혀 해당 없는 것이었다.

혜숙 씨는 젊은 시절 일명 '잘나가는 여자'였다. 당시 흔치 않던 스포츠카를 타고 다녔고, 패션도 화려했다. 지금은 스포츠카는커녕 차도 몰지 않는다. 결혼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주위에서 안타까워하는 눈치였다. 지금은 "남편에게 이렇게 사랑받는 아내가 또 있을까"라며 부러워한다. 그러면 혜숙 씨는 사람들에게 또 이런 말을 한다.

"우리 신랑이 앞으로 멋지게 늙어갈 그 모습이 너무너무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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