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강 오백리] (10) 함양군 마천면 의탄교~휴천면 문정리 용유교

"오동나무 열매는 달강달강거리고요. 큰애기 젖가슴은 봉긋봉긋하고요.…"

의탄교에서 오도재로 오르는 길목이다. 노랫소리에 돌아보니 키 작은 아지매가 오동나무에 손을 뻗어 이파리를 따고 있다. 발밑에 있는 검은 비닐봉지가 불룩하다.

"이파리가 소독하는 데 쓰면 좋다네. 우리 마을에서는 옛날부터 변소에 많이 두었지. 옛날에는 우리 마을 이름을 노디라 했는데…."

원래는 노듸목이라고 했단다. 징검다리를 '노듸'라 했으니 다리목을 말한다. 함양군 마천면 의탄리 금계마을 이야기다. 의탄교가 놓여 있지만 마을 입구 가게는 여전히 '노디슈퍼'이고 이 일대 주민들은 더러 아직도 이곳을 노디라 말한다.

금계마을은 골짜기 안에서 제법 붐비는 곳이다. 지리산 칠선·한신·벽소령·달궁 계곡으로 들어서는 입구인데다 함양읍으로 질러가는 오도재 한쪽을 잡고 있으며 마천 골짝에서 유림면이나 산청군 금서면으로 나가는 길목이다. 함양군이 펴낸 <우리 고장의 전설집>에 따르면 60번 도로와 1023번 도로가 나기 전에는 소금을 파는 장꾼들이 하동나루에서 벽소령을 넘어 이곳을 지났고 함양 쪽에서 오는 장꾼들은 오도재를 넘어 이곳에 닿았다. 오지 골짜기 안에서 그나마 사통팔달로 이어지는 곳이었다. 지리산 둘레길 4구간 금계~동강이 개설되고 나서는 주말이나 휴일 할 것 없이 사람들 발길이 끊이질 않는 곳도 이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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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도재는 지리산제일문이라

금계마을 삼거리에서 오도재(773m)까지는 5km가 조금 넘는다. 오도재는 함양군 휴천면 삼봉산(1176m)에서 지리산으로 들어가는 고개다. 똬리를 틀듯이 구불구불 휘어지는 바람에 오르는 길이 조심스럽지만 아름다운 고갯길로 이미 소문이 날 대로 난 곳이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곳입니다. 오기가 그리 수월한 곳이 아닌데 찾아오는 관광객이 많습니다. 오도재에 얽힌 이야기도 제법 쏠쏠하고요. 가루지기타령(변강쇠전)에 보면 이곳 오도재 아래에서 변강쇠와 옹녀가 살았다 하니 호기심으로 오는 사람도 있고요."

정기수(58·함양읍) 씨는 칠선계곡과 함양읍을 왕래하는 일이 많아 오도재를 자주 드나든다며 단풍철에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 엄청나다고 말했다. 오도재 아래 지리산 조망공원은 함양군이 2006년에 세운 것으로 마천면 구양리 일대에 있다. 전망대에 오르면 천왕봉과 노고단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눈앞에 펼쳐진다. 천왕봉에 봉안된 '마고할미'를 본뜬 조형물도 있다. '천왕성모인 마고할미를 이곳에 모심으로써 국태민안의 발원터로 삼고자 한다'고 밝혀 놓았다.

자동차로 2~3분 달려 오도재에 오르면 마천면과 함양읍을 잇는 '지리산제일문'이 우뚝하다. 2007년 완공한 것으로 이곳은 함양군 휴천면 월평리에 속한다. 공원에는 지리산을 찾은 옛 선인들의 시비가 곳곳에 있다. 마을 단위로 세운 듯한 다양한 모습의 장승들도 눈에 들어온다. 처음 이곳이 조성되던 초창기에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장승들이 있고 남근석이나 남근목 등의 조형물도 여럿 세워졌다 한다. 9월 19일 자 '남강 오백리' 8회 보도에서 밝혔듯이 함양군은 <변강쇠전> 무대를 이 일대로 확신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매년 여름이면 산상 작은음악회를 한다.

임천은 오도재에서 흘러내린 구양천 물길을 거둬 마천면과 휴천면의 경계를 넘고 이내 휴천면 문정리 용유담으로 향한다.

함양읍과 마천면,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관문인 오도재 지리산제일문.

용유담에서 용과 노닐다

이곳, 용유담이다. 도저한 흐름이다. 서북쪽으로 돌면 마천면 의탄리로 거슬러 올라가는 물길이요 동남으로 돌면 휴천면 문정리를 향해 흐르는 물길이다. 위아래 사방을 휘둘러 산수가 모두 장엄에 이르렀다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지리산 동남으로 흘러내리는 물줄기들이 차례로 모여 한 물길이 되어 용유교에 닿았다.

계곡이 깊고 폭이 넓은데다 계곡 양쪽으로 온통 정으로 쪼아낸 듯한 화강암이 벽을 이루고 있다. 거기에다 제각각 다른 형상으로 빚어진 바위들이 병풍을 두른 듯, 양 옆으로 단단한 방패막이를 한 듯 도열해 있다. 시퍼런 물길은 수심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굽이굽이 돌아 거침없이 내려온 물길이 이곳에서는 숨을 죽이고 아예 드러누워 있다. 미동도 없는 고요가 깊기만 하다. 순간 아찔해진다.

송대마을에서 용유담으로 가는 길은 지리산둘레길 전설탐방로이다.

옛 사람들은 '천지폭포 쏟아지는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용이 놀던 못'이다. 용들이 우당탕거리니 그 소리가 천둥소리와 같았을 것이다. 용유담 바닥에 흩어져 더러 물 속에 잠겨버린 반석들에는 마적도사와 나귀, 아홉 마리 용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진다. 마적도사는 요란하게 놀던 용들 때문에 식량을 싣고 온 나귀 울음소리를 듣지 못한 채 장기를 두고 있었다. 계곡을 건너지 못한 나귀가 기진해서야 마적도사는 아차, 싶었다. 하지만 이미 나귀는 바위가 됐고 자책하던 마적도사는 용들을 쫓아버리고 장기판을 계곡으로 던져버렸다. 그때 부서진 장기판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는 얘기다.

또 다른 전설도 전해진다. 용유담에는 등에 승려가 입는 가사와 같은 무늬가 찍혀있어 '가사어'라고 일컫는 물고기가 살았다 한다. 지리산 서북쪽에 달궁사의 못에서 태어나 가을이면 내려와 봄이 되면 다시 올라갔다고 한다. 지리산 계곡에서만 산다는 '가사어'는 물빛처럼 투명하고 물살보다도 빨라 눈에 띄지도 잡히지도 않는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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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유담을 두고 옛 사람들의 상상과 입담은 거침이 없다. 모두 지리산 물길이 빚어놓은 이곳의 비경 때문이리라.

이뿐만이 아니다. 역사적으로는 용유담에는 점필재 김종직(1431~1492), 뇌계 유호인(1445~1494), 일두 정여창(1450~1504), 탁영 김일손(1464~1498), 남명 조식(1501~1572) 등 많은 선인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남명 조식은 1558년 '유두류록'에서 지리산을 10번 이상 올랐으며 용유동으로 들어간 것이 3번이나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용유담은 비가 부족하면 관아가 주도하여 기우제를 지낸 대표적인 장소이기도 했다. 성종 때 함양군수로 있던 김종직이 기우제를 지내기 위해 식솔들과 이고지고 오도재를 넘어 용유담으로 온 것은 널리 알려진 일화다. 무오사화 때 부관참시를 당하고 그의 글과 저서는 대부분이 불타버렸지만 함양 땅에서는 '백성을 어여삐 여긴' 김종직의 인품과 목민관으로서의 흔적이 군데군데 남아 있다. 이곳에서 10km 정도 떨어진 휴천면 남호리 동호마을 앞 '김종직 관영차밭'도 그런 곳 중 하나다.

물길은 용유담에서 오래오래 머문다. 다급하게 흘러 내려왔던 엄천강(임천)은 이곳에서 한층 깊어진 물길을 풀어내며 온종일 아홉 마리 용들과 어울려 노닌다. 그러고는 점점 붉어지는 나뭇잎들과 함께 천천히 바위계곡을 따라 송문교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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