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백 따스한 음악으로 채웠죠…먼저 떠난 아내 빈자리 달래기도

'쿵짝쿵짝' 어디선가 흥겨운 연주와 구성진 노랫소리가 흘러나온다. 소리를 따라 마산 금강노인복지관 지하로 내려가봤다. 문을 열자 어르신 네 분이 색소폰, 아코디언, 기타를 연주하고 홍일점 진군자 어르신이 노래를 하고 있다. 박종고(75·창원시 마산합포구 월영동) 씨가 단장으로 있는 '다락방 밴드'가 연습 중이었다.

연주를 더 감상하고 싶은 마음을 뒤로하고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겼다. 따듯한 오미자차를 주문하고 어색함을 풀고자 먼저 가족관계를 물었다. 연습실에서는 골목대장 같던 그가 잠시 머뭇거린다. 2남 1녀를 뒀다는 그는 자녀 이야기로 입을 떼더니 지난해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냈다.

하지만 이내 "내 이야기 다 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텐데 시간 괜찮아요?"하며 70여 년에 걸친 자신의 역사를 담담히 풀어낸다.

그는 일본에서 태어나 어릴 적 한국으로 건너왔다. 겨우 초등학교에 들어갔지만 당시 집안 형편이 끼니를 굶을 정도였으니 학교 회비를 내지 못해 쫓겨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아코디언, 색소폰, 기타까지 섭렵했다기에 젊은 시절 부유한 가정에서 음악을 전공했을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그렇게 가난한 시절을 보내고 군대에 들어갔다. 다행히 운전병으로 발령이 나 운전을 배웠고 제대 후 운전 '기술'로 돈을 벌며 결혼도 하고 세 아이도 키웠다. 택시기사, 트럭기사 등 운전업만 20여 년을 했는데 어떻게 처음 악기를 잡게 된 것일까.

"우연한 기회였어요. 우연도 기막힌 우연이지. 가난한 게 한이 돼서 일만 열심히 하다 보니 어느덧 60살이 넘었어요. 몸도 상할 대로 상하고. 그래서 의령에 궁류 일붕사라는 절이 있는데 그쪽에 요양원이 있었어요. 한날 더 나이 들면 아내와 함께 들어가 볼까 하는 생각으로 구경을 갔지. 거기서 80이 넘은 부산 사는 노인을 만났어요. 잠깐 이야기를 나눈 것이 악기를 배운 계기가 됐죠."

그 어르신 말이 자식을 위해 살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자기 삶을 즐기라며 악기를 꼭 배우라고 했단다. 그 말이 마음 속 깊숙이 박혀 요양원에서 돌아오자마자 학원에 등록하고 만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코디언, 그 다음은 색소폰, 1년 전쯤엔 아파트에서도 연주할 수 있는 기타를 배우고 있다.

음악을 시작한 것은 우연이었지만 밴드를 시작한 것은 박종고 씨의 굳은 의지 덕분이었다.

"제가 복지관 1기인데 제가 제안을 했죠. 처음에는 관장도 안 된다고 했어요. 그래서 두 번 세 번 간곡하게 부탁을 하니 못 이기고 장소를 내줬죠. 아직도 참 고맙게 생각해요. 안 그랬으면 우리는 만들어지지도 못했지."

단원 7명이 모두 모이기는 어려워 시간이 되는 사람들끼리 틈틈이 연습을 한다는 다락방 밴드. 행사장에서도 인기가 좋아 한 달에 3~4번은 초청공연도 다닌다.

공연 시간에 따라 관객 연령대에 따라 프로그램도 직접 짠다. 긴 공연 때는 체력 안배를 위해 관계자 노래자랑 시간도 넣는다.

대부분 무상 공연이라 때로는 금전적으로 난감한 경우도 있지만 공연장에서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박수를 치며 즐거워하는 관객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는 박종고 어르신. 그에게 음악이란 무엇일까.

"음악을 정말 우연하게 시작했는데 생각해보면 아내도 먼저 가고 외로운데 연주라도 안 했으면 내가 어떻게 살았겠나 싶습니다. 그나마 음악도 하고 단원들도 있으니까 내 자리 지키기 위해서 중심 잡고 있는 거죠. 음악은 저에게 '좋은 길잡이' 같은 존재죠."

복지관도 함께 다녔다는 아내에 대한 그리움이 인터뷰 내내 느껴졌다. 그래도 음악이 있어 버틸 수 있다는 그. 오늘 내린 가을비처럼 음악으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주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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