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 열고 들어서면 옛사람 정취가 솔솔

잊혀 가는 것들이 있다. 조금씩 사라지기도 하고 한꺼번에 없어지기도 한다. 이번 설에는 옛집들을 한 번 둘러보자.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겨레붙이의 원형질을 볼 수도 있고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옛 맛을 건네줄 수도 있다.
방문을 열고 스윽 들어서면 옛 사람들의 삶이 느껴진다. 지붕 아래 걸린 현판 속 글자에서는 여태껏 남아 있는 옛적 사람들의 기상과 향기도 맡을 수 있겠다.
거창군 위천면 강천리에는 동계 정온 선생의 생가가 있다. 대전~통영 고속도로에서 함양에서 빠져 나와 국민 관광지로 이름난 수승대 가는 길로 따라가다 금원산쪽으로 접어들어 조그만 다리를 건너서 오른쪽으로 꺾어들면 된다.
정온 생가에는 종손들이 살고 있다. 후손들은 정온의 제사를 지낼 때면 고사리와 미나리를 올린다고 한다. 1636년 남한산성에서 인조가 오랑캐에게 무릎을 꿇고 항복하자 임금이 욕을 보면 신하는 죽어야 한다는 주욕신사(主辱臣死) 정신에 따라 배를 갈랐고 그 뒤 뜻대로 죽지 못한 목숨을 안고 산 곳이 바로 여기인 것이다.
동계의 5세손인 정희량은 영조 4년(1728년) 정변을 일으킨 주역이었다. 영조를 내쫓고 인조 아들 소현세자의 증손인 밀풍군이 왕이 돼야 한다는 명분으로 군사를 일으켰으나 평정되어 죽고 말았다. 결국 멸문지화를 입고 족보에서도 지워졌다.
어쨌거나 정온의 생가 오른쪽 뒤로는 우렁찬 금원산이 버티고 있고 앞에는 기백산이 문필봉 노릇을 단단히 하고 있다. 앞쪽에 있는 시내는 서쪽에서 흘러와 동쪽으로 빠져나간다. 풍수지리로 볼 때 문과 무, 재물까지 겸전해 혁명을 꾀해 볼만한 자리라는 것이다.
좌안동 우함양이랄만큼 양반 기세가 등등했던 함양에는 일두 정여창 선생의 고가가 있다. 대전~통영 고속도로 지곡 나들목에서 빠져나와 오른쪽으로 접어든다. 지곡면 소재지 한가운데 자리잡았는데 길가 표지판에는 ‘정병호 가옥’이라고 돼 있다. 문화재 지정 당시 후손인 정병호씨 소유였기 때문인데, 행정 편의주의에 따른 이같은 이름 붙이기가 알아보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충효절의.백세청풍 등을 써 붙인 사랑채가 나온다. 사랑채를 돌아 일각문과 중문을 넘어 안채.아래채가 있고 뒤편으로는 가묘와 별당 안사랑채가 있다. 텔레비전 드라마 <토지 designtimesp=7739>의 촬영 장소로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많이 찾게 됐다.
사랑채 마루에 앉아 보면 늘푸른 전나무가 씩씩하다. 아마도 정여창 후손들이 전나무와 소나무를 보며 기상을 키웠을 법한데, 여자들도 사랑채에서 글을 익혔는지는 모를 일이다. 마을에는 오래 된 집들이 많이 남아 있어 한 바퀴 둘러보아도 좋다.
함양 안의에는 진양 갑부 허씨 문중의 여자가 윤씨 집안에 시집와 지은 집도 한 채 있다. 안의초등학교 옆 골목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사람이 살지 않아 솟을대문을 들어서도 썰렁하기만 하다.
건축 미학에 밝은 이들은 이 집에 대해 양식을 깡그리 무시하고 안살림하는 여자들의 편의에만 맞춰 지은 집이라고 깎아내리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평민 여자의 자신감과 당당함이 넘쳐난다고 할 수도 있겠다. 여느 부엌은 대체로 안채 오른편 옆구리에 붙어 있지만 이 집은 ㄱ자로 꺾어진 곳에 부엌이 들어앉아 있다. 안채를 좌우로 나누는 한가운데 있는 셈인데 대청에 부엌 통로도 있고 부엌 살림에 쓰는 시렁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
부엌을 중심으로 여기지 않고는 지을 수 없는 집이다. 부엌문을 열고 내다보면 집안이 한 눈에 들어온다. 곳간과 행랑채, 남편이 머물렀던 사랑채 뒤통수까지 장악이 되는 자리이다.
산청군 단성면 남사마을에도 옛집이 마흔 채 가까이 있다. 대전~통영 고속도로 단성 나들목에서 빠져나와 20번 국도를 따라 수곡.지리산쪽으로 10분 정도 달리면 나온다. 문화재로 지정된 최씨.이씨 고가가 있는데 집문을 열고 가려면 마을 한가운데 있는 은행나무집에 가서 열쇠를 얻어야 한다.
사랑채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안채가 한 눈에 들어오지만 왼쪽 중문을 통해 가면 안채가 담장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여성들 생활 공간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뛰어난 분할법이라고도 한다. 이씨 고가는 사람이 살지 않아 조금 쓸쓸한 느낌을 안겨준다.
마을 뒤쪽에는 허물어져 가는 재실(내현재)이 있다. 돌담이 아담하고 오래된 느티나무.은행나무.모과나무가 조화를 이뤄 겨울철인데도 보기가 좋다. 마을 오른쪽에는 정씨 고가가 따로 있고 한가운데는 6칸으로 엄청나게 큰 정사(精舍)가 자리잡고 있다. 크게 봐서 부자들 돈자랑한 듯한 냄새가 조금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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