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영 교수 '뉴스 텍스트의 은퇴 담론 분석'…<조선일보>기사 분석결과 은퇴문제 제도보다 개인 강조

은퇴 후 인생 설계, 노후 설계 등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부산울산경남 언론학회가 발간하는 <언론학연구> 최근호에는 거대 언론의 은퇴담론 구성·유포 방식을 분석한 황지영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의 글이 실렸다.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황지영 교수가 분석한 매체는 한국 사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조선일보>다. 2011년 12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총 213건의 은퇴 관련 기사가 대상이 됐다.

어떤 사안이든 미디어의 보도 행태가 중요한 것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기보다 그들 나름대로 '재구성'을 하기 때문이다. "미디어의 재현은 지시이자 동시에 출연이며 대상에 대한 이해방식이자 자기발현이다. 뉴스 편향은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고 세계에 반응하는 방식을 변화시킨다. 그들은 진리의 낱알을 수확하고 그로부터 하나의 정교한 이야기를 짜낸다. 사람들은 미디어 표상들을 현실과 의미 있게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으나 뉴스는 기자에 의해 쓰이거나 말해진 현실인 것이다."

우선 <조선일보> 은퇴 관련 기사의 담론별 비중은 이렇다. 재무 설계 83건, 일 52건, 제도 25건, (예비)은퇴자 22건, 관계 18건, 여가시간·시테크·건강·주거 등 기타 13건.

일부 언론은 국가·기업의 책임을 묻기보다 노년층 개개인 스스로 은퇴 후 인생을 '알아서' 잘 관리하라고 조언한다. 사진은 지난 1일 세계 노인의 날을 맞아 한 노인단체가 서울 세종로 일민미술관 앞에서 노년층 복지대책 촉구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재무 설계, 일 담론이 압도적인데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흔히 은퇴자들은 자신의 은퇴자금을 리스크가 전혀 없는 예금에 묵혀 놓든지, 반대로 리스크가 주식보다도 훨씬 큰 자영업에 왕창 털어 넣든지 하는 양극화된 투자 패턴을 보인다. '모 아니면 도 식' 재테크인데 이를 벗어나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2012년 1월 9일 자)

"중요한 것은 퇴직 다음 단계를 내다보는 자세다. 여기서 핵심은 바로 커리어다. 강창훈 (사)고령사회고용진흥원 사무총장은 퇴직 후 1∼2년이 가장 중요한 시기라며 학습 등을 통해 자신의 경력 및 경험을 보다 심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2012년 4월 25일 자)

◇은퇴자? NO! 평생현역!

언론은 은퇴는 단순히 일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제2의 인생을 설계하는 것이라며 은퇴자를 '평생현역'의 관점에서 새롭게 구성한다. 여기서 부각되는 건 예의 '개인'이다. 황지영 교수는 "생애설계 차원에서 은퇴 준비는 인생 후반기 동안 가치 있는 삶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정의되고 있다"면서 "평생현역이라는 생산인구로서 새로운 지위는 노후에 대비한 개인 준비와 설계의 불가피성을 강조한다. 돈, 건강, 가정을 얻기 위해선 눈을 낮추고 낮은 임금을 감수하고 나이·체면을 버리고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는 적극적인 삶의 태도를 가지도록 요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날 은퇴 후 피부양자로서 누렸던 타자 의존적 삶의 방식은 더 이상 허용되지 않으며, 전 생애에 걸쳐 자립적인 삶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재무설계 담론을 예로 들면 개개인은 재무 목표를 설정해야 하고 그 목표 달성을 위해 전문적인 차원의 재무 설계, 즉 노후 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재테크 전략 수립과 자산 창출 활동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나아가 '물가리스크'와 '장수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해 은퇴 후 20년까지, 이른바 실질 은퇴연령에 도달할 때까지 자산투자를 계속해야 한다는 추가적 주문도 이어진다.

물론 <조선일보>도 비중은 작지만 국가·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제도적 대책에 관심을 둔다. 하지만 그 역시 복지정책 강화보다는 중고령자 취업 활성화를 위한 법 개정 및 법제화에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심지어 기초노령연금제도를 폐지한 선진국 사례 소개 등 현행 복지제도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일할 권리 보장'이 노인복지의 가장 시급한 의제임을 강조하기도 한다.

"유럽에서는 오래전부터 '능동적 노화'의 개념을 전파하며 중고령자들의 취업 활성화 정책을 강조하고 있으며, 미국도 사회보장제도만으로는 노후를 맞을 수 없다는 위기의식 속에 고령층의 취업 욕구가 커져가고 있다. 박영란 강남대 실버산업학과 교수는 노인이 일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현재 노인 복지 이슈 중에서 가장 급한 어젠다라고 말했다."(2012년 5월 22일 자)

◇덜 떨어진 개인들의 종착점

<조선일보> 등의 보도 행태가 가져올 정치·사회적 효과는 자명하다. 황지영 교수는 "은퇴 담론 5가지 대상 중 제도를 제외한 모두가 개인적 차원을 다루고 있어 은퇴 문제 핵심이 제도적 차원이 아니라 개인적 차원임을 강조하고 있었다"면서 "담론을 통해 구축된 '강요된 사회적 합의'는 은퇴 이후 지속가능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개인 차원의 준비, 노력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결국 은퇴 담론은 자본주의가 내재한 구조적인 문제, 생산성의 한계, 복지 정책 수정의 불가피함 등을 개인 문제로 귀속시키는 과정을 통해 계층화 현상을 자연화한다"고 지적했다.

강화되는 것은 '개인주의 이데올로기'다. 현재 계층구조를 위협하는 은퇴 대란 징후들, 즉 중산층 예비 은퇴자들의 하위층 몰락을 지칭하는 하우스 푸어, 에듀 푸어, 은퇴 빈곤층, 노후 난민 등은 이제 무심하거나 무지한 '덜 떨어진' 개인들의 종착점이다.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으려면 스스로 발버둥치는 수밖에 없다. 국가와 지자체, 기업 등의 책임은 사라지거나 대폭 줄어들고 언론은 언론 나름대로 담론 영역에서 자신의 영향력과 권력을 강화한다. 지속가능한 복지 정책이라는 실질적이고 근원적인 해법은 들어설 자리가 없다. 언론의 각종 보도에 넋 놓고 휘둘리지 말고 치밀하게, 꼼꼼하게 끊임없이 '담론 전투'를 펼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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