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다. 마른 몸이 미덕인 요즘 세상에 말(馬)만 살이 찌면 좋으련만 식구들 모두 가을을 타나 보다. 날로 식욕이 왕성해지니 말이다.

다이어트로 항상 고민을 하면서도 한창 먹성이 좋은 나이라 그런지 요즘 따라 무서울 정도로 간식을 찾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배달 음식을 자주 시켜 먹게 된다.

문제는 밍키다. 음식이 배달되면 그때부터 밍키 연기가 시작된다. 세상에서 가장 착한 녀석처럼 식탁 아래 조용히 앉아서 꼼짝도 하지 않고 가족들 모두 식사를 끝낼 때까지 인내심 있게 기다린다.

그러면 난 상을 치울 무렵에 먹고 남은 고기 한 점으로 약간의 보상을 해주곤 했었다. 물론 밍키는 그 고기 한 점만으로도 나에게 무한한 충성을 약속했고….

한데 이 녀석이 최근 들어 좀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어필해온다. 오랜 훈련으로 네 다리는 분명 한자리에 고정되어 있지만 그 자세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몸짓으로 나의 이목을 끌려고 하는 것이다.

의식적으로 그 열렬한 눈빛을 외면할라치면 아예 꼬리를 상모 돌리듯 원뿔 모양으로 세차게 돌리는 재주를 선보이기도 한다.

무언가를 먹다가 밍키와 눈이 마주치게 되면 이건 뭐 강아지 고문하는 것처럼 죄의식까지 느껴져 음식이 목에 탁 하고 걸리는 것 같다. 결국 마음이 약한 나는 다른 식구들 구박에도 어쩔 수 없이 먹던 짜장면에서 고기 건더기를 골라 내고야 만다.

고기 조각을 밍키에게 건네는 나를 보던 딸 아이가 정색을 하며 호들갑을 떤다. 양파에는 강아지 적혈구를 파괴하는 성분이 있어 상당히 위험하단다. 그러곤 속사포처럼 초콜릿은 구토나 설사를 유발하고, 포도는 급성신부전을 일으키게 하고, 사람이 먹는 햄이나 소시지는 염분이 많아서 위험하다는 등 먹어도 되는 것과 안되는 것을 열거한다.

나아가 제발 마음 약해지지 말라고, 엄마가 밍키 다 버려 놓는다며 예쁘다고 아무거나 다 주는 게 절대 잘 돌보는 게 아니라고 훈계질이다.

약간 머쓱하기도 했지만 예전에 사과를 조금 줬다가 이틀 밤낮을 토하게 만든 전력이 있었던지라 딸 아이 질책에 대꾸할 말은 없었다. 속으로는 밍키에게 짜장면 속 양파 건더기라도 줬다면 어떻게 됐을지 가슴을 쓸어내렸다.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참 무책임하게 내 기분대로 밍키를 돌봐왔던 것 같다. 먹을 걸 주면 아그작 아그작 잘 먹는 모습이 귀여워서 그걸 보는 재미에 내가 먹던 걸 아무 생각 없이 던져 주는 일이 다반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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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키가 우리에게 귀여움을 주는 존재 이전에 하나의 생명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나 보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한번 맺은 인연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데, 적어도 내 집에서 제명대로 다 살고 무지개 다리를 건널 수 있도록은 해야 하지 않을까. 어느새 우리 가족 삶에 끼어들어 식구가 되어 버린 녀석 때문에 사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늦둥이 키우는 엄마 마음으로 육아 공부를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이정주(김해분성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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