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 조성·자금 세탁 등 원천 봉쇄

'차명 금융거래'란 금융자산의 실제 소유자와 형식상 명의자가 다른 금융거래로 자신 명의가 아닌 타인 명의로 금융거래를 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차명거래를 금지하는 내용의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지난 5월 마침내 국회를 통과해 오는 11월 29일 시행된다. 금융실명제가 도입된 지 21년 만에 완벽한 금융실명제가 시행되는 것이다.

이전까지 금융실명법은 사실상 '반쪽짜리 실명법'이나 다름없었다. 금융거래를 할 때 주민등록 등으로 실지 명의를 확인하고, 가명이나 허명을 금지하고는 있었지만, 합의로 타인 명의를 이용하는 차명거래에는 규제가 없었다. 이 문제점이 크게 부각된 것은 최근 일어난 사건 때문이다. 전직 대통령이 추징금을 피하고자 자신 재산을 친인척 명의로 숨긴 사건이 드러났고, 재벌 총수 또한 수백 개 차명계좌로 회사 자금을 유용하는 사건도 밝혀졌다. 사회 지도층 인사가 법 그물망을 피해 차명계좌를 이용한 탈법 행위를 하고 있음이 밝혀지자 금융실명법 개정에 대한 여론이 형성됐다.

타인 명의 금융거래는 비자금 조성, 자금 세탁, 조세 포탈 등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 따라서 불법재산 은닉, 자금 세탁, 강제집행 회피, 그 밖에 탈법 행위(조세 포탈 등)를 목적으로 하는 차명거래를 금지 대상으로 규정하고, 위반 시 형사적·행정적 제재는 물론 민사적 불이익까지 부과하는 것이 개정 법률안 핵심이다.

특히 주목할 것은 실명 확인 계좌에 예치된 금융자산은 명의자 소유로 추정한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는 실소유자와 계좌 명의자가 합의하면 차명거래가 허용됐으며, 대법원 판례도 이 경우 실소유자의 소유권을 인정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명의자가 반환을 거부하면 민사소송을 거쳐야만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다.

또한 불법 차명계좌에 대한 처벌도 강화된다. 차명 거래자나 이를 알선·중개한 금융회사 등에는 최대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 벌금을 매길 수 있도록 벌칙 규정을 상향 조정했다.

한편, 차명거래 금지법은 탈법 목적의 차명거래를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선의의 가족 간 차명거래, 동창회 계좌 등은 금지 대상에서 제외한다. 하지만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금융소득 종합과세 회피 등 탈세 목적의 차명거래는 금지 대상에 해당한다.

다른 법률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르면 예금 계좌에 입금되는 시점에 명의인이 증여받은 것으로 추정해 증여세가 부과된다. 물론 차명계좌임을 적극적으로 밝힌다면 증여세를 피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명의인이 입금된 금융자산을 돌려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긴 소송을 거쳐야 할 수도 있으며, 설사 어렵게 환수했다 하더라도 차명계좌를 운용하면서 조세 포탈 등 불법 행위를 했다면 금융실명법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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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더는 차명계좌는 탈법의 피난처가 아니다. 차명계좌를 보유하고 있다면 돈의 출처를 따져본 이후 법 시행 전에 실소유자 명의로 변경하거나 배우자 또는 자녀에게 합법적인 증여를 고려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안재영 세무사(최&정&안 세무회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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