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비춤]전·현직 경남도지사의 디스전

전·현직 경남도지사의 '디스 전쟁'(상대방의 허물을 공개적으로 공격해 망신을 주는 힙합의 한 문화)이 한창이다.

정치인의 다툼이야 일상 다반사이긴 하지만 경남도 행정의 수장을 맡았거나 맡은 중량감 있는 정치인이 창원과 서울에서 서로 겨냥하는 모습은 이채롭다.

우리 정치사에서 '전직'과 '현직'이 사이 좋았던 예를 찾기가 어려운 건 사실이긴 하지만 여타 광역자치단체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광경이다. 서로 '정적'이라 할지라도 '정권교체 시기' 전후에 짧고 굵게 대립각을 세운 후에는 흐지부지되기 일쑤인데, 전·현직 경남지사인 '김태호·김두관·홍준표'는 집요하게 서로를 공격하고 있다.

이들 세 인물 모두 도지사보다 더 큰 '미래 권력'의 가능성이 열려 있어서일까? '경남에는 하나의 태양만 있다'는 듯 공방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

역시 타고난 공격수는 홍준표 도지사다. 홍 지사는 최근 김두관 전 지사와 김태호 새누리당 최고위원을 동시다발로 타격했다. 홍 지사는 무상급식 지원 중단을 선언하면서 무상급식 확대를 추진했던 김두관 전 지사의 정책을 '무상 포퓰리즘'이라고 깎아내렸다. 그러면서 "진보좌파의 어젠다인 무상 포퓰리즘 광풍에 휩싸여 선거에 나선 자치단체장이 이를 거역할 수가 없어 부득이하게 끌려들어 간 것"이라며 김 전 지사를 평가절하했다.

이뿐만이 아니라 홍 지사는 김 전 지사가 의욕적으로 추진했고 최대 성과로 내세운 모자이크 사업을 사실상 중단시키면서 "김두관의 방식은 사회주의 방식"이라고 평했다.

홍 지사와 김태호 최고위원 공방은 좀 더 스펙터클하다. 지난 9월 새누리당 보수혁신위원회가 구성될 때 홍 지사가 혁신위원으로 참여하는 것이 거의 기정사실화된 적이 있다. 하지만 김 최고위원이 최고위원 회의 석상에서 "혁신위원회가 차기 대권주자의 놀이터냐, 우리 당에 사람이 그렇게 없느냐"고 일갈했다. 결국, 홍 지사는 혁신위원이 아닌 자문위원에 선임되면서 자존심이 구겨졌다.

홍 지사에게 돌아온 반격의 기회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김 최고위원이 최근 최고위원 사퇴를 선언했다가 이를 번복하면서 '정치쇼'를 벌였다는 비난을 받자, 홍 지사는 "누구처럼 최고위원 사퇴하고 또 돌아오고, 그리 줏대 없이 하면 (되겠나)……"라고 받았다. 최근 자신의 정적이 된 박종훈 교육감을 비난하는 대목에서 김 최고위원을 끌어들인 것이다.

'홍준표-김태호'의 악연은 좀 더 거슬러 올라간다. 2010년 한나라당 최고위원이었던 홍 지사는 당시 김태호 총리 후보의 자진 사퇴를 주장하며 야당의 공세를 부추겼다. 2011년 김 최고위원이 김해 을 보궐선거에 출마해 정치적 재기를 노릴 때에도 홍 지사는 당 최고위원 자격으로 '김태호 공천 불가'를 주장했다.

김두관 전 지사는 '삼각 공방전'에서 약간은 수세적인 자세를 취해왔다. 대선 출마 좌절 후 독일에 머물렀고, 지난 7월 김포 보궐선거를 통해 국회 진입을 노렸으나 이 또한 실패하면서 정치 일선에 모습을 드러낼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김 전 지사는 김포 바닥 민심을 닦으며 2016년 총선을 착실하게 준비하고 있고, 곧 있을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에서 영향력 있는 지분 행사가 가능한 위치에 있다.

김 전 지사는 홍 지사가 자신의 부재를 이용해 근거 없이 부당한 정치 공세를 펴고 있다며 발끈하고 나섰다. 김 전 지사는 최근 창원에서 열린 한 행사에 참석해 "중도사퇴에 대해 죄송한 마음으로 언급을 자제해왔지만, 친환경 무상급식 약속을 어기는 것은 도민에게 죄를 짓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경남도민일보>와 인터뷰에서 홍 지사를 향해 "상식적인 사람이 아닌 것 같다", "도민을 섬김의 대상이 아니라 통치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사람 같다"고 평가했다.

특히 홍 지사가 경남에서 이루어진 무상급식 확대 협약을 김 전 지사와 고영진 전 교육감의 개인적 선택이었다는 식으로 몰아붙인 데 대해 매우 격앙돼 있었다. 김 전 지사는 "그렇다면 (홍 지사는)광역 지방정부 최고책임자로서 행정행위를 하는 게 아니라 홍준표라는 개인 자격으로 하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김 전 지사는 김 최고위원으로부터 공격을 받기도 했다. 지난 7월 김포 보궐선거에 자당 후보를 지원하고자 유세 현장을 방문했던 김 최고위원은 "김두관 후보는 과거 경남도지사 선거 때 상대 후보의 낙하산 공천을 비판했는데 연고도 없는 김포에 낙하산으로 내려온 것에 대해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고 몰아세웠다.

김 최고위원의 이 같은 공격을 뒤늦게 안 김 전 지사는 "동의하지는 않지만 선거 기간에 그렇게 하는 건 이해한다"고 반응했다.

'김태호·김두관·홍준표'. 이들 세 인물이 그동안 제각각 보여준 정치적 색깔은 너무 많이 다르다. 또한, 자신이 펼쳤거나 펼치는 경남 도정에 대한 평가와 현 정국에 대처하는 방식도 현격하게 차이가 난다. 그러나 자신이 보여준 경남 도정을 통해 이후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미래 권력'에 한 걸음씩 더 다가서려는 행보에는 차이가 없다.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의문점이 남는다. 김 최고위원은 '가벼운 정치쇼' 논란에 휩싸여 있고, 김 전 지사는 전망이 아직은 불투명하며, 홍 지사는 '불통·고집'이라는 반대 세력의 공세를 견뎌야 한다. 과연 '미래 권력'이 이들의 손에 잡힐지 그 자체가 의문시되는 것도 사실이다. 만약 이들이 모두 동반 실패한다면 경남 도민 중에는 정치적 실험의 대상이 되었다고 자조하는 이들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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