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형은 어느 날 동생 셋을 모아 놓고 "우리 이제 옴마, 아부지께 존댓말을 쓰자"고 제안했다. 내가 열 살쯤이었고 작은형은 열두 살, 큰형은 열네 살이었을 것이다. 동생은 일곱 살이었겠군. 너나 할 것 없이 부모에게 반말하던 시절이다. 큰형은 중학생이 되더니 말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이나 모든 게 많이 어른스러워진 것이다. 우리는 그게 잘못된 결정이 아님을 알기에 군소리 없이 따르기로 했다. 초가집에서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었을 즈음이 아닐까. 마당 감나무가 감꽃을 떨어뜨릴 즈음이었을까. 발간 석류가 나뭇잎 사이사이에 언뜻번뜻 보일 즈음이었을까.

요즘 아이들은 어머니,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는다. 죄다 엄마, 아빠다. 귀엽다. 조그마한 입술을 움직여 엄마, 아빠라고 할 때나 엄마아~ 아빠아~라고 콧소리를 내면 깜빡 넘어가지 않을 부모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엄마, 아빠는 '유아어'이다. 유아기의 아이가 쓰는 부름말(호칭)이란 말이다. 다시 말하면 유아기를 벗어나면 그만 써야 할 말이라는 얘기다.

그렇지만 요즘은 대학생들조차 엄마, 아빠라고 한다. 심지어 결혼을 하여 아기를 낳아 자기가 엄마, 아빠가 되어서도 애들의 할머니, 할아버지를 엄마, 아빠라고 부르고 있다. 엄마, 아빠라고 부른 뒤에는 존댓말이 따라오지 않는다. 숫제 반말투성이다. 그런 말을 듣는 어른들도 이를 나무라지 않는다. 나는 이건 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른은 어른말을 써야 한다. 그런데도 나이 서른을 넘겨서까지 유아어를 쓰고 있으니, 생각이나 행동에서 어린이티를 벗어나지 못하는 일이 많다.

큰형은 "우리가 이렇게 결정을 했으니 굳게 다짐하자는 뜻으로 집안 대청소를 한번 하자!"고 했다. 그렇게 다짐해 놓고도 막상 부모님을 뵈면 자기도 모르게 반말이 튀어나올까 봐 뭔가 의식을 치르자는 것이었다. 우리는 십 년 넘게 때가 낀 마루에 하이타이를 풀어 수세미로 열심히 닦았다. 꾀죄죄한 때가 벗겨져 나간 마루는 비로소 자기가 원래 소나무였음을 증명하듯 나뭇결을 드러냈다. 큰방, 작은방도 쓸고 닦았다. 마당도 비질을 하고 잡초를 뽑았다. 그날 부모님은 어디로 일 나가셨던 것일까. 진주 시내에 볼일 보러 가셨던 건 아닐까.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오시기 전에 끝내느라 네 형제가 힘을 합쳐 진땀을 흘렸다. 그러면서도 형제간에 서로 마주보며 하얀 이를 드러내며 밝고 맑게 웃었다.

이윽고 해거름께 어른들이 돌아오셨다. 우리는 잔뜩 긴장했다. "아버지, 어머니 다녀오셨습니꺼?"라고 얌전하게 인사를 했다. 네 명의 아들이 나란히 서서 깍듯이 인사를 올리자, 깜짝 놀란 듯, 너무나 기쁜 듯, 환하게 웃으시는 부모님의 얼굴을 뵈면서, '아, 우리가 정말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루와 방을 보시던 어머니는 더 크게 웃으셨다. 그 일은 할머니를 통하여 동네에 소문이 났다. 우리들은 '참 착한 놈들'이라는 칭찬을 제법 들었다. '효자'라고 추켜세우는 분도 있었다.

그런데 처음엔 존댓말이 잘 안 나올 것 같았는데, 한번 그렇게 하고 나니 다음부터는 아주 자연스럽게 어머니, 아버지로 부르게 되고 존댓말도 따라 나오게 되는 게 참 신기했다. 그리고 옴마, 아부지로 부르고 반말할 때는 친구처럼 가깝기만 하고 간혹 말을 안 들어도 될 듯했는데, 어머니, 아버지로 고쳐 부르고 존댓말을 쓰기 시작하니 그분들은 우리가 잘 모셔야 할 부모님이셨고 평생 배우고 따라야 할 어른으로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중엔 어머니는 다시 '옴마'로 아버지는 '아부지'로 되돌아갔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당연히 존댓말을 한다.

그런 경험이 있었던 터라 나는 아들이 여섯 살 무렵부터 엄마, 아빠 대신 어머니,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했다. 처음엔 아빠를 잃어버리는 게 아닌가 싶어 무서워하던 아들은 곧잘 따랐고, 그건 아들이 주위 많은 어른으로부터 착하다, 훌륭하다, 어른스럽다고 칭찬을 듣는 계기가 되었다. 어머니, 아버지라는 말 뒤엔 반드시 존댓말이 따라오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아들처럼 여섯 살부터 아빠를 버리고 아버지라고 부르게 한 건 좀 지나친 것 같다. 중학생, 늦어도 고등학생부터는 엄마, 아빠 대신 어머니,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고 부모에게 툭툭 던지듯, 내쏘듯 하는 반말을 버리고 존댓말을 쓰게 하면 어떨까 싶다. 그래야 어린이는 어린이로 보호받고, 청소년은 청소년답게 커갈 수 있고, 어른은 어른으로 대접받게 되는 것 아닐까 싶은 것이다.

/이우기(이우기의 블로그· http://blog.daum.net/yiwoog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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