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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그대로 품은 문화유산으로 더 빛난 자연

[2014 경남도민 생태·역사기행] (7)함양

김훤주 기자 pole@idomin.com 2014년 10월 22일 수요일

10월 생태·역사기행은 함양으로 8일 떠났다. 올해 일정의 마지막으로 일곱 번째다. 햇살은 아직 따가우나 바람은 뚜렷하게 가을 기운을 뿌리는 즈음에 맞은 이번 기행에서는 일두고택과 허삼둘가옥, 그리고 운곡리 은행나무와 화림동 골짜기를 둘러봤다.

일두고택은 조선 선비 정여창(1450∼1504)의 옛집인데 아주 널리 알려져 있다. 화림동 골짜기도 마찬가지다. 6km 남짓 이어지는 물줄기를 따라 갖은 바위와 수풀이 어우러지는데 이런 아름다움만큼이나 명성도 드높다 하겠다.

생태·역사기행 일행들이 일두고택 솟을대문 앞에서 설명을 듣고 있다.

반면 안의에 있는 허삼둘가옥과 화림동 골짜기 위에 있는 서상면 운곡리 은행나무는 크게 알려져 있지는 않다. 허삼둘가옥은 우리나라에서 달리 보기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여성 중심형 구조인데도 모르는 사람이 많고, 운곡리 은행나무는 그로 말미암아 동네 이름이 '은행마을'일 정도로 대단하지만 명성은 거의 나 있지 않다.

운곡리 은행나무. 설명에도 심드렁하던 사람들이 실제 마주한 후 감탄을 자아냈다.

이처럼 유명하고 유명하지 않고에서 차이는 나지만 훌륭한 문화유산과 뛰어난 자연생태를 두루 찾아 누릴 수 있는 데가 바로 함양이다. 자연생태가 뛰어나기 때문에 훌륭한 문화유산이 자리잡은 대표 고을이 함양인 셈이다.

일두고택은 정여창의 호를 집 이름으로 삼았지만 정여창 생전부터 있었던 건물은 아니다. 정여창은 무오사화로 함경도 경성에서 귀양살이를 하다 목숨을 잃었고 갑자사화를 당해서는 무덤에서 끄집어내어져 부관참시까지 당했다. 점필재 김종직의 제자로 사림파의 선봉에 서서 인(仁)을 바탕으로 그렇지 않은 훈구파를 공격했으나 정작 본인은 겸손했다고 한다. '좀벌레 한 마리'를 뜻하는 '일두'를 호로 썼을 정도.

후대에 지어진 이 집은 사랑채가 아주 권위롭다. 들어서는 솟을대문에도 나라에서 내린 충신·효자 정려가 다섯이나 있고 말에 타고 내릴 때 쓰던 돌덩이까지 따로 있으니 더 말할 것도 없겠다. 자체가 높직한데다 들어앉힌 축대조차 사람 어깨 높이가 될 만치 높고, 글자 하나 크기가 어지간한 사람 몸통만한 충효절의(忠孝節義)·백세청풍(百世淸風)도 높게 걸려 보는 이를 압도한다. 누마루 아래 곳간 문을 열어 왼편을 살펴보는 이들도 적지 않은데, 거기에는 집안을 받쳐주는 남근석이 제대로 솟아 있다. 반면 안채는 사랑채처럼 권위롭지는 않고, 대신에 환하고 따듯한 기운이 가득하다.

일행들은 이러구러 한 바퀴 둘러보고 안사랑채를 지나 다시 사랑채로 돌아와서는 사진 찍기에 바빴다. 사랑채 앞뜰 왼편 석가산(石假山)과 그 소나무가 주된 대상이다. 여기에 사랑채 높다란 기와지붕과 누마루까지 어우러지니 그보다 더 멋진 풍경이 없기는 하겠다. 사랑채 마루에서 마주보이는 자리에는 전나무 한 그루가 우뚝 솟아 그 푸름을 절의 삼아 자랑하고.

허삼둘가옥 행랑채 마루에 앉아 설명을 듣는 일행들.

일두고택에 더해 개평마을 곳곳에 있는 옛집들을 둘러본 일행은 안의로 향했다. 허삼둘가옥은 안의초교 조금 위에 있다. 허삼둘은 집을 지을 1918년 당시 안주인 이름이다. 보통은 바깥양반 이름을 따서 집 이름으로 삼는데 여기는 그렇지 않다. 까닭은, 안채 구조를 조금만 뜯어봐도 바로 알 수 있다.

'ㄱ' 모양으로 가운데가 꺾여 있는데, 바로 그 꺾인 한가운데에 부엌이 있다. 안쪽 공간이 상당히 너른 부엌에서는 행랑채와 중문과 마당은 물론 사랑채까지 한 눈에 넣고 장악할 수 있다. 집안 전체를 안주인이 통째로 경영하는 상징으로 볼 수 있겠고, 이런저런 관습 따지지 않고 편리함을 좇은 결과라 할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그 부엌에서는 크게 움직이지 않고서도 집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 이를테면 안마당에 햇살 내려앉은 질감까지 손쉽게 감지할 수 있다.

바로 위쪽 농월정거창식당에서 비빔밥으로 점심을 뚝딱 해치우고 농월정'국민관광지'(농월정은 2003년 불타 지금은 있지 않다) 이쪽저쪽을 기웃댄 다음 운곡리 은행나무를 '뵈오러' 떠났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거기 은행나무가 가슴높이 둘레가 9m가량이고 키는 38m를 웃도는 진짜 엄청난 존재라 얘기했는데도 사람들은 대부분 한편으로 기대를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래야 별 것 있겠느냐는 표정이었다. 얼마나 대단했으면 동네 사람들이 둘레에 널따랗게 돌을 쌓아 담장을 만들고 영역을 마련해 줬겠느냐는 얘기도 했지만, 심드렁한 표정은 지우기 어려웠다.

들머리에서 걸어들어갈 때도 분위기는 달라져 있지 않았다. 100m 정도 떨어진 데서 바라보이는 모습이 예사로운 수준을 벗어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골목을 지나 마을 한가운데에 들어서 마주했을 때 표정이란! 벌어진 입으로는 감탄이 절로 나고 혓바닥을 구르는 소리는 '엄청' '대단'이 모두였다.

저마다 멀리와 가까이를 오가면서 은행나무 할아버지를 사진에 담기 바빴고 어떤 이는 둘러싼 돌담장까지 한 화면에 담기 위해 바닥에 엎드리기도 했다. 은행나무가 얼마나 굵은지 다들 궁금했던 모양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에 손 잡고 빙 둘러서니까 일곱 아름이 나왔다. 누구는 가지와 잎사귀의 하늘거림이 좋았던지 벌렁 드러눕기도 했다. 누군가가 말했다. "오늘 보람은 이 은행나무 하나만으로 충분하다!"

동호정 앞 솔숲과 함께 물 위에 비친 일행들 모습. /김훤주 기자

하지만 그 못지 않은 보람이 남아 있다. 자연 속에 쏙 들어앉은 거연정에서 시작해 군자정과 동호정을 거쳐 호성마을 지나서까지 이어지는 화림동 골짜기 탐방로를 따라 걷는 일이다. 많은 이들이 아는 그대로, 정자를 누리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정자를 바라보며 정자가 자리잡은 풍경이 얼마나 그럴듯한지 감상하는 것과, 옛날 선비들이 그랬던 대로 정자에 올라 거기서 바라보이는 아름다운 사방 풍경을 눈에 담는 것이다. 화림동 골짜기는 둘 다를 멋지게 즐기고 아름답게 누리게 해준다. 햇살이 쏟아지는 가운데 물과 바위와 숲과 그늘이 어우러지고, 햇살이 조금이라도 따가울라치면 물소리 바람소리가 말끔히 씻어가 버린다.

거연정으로 건너가는 다리. 화림동 골짜기 탐방로의 시작점이다.

게다가 정자들마다에는 너럭바위가 개울 쪽으로 하나 이상 받쳐주고 있어서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한 자락 너르게 펴놓고 한 바탕 즐길 만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동호정에서는 아래 개울물이 흐르는 한가운데는 사람이 심어 가꾼 솔숲까지 마련돼 있다. 나른한 몸을 비스듬히 누이고 막걸리 한 잔 기울이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걷다가 노닐고 노닐다 걷고를 되풀이하다 네 시 조금 못 미쳐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동호정에서 바라본 바로 앞 너럭바위.

3월 거제에서 시작해 순천, 영주·상주·문경, 포항, 무안, 울산을 거쳐 함양에서 끝마친 2014 경남도민 생태·역사기행에 안팎으로 함께해 주신 모든 이들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이 참에 올린다. <끝>

※2014 경남도민 생태·역사기행은 경상남도람사르환경재단에서 지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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