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 경남 문화 진흥, 지금이 기회다

"지역은 힘들다. 지역이라서 안 된다. 서울보다 기반이 약하다. 사람도 없다."

도내 문화계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지역 작가들이 고군분투하고 지역민이 문화에 대한 관심을 키우면 사정이 나아질까?

문화예술인들은 경남 문화판을 다시 짤 때라고 입을 모은다. 올해 쏟아진 문화 관련 법이 전환점이라고 강조했다.

박근혜 정부가 문화를 국정기조로 내세우며 제·개정한 '문화기본법'과 '지역문화진흥법', '예술인복지법'까지. 문화 융성이 '법'으로 뒷받침된 지금이 지역 문화를 풍성하게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것이다.

◇예산 계획 없는 도 지역문화진흥조례

지난 7월 29일 지역문화진흥법 시행 이후 두 달여 만에 '경남도 지역문화진흥 조례'(대표 발의 이성용 문화복지위원장)가 제정·시행됐다. 조례안이 지난 14일 경남도의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성용 도의회 문화복지위원장은 "예산이 수반돼야 지역 문화가 달라질 수 있다"면서 내년도 예산에 반영할 수 있도록 조례로써 도를 재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위원장 의지와 달리 조례 내용엔 구체적인 예산 계획이 담겨 있지 않다. 경남도의 지역문화진흥 시행계획 수립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라지만 결국 조례는 지역문화진흥법과 지역문화진흥법 시행령을 단순 요약한 것에 그쳤다.

심지어 시행령보다 못하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조례에는 지역문화진흥 기본계획의 구체적인 내용이 빠졌다. 생활문화와 재정 확충 방안도 언급하지 않았다.

지역문화진흥법이 시행되기 이전부터 조례를 만든 인천과 대전, 경기도보다 발전한 내용을 찾아보기도 어렵다. 인천과 대전은 생활문화에 초점을 맞춰 보조금 지원 등 시행령을 구체화했다.

조례 제정은 아주 중요하다. 법으로 문화의 중요성을 제도화했다면 그것을 잘 쓰는 것은 지역의 몫이기 때문이다.

조광호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박사는 "지자체마다 문화 특색과 사정이 다르다. 법을 똑같이 적용하더라도 차이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지역에서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5월 경상북도의회는 전국 최초로 '예술인 복지증진에 관한 조례'를 통과시켜 이목을 끌었다. 예술인복지법 개정에 따라 지역 예술인에 대한 처우와 복지 수준을 높여 창작의욕을 활성화할 수 있도록 제도화한 것이었다.

경남은 지역문화진흥 조례 외에 다른 조례는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황무현 마산대학 아동미술교육과 교수의 말이다.

"경남도 지역문화진흥 조례는 추상적인 문구가 많다. 멋대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이다. 그런데도 본회의에서 아무런 논의도 없이 통과됐다. 경남도 경북처럼 예술인 복지 조례와 관련해 도의원과 예술인단체가 논의를 벌인 때가 있었다. 하지만 예술인에 대한 정의, 예술인복지재단 설립에 대한 의견 차이로 더 진행되지 못했다. 이 외에 문화기본법 관련 조례는 논의조차 없었다. 조례는 꼼꼼해야 한다. 지역문화진흥 조례뿐만 아니라 다른 조례도 하루빨리 제정돼야 한다."

경남도와 대비되는 건 경북뿐만이 아니다. 창원시와 통영시의 움직임도 눈에 띈다. 창원시는 지난 2월 '문화예술진흥 및 예술인 복지증진에 관한 조례'를 제정, 내년 2월 8일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조례에 따르면 창원시장은 예술인 복지를 체계적으로 증진하기 위해 5년마다 '예술인복지지원계획'을 수립·추진해야 하고 예술인의 근무 환경 개선을 위해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

통영시도 예술인 단체와 함께 지역 특색을 살린 조례를 구상하고 있다.

◇경남문화예술진흥원 역할 강화 필요

탄탄한 조례가 제정되면 뒷받침할 세부 시행규칙을 만들고 추진하는 일은 경남도의 몫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의 역할이다. 도는 지난해 문화예술 관련 기관을 통폐합해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을 탄생시켰지만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지난달 정진후(정의당·비례) 의원이 발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경남도문화예술진흥원은 전국 문화재단 가운데 자치단체(경남도) 수탁 사업 수가 19개로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이 지난해 7월 개원식을 할 때의 모습. 경남의 창조문화 융성을 위한 중추적인 기관으로 자리매김하겠다고 밝혔다. /경남도민일보 DB

문화 전문가가 모인 진흥원이 경남도 하청기관으로 전락한 것이다.

경남문화예술진흥원 측도 부정하지 않는다. 지자체로부터 안정적인 출연금을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수탁 사업 수행으로 비대해진 조직 규모를 유지하려면 어쨌든 또 수탁 규모를 늘려야 하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고 토로한다.

진흥원 관계자는 "자체적인 사업을 많이 해 기금을 확보하고 독립성을 키워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 외부 문화 전문가가 모였지만 '공무원'처럼 일한다"고 말했다.

문화정책 사업 집행은 무엇보다 예산이 뒷받침돼야 하지만 경남도민 1인당 문화예산은 전국 꼴찌 수준(2013년 기준)이다. 전국 17개 광역시·도 가운데 예산 규모 12위, 구성비 14위, 주민 1인당 문화예산 16위다.

이를 보완해야 할 경남문화예술진흥원 기금마저 바닥 신세다.

정진후 의원 자료에 따르면 진흥원의 기금 적립률은 약 16%. 지난 2010년 15년 내 1000억 원을 목표로 잡았지만 현재 168억 원 정도에 머물러 있다. 올해 예산 중 진흥원의 자체자금 비율은 고작 7%다.

한상우 경남발전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7월 '문화기본법·지역문화진흥법 시행의 의의와 경남도의 과제'란 보고서를 발표해 "경남도가 지역 문화정책 현안을 재정리해 관련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전략적 방안을 구상해 지역문화 진흥이라는 거대 담론을 새롭게 담아내는 구체적인 계획 수립이 필요하다"면서 문화재정 확대, 지역 문화 실태조사 정례화, 신진 문화예술인 지원과 전문인력 양성 등을 과제로 꼽은 바 있다.

모두 경남문화예술진흥원과 직간접으로 연관돼 있는 문제들이다. 이를테면 경남지역 문화 실태조사의 경우, 지난 2012년 진흥원 전신인 경남문화재단이 지역 문화예술인 대상 조사를 실시한 이후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조직은 커졌지만 예산과 인력이 효율적으로 배치되지 않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

진흥원 관계자는 "문화기본법과 지역문화진흥법에 따라 경남도가 장기적인 전략을 세울 기회다. 진흥원도 따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