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단조로웠습니다. 의미없는 삶에 힘이 빠지는 터였습니다.

'재미있는 책을 읽고 싶다.'

실제로는 추리 소설 같은 책을 원했는지 모릅니다. 동네 도서관에 갔습니다. 신간 코너를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하기를 30여 분, 눈에 띄는 제목이 있었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눈물? 원래 짜잖아.' 그런데 손이 갔습니다. 우연히 고른 책입니다. '함민복? 산문집이네?'

서서 책을 펴보았습니다. 선 자세로 어느 새 20여 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이 책 읽고 싶다.' 빌려서 집에 왔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읽고 싶은 책을 가방에 넣고 집으로 올 때의 설렘 말입니다.

어서 빨리 읽고 싶어서 흥분하는 그 짧은 순간의 기쁨 말입니다. 서둘러 집에 왔고 스탠드를 켜고 배를 깔고 누워 책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이 신간인 줄 알았습니다. 알고 보니 개정판이더군요. 이 책을 썼을 당시에는 함 시인께선 미혼이셨던 모양입니다. 2011년 결혼을 하신 것 같습니다. 늦었지만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책에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당신을 걱정하시는 어머니, 어머니를 걱정하는 시인, 만만치 않았던 가족사를 이야기하며 현재(책 속에서) 강화도에서 어부일을 하고 있는 시인. 시인에게는 강화도에서의 생활이 퍽 만족스러워 보였습니다. 잔잔한 평화가 느껴집니다.

어부답게 낙지 잡는 법, 망둥어 낚시법, 숭어 이야기 등 많은 어촌에서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시인은 강화도에서 생활하며 거의 어부가 다 된 듯합니다. 이제 물이 들고 나는 때도 능히 헤아릴 수 있다고 합니다. 동네 주민들과 어색한 듯 만나면서도 어느새 어부가 된, 시인의 마음이 참 정답습니다.

시인은 공업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그리고 월성원자력발전소에서도 일을 했습니다. 그 후 일을 그만두고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함민복, 그의 시에는 그의 삶이, 그의 세상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더 감동적인지도 모릅니다.

친척을 돕기 위해 들어갔던 공장을 그만둘 때의 이야기입니다.

"이 기사하고 같이 만년필하고 연필을 샀어. 좋은 시 많이 써." 나는 공장장과 이 기사와 공장 건물을 뒤돌아보며 무거운 발길을 옮겼다. '좋은 시는 당신들이 내 가슴에 이미 다 써 놓았잖아요. 시인이야 종이에 시를 써 시집을 엮지만, 당신들은 시인의 가슴에 시를 쓰니 진정 시인은 당신들이 아닌가요. 당신들이 만든 착유기가 깨끗한 소젖을 짜 세상 사람들을 건강하게 만들 거예요."(본문중)

이 책에는 시인의 고달펐던 삶도 소개가 되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형의 이야기, 가세가 기울었던 이야기, 단칸방에 살 때의 이야기, 슬픈 200만 원 이야기. 시인은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의문도 많이 던집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에 대해 시인이 던지는 의문은 저에게 큰 깨우침을 주었습니다.

"농약상회에서

…(중략)

슈퍼 옥수수

슈퍼 콩

슈퍼 소

꼭 그리해야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다면 차라리 사람들이 작아지는 방법을 연구해 보면 어떨까

앙증맞을 집, 인공의 날개, 꼬막 밥그릇, 나뭇가지 위에서의 잠, 하늘에서의 사랑 무엇보다도 풀, 새, 물고기들에게도 겸손해질 수 있겠지

계산대 앞에서

푸른 빛 쏟아질 듯

흔들리는 아욱 씨앗소리"(본문중)

많은 글에서 시인의 '가난'에 대해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왠지 '함민복=가난'이라는 등식이 성립되더군요. 전 이 책을 읽고 나서 느꼈습니다. 시인은 가난함으로 마음 아리고 불편했던 적은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덕에 그의 시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게 된 것 같기도 합니다. 가난이 불편할 것 같지만 불편하지 않은 시인, 그의 시가 감사함을 주는 이유입니다.

이 책은 산문집이지만 시인의 시를 소개하고 상황을 설명하는 부분도 많아 번외편이라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만큼 시에 대한 이해가 잘 된 것도 사실입니다. 개인적으로 시집에는 문외한입니다. 하지만 이 책을 접하고 시인의 시집은 꼭 읽어보고 싶다는 의지가 생겼습니다. 사소하지만 감사함을 느끼고 하루하루를 뜻있게 사는 시인을 보며 참 감사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좋은 책입니다. 따뜻한 책입니다. 책 크기는 작지만 내용은 거대한 책입니다. 비오는 가을, 외롭다고 느끼시는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합니다. 아직 우리의 삶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김용만(청보리의 함께 사는 세상· http://yongman21.tistory.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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