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따라 내 맘대로 여행] (37) 충남 보령 청라 은행마을

붉디붉은 단풍으로 세상을 불태워버릴 듯한 가을은 어느새 짙은 황금빛으로 단단히 여문다. 가을은 어떤 색일까?

바스락거리던 화려한 붉은 잎들은 괜스레 쓸쓸함만 안겨주더니 '후두두' 떨어지는 실한 은행은 가을의 풍요로움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것 같다. 어쨌든 가을은 한 걸음 한 걸음 달아나는 중이다.

단풍 지도를 들고 어디론가 떠나려 했던 계획은 환상의 노란빛 유혹에 급수정됐다. 볼에 닿는 바람은 차갑지만 햇볕은 따뜻하다. 국도를 따라 발길 닿는 대로 떠나도, 아무 곳에나 차를 세우고 경치를 감상해도 그곳이 한 폭의 그림이 되는 계절이다. 이런 호사스러운 여행길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괜스레 울적하다.

충남 보령시 청라면 은행마을은 국내 최대 은행나무 군락지 중 한 곳이다. 한국관광공사가 전국에서 단풍이 아름다운 8곳을 추천하는 '10월에 가볼 만한 곳'으로도 선정됐다. 지금 이곳을 찾는다면 길목 곳곳에 심어 놓은 3000여 그루 은행나무가 만들어낸 환상의 노란빛을 마주할 수 있다.

구불구불. 언제나 그렇듯 자연 깊숙이 들어가는 길은 조심스럽다. 은행마을을 바로 찾기 애매하다면 신경섭 고택으로 행선지를 맞추어 출발해도 된다.

은행마을 사람들이 은행을 모으려 나무 아래 그물망을 깔아놓았다. 은행잎과 은행이 보기 좋게 조화를 이뤄 수북이 쌓여 있다. /최규정 기자

최대한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마치 노란 손수건을 흔드는 것 같은 마을 속으로 들어간다. 은행나무 향연에 운치를 더하는 것은 마을 한가운데 있는 신경섭 고택. 조선 후기 가옥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으로 100년 이상 된 은행나무가 고택과 어우러져 한층 멋진 풍광을 선물한다.

보령 은행마을 단풍축제가 내달 1일부터 이틀간 '은행을 털어 대박 난 마을 이야기'를 주제로 열리지만 아직 마을은 손님 맞을 준비를 하지 못했다. 농번기가 한창이라 지금 주민들은 일손이 달린다.

축제 전 찾은 이곳은 그래서 더 여유롭다. 주차할 곳도, 안내판조차 아직 제대로 마련해 놓지 않아 당혹스러울 수도 있겠다.

그저 적당한 간격으로 무심히 서 있는 은행나무가 바람이 부는 대로 노란 잎을 흔들며 일렁이고, 때론 은행 비를 뿌릴 뿐이다.

은행나무 아래 깔아놓은 그물망에는 은행잎과 은행이 보기 좋게 조화를 이뤄 수북이 쌓여 있다. 고약한 은행 냄새는 잠시도 쉬지 않는 바람 때문에 은행 감상을 방해하지 않는다. 단단히 여문 은행은 살랑거리는 바람에도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힘없이 떨어진다. 툭. 툭. 소리가 들릴 때마다 가을이 저만치 달아나는 것 같아 아쉽다.

매년 이곳에선 100톤가량의 은행이 수확되는데 이는 전국 수확량의 70%를 차지하는 양이란다. 은행나무 열매는 마을의 주 수입원이기도 하다.

은행마을 둘레길 표지판을 따라 길을 걷다 보면 파란 하늘과 황금 들녘의 경계마저 황금빛으로 만들어버린 은행나무 경치에 흠뻑 빠져든다.

마을에선 가을 탐방객을 위해 메뚜기 잡기, 은행잎 모자이크 만들기, 고구마 캐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해 놓고 있다.

△인근 볼거리 = 은행마을을 에워싼 오서산은 이맘때면 억새가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오서산 자연휴양림엔 대나무숲과 숲 속 수련장 등이 마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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