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유한숙 씨 320일 만에 장례…밀양 영남병원서 영결식, 반대 주민·연대자 목메어 "송전탑 못 막아 죄송하다"

"부디 핵도 송전탑도 없는 저세상에서 편안히 지내세요."

밀양 765㎸ 송전탑 반대 주민 고 유한숙(당시 74세) 씨 영결식이 22일 진행됐다. 고인이 지난해 12월 6일 숨진 지 320일 만이다. 밀양 상동면 고정마을에서 26년째 축산업을 해오던 고인은 송전탑 때문에 괴로워하다 음독해 숨졌다.

이날 오전 8시 30분 밀양 영남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영결식은 단출하게 진행됐다. 송전선로 경과지 마을주민과 연대자 60여 명이 함께했다.

영결식은 대한불교조계종 화쟁위원회와 밀양시사암연합회 스님들의 불교의식으로 시작했다. 밀양 765㎸ 송전탑반대대책위 공동대표 김준한 신부는 조사에서 "세상에서 생명보다 소중한 게 있겠느냐.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의 덕으로 지금까지 버텨왔다"며 "잘못된 에너지정책의 시혜를 보는 사람들이 잘살아가고 있다. 유지를 받든다는 생각으로 송전탑과 에너지정책에 대한 올바른 목소리를 내고 진실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조계종 화쟁위원장 도법 스님은 "이 사회 역량과 실력이 부족해서 가신 분도 아프고 살아남은 사람도 아프다. 미래도 힘들다"며 "우리 현실이 이렇게 된 데 대해 종교인으로서 죄송스럽다"고 했다.

밀양 765㎸ 송전탑 반대 주민 고 유한숙(당시 74세) 씨 영결식이 22일 밀양 영남병원에서 진행됐다. 밀양 상동면 고정마을 강명숙 이장이 조사를 하고 있다. /표세호 기자

이날 한국갈등해결센터 이수호(전 민주노총 위원장) 이사장도 참석해 '밀양은 죽지 않고 살아 있습니다'라는 조사를 했다. 이 이사장은 "조용히 부르기만 해도 온몸이 따뜻해지는 밀양이 언제부턴가 점령군처럼 쳐들어오는 송전탑이 떠오르고 거기 맞서 싸우는 할배·할매들이 떠오르는 고장이 됐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어 "포기하지 않고 더 뜨거운 오늘을 살며 밀양이 확산되어 청도, 삼척, 울진, 영덕, 고리가 되어 이 아름다운 한반도 어디에도 핵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그런 미래를 위해 더 힘차게 살도록 마음을 모은다"고 말했다.

이어 "부디부디 핵도 송전탑도 없는 저 세상에서 편안히 지내시라. 남은 우리가 어르신의 뜻 받들어 서로 아픔을 보듬어주며 그동안 앙금과 갈등을 스스로 풀고 더불어 하나 되는 참 햇볕 따뜻한 고장이 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송전선로 경과지 마을주민을 대표해 고정마을 강명숙 이장이 조사를 이어갔다. 강 이장은 "하루에도 몇 번씩 상동면과 시내를 오가는 길에 어르신이 살던 집을 지날 때 수없이 마음이 아팠다"며 "우리 주민들의 마음이 곧 어르신의 마음이다. 정말 할 수만 있다면 죽고만 싶다고 늘 말한다. 철탑이 저렇게 올라와도 수천명 경찰 때문에 꼼짝도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던 날이 얼마였나"고 했다.

철탑을 막지 못해 미안하고 죄송하다고 말할 때 강 이장은 목이 멨다. 주민들은 눈물을 훔쳤다. 강 이장은 "이 세상에서 품고 계셨을 안타까운 마음, 분노 다 내려놓으시고 편히 쉬시라. 그리고 우리 고정마을 주민들과 4개 면 경과지 주민들이 힘든 시간을 잘 견디며 이겨나갈 수 있도록 힘을 불어넣어 달라"고 빌었다.

고인의 맏아들 유동환 씨의 인사로 영결식은 마무리됐다. 유 씨는 "아버지 유지를 잘 받들어야 하는데 제가 부족해서 아버지 한을 못 풀어드려서 죄송하다"고 말했다.

고인은 정부와 한국전력의 사과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이날 땅에 묻혔다. 유족과 대책위는 송전탑 공사중단, 사인규명과 사과를 요구하며 지난 10여 개월 동안 장례를 미뤘었다. 밀양 영남루 건너편에 비닐로 지은 노천분향소에서 겨울을 나다 밀양시와 협의해 지난 2월 초 밀양강 둔치에 컨테이너 분향소를 운영해왔다.

대책위원회는 이날 장례를 마치고 낸 자료에서 "정부와 한국전력의 명분 없는 공사강행과 잘못된 전력정책으로 생겨난 불행하고도 억울한 죽음에 대해 밀양 송전탑 경과지 주민들은 비통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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