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따라 내 맘대로 여행] (36) 거창사건추모공원

"아! 가을…."

절정의 단풍과 짙은 가을 향기를 품은 국화를 동시에 바라보니 감탄이 신음처럼 새어 나온다.

단풍놀이에 흥이 겹고 가을꽃 축제에 전국이 취하는 요즘이다.

거창사건추모공원(거창군 신원면 신차로 2924). 현대사의 비극이었던 거창사건을 추모하고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곳이다.

거창사건이란 6·25 전쟁 중이던 1951년 2월 거창군 신원면 일대에서 일어난 주민 대량학살 사건을 말한다. 중공군 개입으로 1·4 후퇴가 시작된 후 빨치산 공세가 강화되던 와중이었다. 당시 신원면 일대에서 공비 토벌 작전을 벌이던 11사단 9연대 3대대는 공비와 내통했다 하여 이 지역 주민 719명을 무차별 학살했다.

찬란한 이 계절에 엄숙한 이곳을 찾았다. 잔뜩 비가 내리고 겨우 갠 하늘은 여전히 무겁다. 추모공원으로 향하는 길은 구불구불 좁은 도로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운전대를 잡는다. 도로를 지나다 보면 사건 현장을 알리는 푯말이 추모공원으로 안내하듯 펼쳐져 있다.

국화로 한반도 모양을 만들었다. 공원 곳곳에 공룡·풍차 등 국화로 만든 모형이 가득하다.

산 허리까지 내려온 구름과 붉다 못해 타버릴 듯 새빨간 단풍 길은 마음을 들뜨게 하지만 비극적 과거와 마주하자 이내 마음이 차분해진다.

천유문. 억울하게 희생된 영령에 대한 추모 공간으로 안내하는 문 앞에 섰다. 사건이 일어난 지 3년 만인 1954년 유족들이 유골을 수습했지만 성별조차 구분할 수 없어 큰 뼈는 남자. 중간 뼈는 여자, 작은 뼈는 어린이로 구분해 이곳에 합동 묘를 조성했다.

1990년대 들어 거창사건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제정되면서 2004년 지금의 추모공원으로 새 단장됐다.

추모공원은 거짓말처럼 평온하고 만추의 가을은 어쩔 수 없이 절경을 그려낸다.

추모공원은 지난 23일부터 '거창한 국화 향기를 찾아서, 거창사건 진실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제7회 국화전시를 열고 있다. 내달 9일까지 이어진다.

국화 축제야 전국 곳곳에서 열리고 있지만 역사 현장에서 열리는 국화 전시는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사실 잘 알지 못했던 역사, 언뜻 책에서 보기는 했지만 애써 알려고 하지 않았던 역사 현장을, 아이러니하게도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국화의 안내를 받아 한걸음 한걸음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형형색색의 국화가 슬프도록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었다. 공룡과 꽃마차, 꽃그네, 꽃터널, 꽃풍차를 비롯해 우리나라 꽃지도, 아기자기한 국화 분재 등 볼거리가 풍성하다.

만추의 거창사건추모공원 풍경. 절정의 단풍과 짙은 가을 향기를 품은 국화꽃을 동시에 바라보노라니 감탄이 신음처럼 새어 나온다. 가운데 위령탑이 보인다.

만개한 국화는 진한 가을 향기를 내뿜는다. 국화 색깔도 붉은색, 노란색, 단풍색, 보라색, 하얀색 등 천양지차다. 국화의 꽃말은 평화와 지혜, 절개 등으로 알려졌지만 색깔과 품종에 따라 그 의미 또한 다양하다.

노란색 국화는 '실망과 짝사랑'을 뜻하고 장례식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흰색 국화는 '성실과 진실, 감사'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빨간색 국화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뜻이란다.

국화의 안내를 받으면서 위패봉안각, 위령탑, 부조벽, 위령 묘지, 역사교육관을 둘러볼 수 있다. 희생자들을 안장한 위령 묘지 앞에 서니 숙연해진다. 그림 같은 국화 분재를 따라 역사 교육관을 둘러보면 거창사건의 전체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

궁금한 것은 추모공원 홈페이지(case.geochang.go.kr)를 참조하거나 전화(055-940-8510)로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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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행사>

△제7회 국화전시 부대 행사 = 국화전시 기간 거창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청야> 무료 상영을 비롯해 주말에는 음악콘서트, 전통민속놀이체험마당 등이 열린다. 국화헌화참배장도 운영하며, 페이스 페인팅과 사진촬영대회도 참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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