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이야기 탐방대 (3) 손으로 빚는 막걸리

경남도민일보가 사회적 기업으로 만든 '갱상도문화공동체해딴에'가 올 8월부터 진행하고 있는 경남이야기탐방대도 이제 마무리가 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최하고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이 주관하는 이번 탐방대 활동은 11월 안에 마치도록 예정돼 있는데 10월 27일 현재 11월 2일 청소년탐방대의 의령 의병장 곽재우 유적 둘러보기 하나만 남겨 놓고 있다.

경남이야기탐방대를 이루는 셋 가운데 하나인 블로거탐방대와 예술인탐방대는 14일과 20일 제각각 남해를 찾았다. 사실 막걸리만큼 품고 있는 이야기가 풍성한 대상도 드물 텐데, 시어머니 손에서 며느리 손으로 또 어머니 손에서 딸 손으로 전해오는 막걸리를 맛보고 그에 걸맞은 이야깃거리를 찾아내어 구성해 보기 위해서다.

막걸리는 이렇다. 대체로 보자면 식량 자급자족이 우리나라 최대 정책 과제가 되면서 쌀막걸리는 공식 자리에서 한순간 사라졌다. 옛날 고을마다 있던 술도가에서는 쌀 대신 밀가루를 써서 막걸리를 빚었다. 옛날 집에서 담가 먹는 막걸리를 세무 당국이 한 번씩 털었는데, 거기엔 정식으로 주세(酒稅)가 매겨져 시장에 나오는 '주류'를 보호한다는 뜻과 더불어 쓸데없는 데 쌀을 쓰지 않도록 막는다는 뜻도 담겨 있었다.

남해 읍내 장터에 있는 남면집 막걸리 술상.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다. 쌀 자체에 대한 개량이 거듭된 끝에 엄청난 다수확이 가능해졌고 나라 전체 차원에서 보면 쌀 소비량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요즘 들어 생겨난 현상이 아니고 오래전부터 계속돼 온 경향이다. 막걸리를 빚지 못하게 했던 원인인 쌀 부족은 사라졌다. 이제는 막걸리를 빚는 솜씨가 이어지지 않거나 못하는 현실이 문제다. 예전에는 집집마다 막걸리 따위를 담가 먹으면서 대대로 그 솜씨가 이어졌지만 이제는 그렇게 이어주는 매듭 자체가 사라지고 없다.

이렇게 이어지는 집막걸리 두 군데 모두를 공교롭게도 남해군에서 찾아냈다. 다른 지역에도 없지 않으나 이번에 찾은 지역이 남해라는 정도로 여겨주면 좋겠다. 남해 읍내 장터에 있는 남면집(010-2045-9133)이 하나고 설천면 문의마을 양모리학교 이르는 길모퉁이에 이름도 없이 나앉은 가게(010-3840-7136)가 다른 하나다. 남면집은 올해로 일흔아홉 연세인 할매가 하고 문의마을 가게는 쉰 줄에 올랐으려나 말려나 하는 아줌마가 한다.

할매는 이렇게 말한다. "나이 마흔여덟에 혼자 돼서 겪은 고생은 말도 못한다. 아이 셋을 혼자서 키웠다 생각해라, 보통이겠는지. 남면 덕월마을에 시집가 살다가 읍내 나왔는데 재산도 없고 할 거리도 있어야지. 남의집살이에 식당일까지 정말 오만가지 안 한 일이 없다. 그러다 누가 막걸리 빚을 줄 아니까 한 번 해봐라 했는데 지금껏 하고 있다. 한 스무해 됐나 모르겠네." 할매는 남편 잃고 혼자가 된 뒤로만 고생한 것 같지는 않다. 아무 가진 것 없이 읍내로 나왔을 정도면 그 전부터도 삶이 고단했음은 분명하다. 할매는 얘기하는 도중에 가끔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가슴에 맺혀 여지껏 풀리지 못한 한이나 분도 있는 것 같았다.

지난 일은 지난 일이고 지금은 지금이다. 과거는 그랬어도 지금 모습은 어디 내놓아도 더 이상 좋을 데가 드물 정도로 좋았다. 요즘 연세가 여든 가까운 이들 가운데 허리를 곧게 하고 사는 이들이 얼마나 귀한가! 가게에서 일하는 양을 봐도, 70대 후반 할매답지 않게 허리가 꼿꼿하다.(물론 본인은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썩어빠진 고목나무 등걸에다 자기를 견주곤 했다.) 또 새벽마다 텃밭에 일하러 나갈 만큼 건강도 좋다. 더욱이 지금 가게도 자기집이라 했다.(지난해 7월 처음 찾았을 때는 세로 얻어 쓴다고 들었다)

남면집이 스무 해 가까이 이어오면서 아는 이들이 늘어났다. 바깥에서 찾는 이들도 많지만 그래도 으뜸 손님은 남해 할배들이다. 읍내에 사는 할배 또는 장이 설 때마다 읍내에 다니러 오는 할배들이다. 어떤 할배는 막걸리를 한 잔만, 어떤 할배는 소주를 한 잔만, 어떤 할배는 소주도 막걸리도 말고 단술을 한 잔만 마신다. 안주는 시원한 열무물김치가 전부인데 이렇게 한 입 다신 할배들은 500원짜리 동전 두 낱을 탁자에 올려놓고 긴 말 않고 떠난다.

남면집에서 할매 할배들이 웃으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가운데 앉은 이가 주인이다. /김훤주 기자

어떤 경우는 이웃에서 할매 친구가 놀러 온다. 그 할매한테 막걸리를 권해 올렸더니 거듭 비웠더랬다. 어우러지면 주전자 막걸리도 마시고 병소주도 마신다. 해물이 알맞추 섞인 나물전도 주문해 먹는데 커다란 한 판에 3000원이다. 지짐에 섞이는 나물은 그날그날 다른 것이, 할매가 거둔 대로 부쳐주는 때문이다.

이쯤 되면 이야기도 무르익는다. 실없는 말씀도 나오고 흥에 겨운 소리도 나온다. 평일인데도 이런 정도면 장날은 어떨는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앙숙인 할배끼리는 다투기도 한다. 서로 흘기거나 슬그머니 피하는 눈길이 젊은 치들한테 오히려 순진해 뵌다. 재주가 있는 할배는 신이 나면 하모니카를 한 번씩 불기도 하는데 할매·할배들 어울리는 공간으로 전혀 손색이 없다.

문의마을 양모리학교 들머리 가게는 남면집에 견주면 아직 제대로 시작도 안한 셈이다. 이 집 아지매는 올여름 들어 장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양모리학교로 체험하러 오가는 이들을 겨냥한 아이스크림과 마실거리가 주된 상품이었다. 아지매 손맛을 아는 이들이 국수라도 한 번 말아보라 권했고 그게 이어져서 시어머니 빚던 막걸리도 한 번 빚어보라고 청을 들였다.

예술인탐방대가 문의마을 길가 가게 안방에서 그 집 안주인이 빚은 막걸리를 들이켜고 있다.

아지매가 차려내는 술상·밥상을 보면 먼저 깔끔하다는 느낌이 든다. 가까운 횟집에서 찬모 역할을 10년 넘게 한 이력이 나타나는 대목이다. 상에는 그날 논밭에서 거둔 곡식 과일들이 그대로 올라온다. 지금은 가을이라 밤도 홍시도 단감도 대추도 오른다. 때를 놓치고 있다가 뒤늦게 여물게 된 방울토마토도 오르고 제대로 삶은 고구마도 함께 오른다. 여기에 국수를 더해 한 사람에 4000원을 받고 막걸리는 때로 그냥 주기도 하지만 정가는 5000원이다.

문의마을 들머리에 있는 팽나무 아래에서 예술인 탐방대가 동네 할머니를 만나 얘기를 나눴다. /김훤주 기자

이 집은 좋은 사람과 더불어 찾아 좋은 육수에 담긴 국수 한 다발과 옛날 맛 집막걸리 한 잔 기울이면서 시원하고도 멋진 풍경을 눈에 담기 좋다. 갯가 문항마을을 거쳐 멀리 창선섬과 삼천포대교까지 눈맛이 이어진다. 이렇게 한 잔 하고는 일어나 마을 여기저기를 거닐다 보면 "여는 머하로 왔능고?" "오데서 왔능고?" 물으시는 할매들 더러 만날 수 있다. 그런 할매 눈에 띄지 않거든 동구밖 덩치 커다란 팽나무 아래에 앉으면 된다. 얼마지 않아 할매 한 분이 나타날 텐데, 대부분은 얼굴이 웃는 상이고 말씀도 즐겨 하시는 편이다.

남해 할배들 사귀고 싶으면 남해 읍내 남면집 가서 막걸리 기울이면 되겠고, 남해 할매들 사귀고 싶으면 설천면 문의마을 길가 가게에 들렀다 거기 동구밖 팽나무 그늘에 들어가면 되겠다. 그런 다음 거기에서 막걸리와 버무리면 좋은 이야기가 엮여나오지 않을까 싶다. 다음부터 경남이야기탐방대는 구성원으로 함께한 예술인·블로거·청소년들의 글과 그림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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