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비춤]4대강 여파 새로운 분쟁지로 떠오른 남해안 EEZ

남해안 EEZ 골재(바닷모래) 채취 현장은 욕지도에서 남쪽으로 50㎞, 거제 남서 해안에서 63㎞ 떨어져 고속보트로 3시간은 가야 하는 곳이다.

이곳은 수산자원 보고이자 연안 자원을 지킬 중요한 길목이다. 그런데 5차 골재수급기본계획으로 2018년까지 골재 채취가 연장되자 어민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4대 강 사업으로 나온 모래가 예상량의 41%밖에 안 되고 하천 모래가 쌓이는 수변공간을 메우고 시설물을 만들어 사업 뒤 심각한 골재 부족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던 전문가의 예측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그 여파는 수산자원을 지키려는 어민과 부족한 하천 모래를 바닷모래로 채우려는 정부·자치단체의 갈등이 남해안 EEZ를 새로운 분쟁지역으로 내몰고 있다.

◇어업 피해 얼마나 될까? = 남해안 EEZ에서 골재 채취는 2001년부터 이뤄졌지만 정부가 개별 허가가 아닌 단지 지정을 통해 채취를 허용한 시점은 2008년이었다.

단지 관리권자는 공기업인 수자원공사가 맡았다. 지역별로 따로 싸우던 어민은 이때부터 거제·남해·통영 피해 대책위, 대형선망어업피해대책위가 공동 행동에 나섰다. 남해안 어민 1만 2000명에 이른다.

2010년 8월 1차 채취 연장을 할 당시 수자원공사는 해역이용영향평가 용역을 군산대 산학협력단에 의뢰했다.

군산대 측은 당시 부유사(떠다니는 모래) 확산이 발생 위치 200m 내에 머물고, 해저 지형 변화도 아래로 6∼8m밖에 없다고 했다. 또 꽃게, 붕장어, 먹장어와 같이 바다 밑바닥에서 사는 저서동물에 대한 부유사 영향도 인근에만 머물러 골재 채취 구역 생태계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 했다.

2013년 8월 통영시 욕지도에서 남쪽으로 50㎞ 떨어진 남해안 배타적 경제수역(EEZ)에서 골재 채취를 하는 모습. /남해안 EEZ해상 채취 공동대책위

하지만 어민은 대표적인 수산자원이던 꽃게가 자취를 감췄고, 새끼 방류사업을 해도 회복되지 않는 이유를 골재 채취라고 본다. 이곳은 붕장어, 먹장어, 꽃게의 대표적인 산란지였다.

현재까지 나타난 어업 피해는 △조업 구역 축소 △골재 채취에 따른 부유사 대량 발생으로 해조류 분포지 축소 △가자미, 장어류, 꽃게류 등 산란장 파괴 △해저면 파괴와 해저 지형 변화, 소음 진동에 따른 어군 미형성 등이었다.

바다 밑바닥을 그물로 끌어 바닥에 붙어사는 고기를 잡는 기선저인망, 장어와 꽃게를 잡는 근해통발, 근해 채낚기, 큰 멸치를 잡는 근해자망, 작은 멸치를 잡는 기선권현망 등이 주된 피해 대상이다.

◇"어업피해조사 약정서도 잘못됐다" = 어민은 기존 용역 결과를 믿을 수 없다며 실질적인 어업 피해 조사를 요구했다. 계속된 다툼 끝에 지난해 5월 8일 비로소 어민대책위와 수공이 약정을 체결하면서 잠시 숨을 골랐다. 약정서에는 내년 9월까지 어업피해조사를 하기로 돼 있다.

그런데 이 조사도 끝나기 전인 지난해 12월 24일 국토교통부는 남해안 EEZ에서 2014년부터 연간 1000만㎥에 이르는 바닷모래를 채취하겠다는 5차 골재수급기본계획을 확정·발표했다.

여기에 수공의 어업피해 조사도 못 믿겠다는 게 어민들 얘기다.

이정생 위원장은 "2012년 10월 8일 어업피해조사 합의서는 수산업관계법을 적용해 피해조사를 하기로 했는데, 이게 엎어졌다. 이때는 어민과 수공이 각각 추천한 감정평가법인이 어민 의견을 반영할 통로가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5월 경남도 중재로 다시 체결한 피해조사 약정서는 국가계약법에 따른다. 감정평가기관도 없다"며 "이 약정서에는 수공을 대신한 감독 권한대행을 세울 수 있는데, 권한대행이 재조사, 조사중지, 설계변경 권한까지 있다. 수공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시간만 끌고 제대로 조사를 하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약정 체결에 경남도가 가교 역할을 했다"며 정부와 경남도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공동대책위 대표는 16일 오전 통영에서 대책회의를 열고 이런 분노를 오는 29일부터 사흘간 경남도청 앞 집회에서 직접 보여주겠다며 벼르고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경남도 = 5차 골재수급기본계획 확정을 위한 의견 청취 회의였던 지난 9월 27일 여기에 참석한 경남도 관계자는 하천 모래 고갈로 대안없이 남해안 EEZ 모래 채취를 중단할 수 없는 사정을 전달했다. '채취 연장'에 사실상 찬성했다.

하지만 경남도는 "솔직히 기본계획 수립, 단지 지정, 채취 허가 등 모든 권한은 도가 아닌 중앙정부에 있다. 설령 우리가 다른 의견을 내더라도 들어주지도 않는다. 작년 회의 때 실무자가 현실적인 골재 수급 어려움을 얘기한 탓에 오해를 많이 사고 있다"며 이해를 구했다.

2009년 4대 강 사업 시작 당시 국토부가 낙동강 유역 준설에 따른 모래량 예상치는 1억 6954만㎥였지만 실제 나온 양은 4900만㎥에 불과했다. 경남에서는 4140만㎥를 예상했지만 실제 모래는 겨우 885만㎥였다. 이번 달이나 다음 달이면 하천 준설 모래는 완전히 바닥난다.

경남도 황해용 하천관리계장은 "내년 남강, 밀양강, 창녕군 등 10곳에 하천모래 준설을 허가해달라고 국토부에 신청했다. 지방하천에도 모래가 쌓이는 곳을 전수조사했다. 그 정도로 골재 채취가 어려워진 게 현실"이라며 "도는 줄곧 중앙정부(국토부)에 일방적으로 남해안 EEZ 골재 채취 연장을 하면 어업인 소요 사태가 발생한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실무자 차원에서 오해받을 일도 있었지만 남해안 EEZ 골재 채취 연장을 어업 피해 조사가 끝나고서 하라는 게 도의 공식 의견"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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