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속 경남]전 계층 양반가 문화 흉내, 감정 절제 무뚝뚝한 아버지 모습과 닮아 있어

"밥 묵자" "아(아이)는?" "자자".

경상도 남자가 퇴근 후 집에 들어와 한다는 세 마디다. 물론 과장을 한 우스갯소리지만 경상도 남자의 '무뚝뚝한' 기질을 잘 나타낸 예다. 또한 이는 경상도 말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다. "자자"의 경우 음절의 높낮이(성조)로 의사를 전달하고 있으며, '아이'를 줄여 쓴 '아'는 경상도 말 특유의 '축약 현상'의 사례다. '말'이 '기질'을 받쳐주는 모양새다.

비슷한 경우는 또 있다. 도토리와 상수리는 경상도에서 '꿀밤'으로 통일된다. 민들레·씀바귀·고들빼기는 모두 '씬내이'로 불린다. 존재해 왔던 대상을 사람들이 단순화·추상화한 것이다. 경상도 사람 특유의 기질이 말을 단순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경상도 말은 유려하기보다는 투박하다.

그렇다면 말이 기질을 만든 것일까? 기질이 말을 만든 것일까? 이는 단정하기 어려운 문제다. 다만 산세가 험하고 평야는 부족한데 인구는 많았던 척박한 환경이 말에 영향을 줬을 것이란 추론은 가능하다.

조선 전기를 대표하는 성리학자인 퇴계와 남명의 고향인 경상도. 조선시대 600여 개 서원 중에 160여 개 서원이 있었던 곳이 경상도다. '전라도엔 정자, 경상도엔 서원'이란 말이 나온 배경이다.

넓은 곡창지대인 전라도는 반상의 구분이 있을지언정 경상도만 하진 않았다. '양반이 시조를 읊으면 나는 논에서 모를 심다가 육자배기를 하면 그만'인 곳이 전라도다.

하지만 경상도는 달랐다. 양반가의 가풍이 여염집 툇마루까지 이르렀다. 남녀의 밥상이 달랐고, 숟가락 드는 순서가 엄격했으며 제사상을 어떻게 차리느냐가 법도의 기준이었다. 전 계층이 양반가의 문화를 흉내 냈다.

때문에 말은 아껴야 하며, 말을 할 때 감정을 드러내도 안 된다. 꾸미는 말이 부족하고 모음의 수가 전국 방언 중에서 가장 적은 이유도 이와 관계 있다. 참고 참다 툭툭 던지는 말은 억세고 투박해질 수밖에 없다.

척박한 땅, 어느 양반가 대문간에 손때를 묻히지 않으면 살기 힘들었던 경제구조의 산물인 것이다.

개인차야 있겠지만 대체로 전라도 사람들은 붙임성이 좋다. 처음 만나는 이라 할지라도 말이 살갑고 할 말도 많다. 반면 경상도 사람은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낯선 사람은 외면하거나 팔짱을 끼고 지켜보기만 한다. 그만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감정(말)의 절제'는 경상도 사람의 기질과 관계 있다. 양반가에서 입신양명해 가문을 빛내기 위해선 끝없는 자기 절제를 해야 한다.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등을 말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다. 때문에 기생집 처녀 춘향이를 사랑한 양반집 이몽룡의 로맨스는 경상도에 없다. 그보다 정절을 지킨 '아랑의 전설(밀양)'이나 '망부석 설화(울산)' 등이 있다.

그래서 경상도 말은 '감정 절제'의 산물이다. 그리고 그것은 '남성의 언어', '아버지의 언어'에 가깝다. 언어 중추가 발달한 여성에게 경상도 말은 손에 안 맞는 호미와 같다.

어머니가 밖에서 맞고 들어왔다면 자녀들은 일단 어머니를 보호하고 위로한다. 하지만 어버지가 그런 경우를 당했다면 어떨까? 일단 자녀들은 아버지의 상태를 살피고 치료할 것이다.

하지만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것' 같은 정신적 충격을 함께 받는다. '맞고 다니는 아버지', '강하지 못한 아버지'에 대한 실망이다.

우리는 아버지가 언제나 자애롭고 정의롭기를 바란다. 하지만 동시에 '항상 이기기'를 바란다.

비록 이기는 과정이 정의롭지 못하다 할지라도 '이기는 아버지'를 원한다. 이탈리아의 정신분석학자 루이지 조아는 이를 '부성의 패러독스'라고 정의한다.

자녀들의 이런 이중적인 요구 속에 아버지는 언제나 감정을 억제해야 한다.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의지가 대인관계의 특징이 되며 곧 다른 이의 감정도 억제하려 든다. 감정의 절제가 나와 타인을 동시에 억압하게 된다. 경상도 말의 투박함엔 이런 아버지의 사연이 녹아 있다.

'억압된 어버지의 말'로서 경상도 말은 권위주의 정권을 거치면서 강화했다. 경상도 출신 박정희·전두환·노태우가 TV에서 하는 말은 아버지의 언어였다. 왕조시대의 '국가=부모'라는 등식은 권위주의 정권을 거치며 '국가=아버지'로 강화했다. 군사정권 특유의 수직적·억압적 문법이 경상도 말을 만나 '명령어'로서 아버지의 말이 된 것이다.

이는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의 기질을 강화했다. 자녀의 안부가 궁금해 전화를 한 아버지는 걸자마자 끊기 바쁘다. 몇 번인가 망설였을 전화를 해놓고 바로 끊을 수밖에 없을 만큼 다정하게 말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늘 무뚝뚝하다가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어린 손주를 안을 때면 다정다감해지는 경상도 아버지. 우리 아버지는 어쩌면 지금부터 말을 배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참고문헌>

□학술논문 '경남 방언의 멋과 맛' / 2006 / 김정대 / 새국어생활 제16권 1호
□학술논문 '경남방언 구획 문제를 다시 생각한다' / 2012 / 김정대 / 배달말 통권 제51호
□경상도 우리탯말 / 2006 / 윤명희 외 / 소금나무
□국수는 밀가루로 만들고 국시는 밀가리로 맹근다 / 2006 / 백두현 / 커뮤니케이션북스
□아버지란 무엇인가 / 2009 / 루이지 조야 / 르네상스
□풀어보고 엮어보는 거제 방언, 사투리 / 2013 / 김용호 / 한국문화사
□한국의 언어 민속지-경상남북도 편 / 2012 / 왕한석 /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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