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땐 조건 없이 이주' 기간 못 채우고 쫓겨나기도 신중한 판단·계약 필요해

재개발·재건축사업 예정지역은 절차가 복잡하고 조합 설립 이후에도 진행 속도를 기약할 수 없다는 점 등의 이유로 임대차 계약서를 작성할 때 특별조항을 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탓에 낭패를 보는 경우가 잦아 특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창원지역에는 곳곳에서 재개발·재건축이 진행되거나 계획이 수립되고 있다. 이 지역에 전세를 구하는 사람들은 '임차인은 임차기간 이내에 재건축으로 말미암은 이주 때 조건 없이 이주키로 한다'는 특별조항으로 계약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갑작스런 사업 진행으로 계획했던 기간을 못 채울 뿐 아니라 재산상의 피해를 보는 경우가 잇따르고 있다.

재건축이 진행되고 있는 창원시 가음동 청학아파트에 사는 ㄱ씨는 2015년 5월 말까지가 전세 계약기간이다. 내년 5월 창원시 진해구에 분양받은 아파트 입주를 앞두고 이에 맞춰 전셋집을 구했다. 2013년 계약 당시 ㄱ씨는 부동산중개소에서 5년 안에 이주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해 2년만 살면 된다는 생각에 의심 없이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하지만 얼마 전 내년 1월 20일까지 집을 비워줘야 한다는 집주인의 연락을 받았다. ㄱ씨는 새 아파트 입주까지 4개월 동안 어디서 지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ㄱ씨는 보상을 요구하거나 반발할 수도 없다. 임대차계약서에는 '임차인은 임차기간 이내에 재건축으로 말미암은 이주 시 조건 없이 이주키로 한다'고 적혀 있기 때문이다.

주택 재건축 사업이 진행 중인 창원시 성산구 가음정동 동양아파트 주민들이 이사를 하기 위해 짐을 옮기고 있다. /이혜영 기자

창원시 가음동 가음6구역 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은 사업에 박차를 가하며 11월 3일까지 해당 가구로부터 이주비 신청을 받고 있다. 조합은 12월 말까지 이주를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가음6구역은 두산, 하은, 한국산업은행, 청학, 무궁화, 동양, 효성아파트 등 5층 아파트 16개 동 955가구로 1980년 초에 완공됐던 아파트들이 철거될 예정이다.

22일 찾은 가음6구역은 구름 낀 날씨 탓이기도 했지만 인근 가음7구역 아파트가 대부분 비어 있고 지나다니는 이가 드물어 적막감이 돌았다. 이삿짐을 옮기는 사다리차 한 대는 분주히 짐을 내리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70대 ㄴ씨는 오는 30일 이사할 예정이다. ㄴ씨는 "지난해 4000만 원 전세금으로 이곳에 이사 왔다. 그땐 이렇게 계약 기간도 못 채우고 쫓겨날 줄 몰랐고, 이 돈으로 지금은 갈 곳도 없다"며 "날도 추워지는데 하필 이런 계절에 없는 사람들을 더 서럽게 한다"고 덧붙였다.

인근 부동산중개소 소장은 지금부터 11월 한 달간 하루에 10가구씩은 이주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 소장은 "가음동에 실제 거주자는 세입자가 70%다"라며 "특약사항대로 어쩔 수 없이 이주한 사례도 많다"고 전했다.

인근 다른 부동산중개소 소장도 11월 이주가 마무리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전세 계약 때 재개발·재건축 지역은 당장 앞만 보지 말고 더 신중해야 한다"며 "기간을 못 채우고 나가야 할 경우 이사비 또는 일정 정도의 위로금을 받을 수 있는 조항을 요구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