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피춤]서피랑 사랑 이야기…화가 이중섭과 아내 '마사코', 시인 백석과 '란', 과부 박경리와 총각 음악 선생님, 유치환이 이영도에게 보낸 편지

시인 백석은 서피랑 인근에 살던 통영 여자를 사랑해 아득한 연시를 남겼다. 사랑 때문에 상처받은 박경리는 통영을 떠났고, 화가 이중섭은 일본으로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다 통영에서 절정의 작품을 남겼다.

통영 서피랑 아래와 주위에는 이런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랑 이야기가 아직도 절절히 배어 있다.

1935년 친구 결혼식에서 백석(사진)은 18세의 통영 여성 '란'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이후 결혼한 친구와 통영이 고향인 또 다른 친구 신중현과 함께 란을 찾아 통영으로 오지만 결국 만나지 못했다. 만나지 못한 아픔에 서피랑 옆 충렬사 계단에 앉은 시인은 '…샘터엔 오구작작 물을 긷는 처녀며 새악시들 가운데 내가/좋아하는 그이가 있을 것 같고…'라고 노래했다. 샘은 명정샘을 뜻하는데, 서피랑 아래 명정동 유래가 된 샘이다. 란이 백석의 친구이자 독립투사가 되는 신중현에게 시집가면서 두 사람의 사랑은 끝이 났다. 백석은 시 인생에서 이례적으로 '통영'이란 같은 제목 시 3편을 발표했다. 절절한 이 시들은 모두 한 여자, 란을 향하고 있다.

백석.

서피랑 아래 명정골 윤보선 대통령 영부인 공덕귀 여사 생가 터 옆에 소설가 박경리(사진)가 살았다. 1946년 서울에서 결혼한 뒤 박경리는 한국전쟁 중 남편과 사별했다. 이후 아들과 딸을 데리고 고향 통영으로 돌아온 뒤 딸의 초등학교 담임이자 음악선생을 사랑했고 재혼했다. 하지만 "애 둘 딸린 과부가 총각선생과 결혼했다"며 온갖 악소문에 시달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박경리는 통영을 버렸고 50년간 고향을 찾지 않았다.

박경리.

유복자로 태어난 화가 이중섭(사진)은 해방 직전인 1945년 밀항선을 타고 천신만고 끝에 한국으로 온, 야마모토 마사코(93·한국명 이남덕)와 결혼했다.

한국전쟁 당시 이중섭은 궁핍한 생활로 말미암아 1952년 아내와 두 아들을 귀환선 편으로 일본으로 보냈다. 이후 일주일간 일본으로 건너가 아내와 아이들을 만나고 돌아왔지만 이후, 영영 이별했다. 이때 이중섭은 동향인 염색공예가 유강렬의 권유로 통영으로 왔다. 이중섭은 서피랑 인근 서호동 문화마당 옆 골목안에 거주했다.

이중섭.

이중섭의 통영 생활 약 3년은 절정의 작품을 쏟아내는 시기였다.

발작과 정신병 등을 앓았던 이중섭은 아내에게 죽을 힘을 다해 편지를 썼고 아내의 편지를 지독하게 기다렸지만, 정작 편지를 받는 날은 우울증 증세가 크게 심해졌다. 사랑과 자식을 잃은 이중섭은 파괴된 남자였다. 이중섭은 1956년 서울에서 43세에 요절했다.

아내 마사코는 재혼하지 않았다. '마사코' 이남덕 여사는 이중섭과 결혼에 대해 "내가 원했던 길입니다. 90평생을 살아오면서 한 번도 후회해본 적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일본인 사카이 아쓰코 감독은 통영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이중섭의 아내>를 촬영했다. 아쓰코 감독은 이때 "너무도 표현하고 싶은 사랑이야기였다"고 말했다.

서피랑 아래 통영 중앙우체국은 유치환(사진)이 이영도에게 20년 동안 무려 5000여 통 사랑 편지를 보낸 것으로 유명하다. 유치환이 교통사고로 숨진 뒤 보낸 편지는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란 책이 됐다. 

유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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