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편일률 결혼식 싫어'창원의 집'서 전통혼례지인들이 직접 음식 차려줘

일반 결혼식장에서 올리는 예식은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느낌'이 강하다. 북적거리는 이들을 감당하기 어려운 실내, 천편일률적인 순서, 지루한 주례, 그리고 다음 예비부부를 위해 시간 내 끝내야 한다는 조급증…. 결혼하는 이와 찾은 이들이 함께 즐기는 축제가 되어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해 보인다.

백성덕(37)·최영숙(40) 씨는 그런 결혼식을 하고 싶지 않았다. 남들과 다르고, 또 스스로 준비하고 싶었다. 그래서 택한 공간이 '창원의집'이었다. 이곳은 약 200년 전 만들어진 전통한옥으로 넓은 마당이 있다. 가족 나들이 공간으로 개방된 이곳에서는 무료로 전통혼례를 올릴 수 있다. 백성덕·최영숙 씨는 지난 11일 맑은 가을날, 여기서 부부의 연을 맺었다.

둘은 2011년 7월 경남비정규직근로자지원센터가 만들어지면서 만났다. 성덕 씨는 김해센터, 영숙 씨는 창원센터에서 일했다. 정기적인 회의 등 볼 기회가 종종 있었다.

영숙 씨는 이렇게 기억했다. "첫인상은 그냥 그랬죠. 나이도 있고 하니 서로 좋은 아저씨·아줌마 정도로 생각했죠. 비혼이라는 건 좀 더 지나서 알았죠. 그냥 일 열심히 하는 좋은 동료 관계였어요. 저는 이전까지 연하는 이성으로 생각 안 했거든요. 성사는 안 됐지만 서로 지인을 소개해 주려고도 했고요."

그렇게 2년이 흐른 지난해 여름이었다. 단둘이 여름휴가를 가게 되었다.

"창원·김해센터 식구들이 함께 제주도 강정마을에 다녀온 적이 있거든요. 지난해 여름에도 그분들 중 몇몇과 함께 다시 가기로 했죠. 그런데 함께 가기로 한 분들 일정이 맞지 않아, 단둘만 떠나게 됐죠."

사실 이전부터 주변에서는 '둘이 잘 어울린다'는 말을 하던 차였다. 둘 역시 '참 좋은 사람이다'라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것을 드러낼 수 있는 시간이 마침내 다가온 것이다. 술한잔 하는 자리에서 성덕 씨가 먼저 마음을 드러냈다. 영숙 씨는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래도 좀 여유를 두고 생각하고 싶었다.

"일주일 정도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죠. 그런데 당장 답해야 한다고 그러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좋은 사람이 내민 손을 지금 잡지 않으면 놓칠 수도 있겠구나, 그러면 평생 후회하겠구나'라고 말이죠."

그렇게 둘은 연애를 시작했다. 곧바로 결혼 이야기까지 나왔다. 이때 좀 티격태격했다.

(영숙 씨) "혼자 살아도 별 불편함이 없는데, 굳이 왜 결혼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특히 여성의 불리함을 감내하면서까지 말이죠."

(성덕 씨) "그런 걸 두려워하면 안 되고, 극복해야죠. 결혼하지 않을 거면 만날 이유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성덕 씨 세뇌(?)가 계속됐고, 명절 때 인사드리러 가면서, 영숙 씨는 자연스레 결혼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더 행복해질 것이란 기대 때문은 아니다. 성덕 씨를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다.

영숙 씨 부모님은 둘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둘 하는 일은 험하다. 비정규직 노동자와 함께 거리로 나가 싸워야 한다. 부모님 처지에서는 "밥은 어떻게 먹고 살겠노"라며 걱정했다. 그래도 둘의 마음을 결국에는 알아주셨다.

둘은 예단도 주고받지 않고, 결혼식 비용도 얼마 들지 않았다. 전통혼례 음식은 지인들이 직접 장을 봐서 차리기도 했다. 영숙 씨는 그들 앞에서 한복을 입고 절하다 넘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늘 씩씩한 영숙 씨에게 수줍음 같은 건 없었다. 오히려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하객들을 미소 짓게 했다.

결혼한 지 보름 정도 된 부부. 장을 보러 가면 일반적인 부부 모습과는 정 반대다. 성덕 씨는 모두 둘러본 후 물건을 산다. 장 보는 데 1시간 넘게 걸린다. 영숙 씨는 그 반대다. 이것 때문에 다툴만도 한데, 그렇지 않다. "서로 정반대라서 더 잘 맞는 것 같아요"라는 답이 돌아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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