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예방접종을 위해 동네 소아과를 찾았다. 단골 제과점 2층이 소아과인 줄 이 동네 살고 처음 안 사실이 내내 어리석게 느껴진다.

간판 색깔이나 건물 생김으로 보건대 내가 여기 살기 시작한 10여 년 전부터 족히 있었던 듯싶은데 도대체 제 동네 구석구석도 잘 모르면서 뭐 그리 대단한 걸 더 보고 또 알려고 바쁘게 살았나 싶었기 때문에.

처음 2층 계단을 걸어 올라갔을 때까지만 해도 낡은 건물 벽과 계단에 그다지 믿음을 갖지 못했다. 병원이 이렇게 낡고 지저분해서야 어디 병을 제대로 고칠 수 있겠나, 그러기는커녕 도리어 병을 얻어 오지나 않으면 다행이겠다 싶은 생각에.

게다가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엔 환자라곤 한 사람도 없이 간호사만 셋씩인 것이 얼마나 걱정스러웠는지. 사람이 얼마나 안 찾으면 이렇게 파리 날 정도인가 하고 말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간호사들은 아주 작게 분업해서 각자 일을 보는 듯싶다가도 어느새 또 다함께 일을 하고 있는 거였다. 한 분은 컴퓨터로 접수를 하고 또 한 분은 아이 몸무게와 키를 재고 또 다른 한 분은 의사에게 우리를 인도하며 예방접종을 도왔는데 어찌 보면 그 과정 하나하나 그들 모두가 함께 달려들어 일을 본 듯도 싶었다.

아이 이름을 불러보며 웃어주고 접종 전과 후 아이 표정이나 몸 상태도 살피면서 마치 동네 이웃처럼 모여 챙겨주고 하던 그 과정이 어찌나 세심하고 정성스러운지 자못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의사도 여간 다정한 게 아니었다. 아이가 먹은 이유식 내용물과 양까지 일일이 확인해 주는가 하면 예방접종 주사도 직접 놓아주기까지 했다.

사실 큰 종합병원 소아과에서는 공장 컨베이어벨트 위에 아이를 맡겨 두는 듯 느껴져 여간 서글픈 게 아니었다. 차례만 길게 기다릴 뿐 막상 진료나 접종은 순식간이다. 아이 몸 상태가 좋을 때만 예방접종을 해서인지 몰라도 진료도 마음에 찰 만치 그다지 세심하지 않다. 게다가 진료를 하는 의사, 접종하는 간호사가 각각 달라서 불안할 때도 많았다.

의사는 늘 많은 환자 진료에 지쳐 있었고 바쁜 간호사는 기계적으로 아이 허벅지에 주사를 놓았다. 주사를 맞히고 나면 나는 다음 차례 아기를 위해서 우는 아이를 안고 얼른 밖으로 나와야 했다.

동네 가까이 요긴한 소아과가 있단 소식을 처음 전했을 때 남편은 반색을 보였다. 아주 가깝고 시간대를 잘 고르면 기다리는 수고도 덜고 바로 진료를 받을 수 있으니 다행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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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또한 그 생각에 흐뭇한 웃음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남편은 내가 그 병원 건물 낡은 벽과 계단을 떠올린 줄은 몰랐으리라. 도대체 내가 바쁘게 사느라 몰랐던 세월 동안 얼마나 끊임없는 단골 환자의 발자취가 났으면 건물이 그렇게 낡고 또 낡았을까.

/서은주(양산 범어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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