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은 죽지않았습니다.

산 좋고 물 좋고 햇살도 고와
아무에게나 함부로 내보이기도 싫은
밀양
밀양이라고 조용히 부르기만 해도 온몸이 따뜻해지는 밀양이
언제부턴가 밀양하면
점령군처럼 쳐들어오는 송전탑이 떠오르고
거기 맞서 싸우는
할배 할매들이 떠오르고
전국에서 달려온 연대동지들 얼굴이 떠오르고
이치우, 유한숙 어르신의 이름이 떠오르는
그런 고장이 되었습니다.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이제 밀양은 미래의 우리 후손들이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 싸우는 참 아름다운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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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유한숙 씨 영결식에서 조사를 읽고 있는 이수호 이사장./표세호 기자


오늘 우리는 그것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얼음장이 되어 냉동고 속에서도
가열차에 싸우시던 유한숙 어르신을
따뜻하게 보내드리기 위해
이렇게 모였습니다.
되돌아보면 안타깝고 억울하고 분해서 화가 나서
온몸이 떨리고 말이 막힙니다만
오늘만은 조용히 참기로 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묶어서
안으로 깊이깊이 간직하고 다짐하며
포기하지 않고 더 뜨겁게 오늘을 살며
밀양이 확산되어 청도가 되고 삼척이 되고
울진이 되고 영덕이 되고 고리가 되어
이 아름다운 한반도 어디에도
핵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그런 미래를 위해 더 힘차게 살도록
마음을 모읍니다.

유한숙 어르신
아직도 불끈 쥐고 있는 그 손
이제 그만 놓으십시오.
아직도 부릅뜨고 있는 그 눈
조용히 감으세요.
남은 일들이랑 우리에게 맡겨주시고
포근히 가족들 품에 안겨 주세요.
부디부디 핵도 송전탑도 없는
저 세상에서 편안히 지네세요.

유한숙 어르신
그러나 밀양은
남은 우리가 어르신의 뜻 받들어
더 멋지고 아름다운 마을 만들겠습니다.
서로의 아픔을 서로 보듬어 주며
그동안의 앙금과 갈등을 스스로 풀고
더불어 하나 되는 참 햇볕 따뜻한
고장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어르신은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보내 드리지만
밀양은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밀양은 살아있습니다.
부디 평안히 가십시오.

2014년 10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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