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실에 선수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줄을 서서 기다리던 아이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아이들 관심은 단연 문태종 선수. 창원 LG 세이커스 농구단 주전이며 인천아시안게임 농구 우승의 주역. 내 나라 선수로 뛰어 내 나라에 금메달을 선물할 수 있어서 기쁘다는 인사말을 남겨서 국민들을 감동케 했던 선수. 그리고 무엇보다 온갖 편견과 차별을 이겨내고 한국 사회에 우뚝 선 희망의 상징. 자신들과 같은 다문화 가정 출신. 이 모든 것이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나 보다.

지난 12일 LG 농구단 홈경기 개막전에 애국가 시창 초청을 받은 다문화 어린이 합창단원을 데리고 창원농구장에 다녀왔다. 오랫동안 농구를 기다렸던 팬들의 기대도 컸겠지만 TV에서만 보던 선수들 손을 잡고 입장해 애국가를 부르는 아이들의 설렘은 하늘을 찌를 듯했다.

긴장한 나머지 손을 흔들어야 하는데 선수를 따라 꾸벅 인사를 하는 아이들, 늘 부르던 애국가인데 첫 음을 놓쳐서 허둥대는 아이들. 실수가 많았지만 얻은 것은 더 많았다. 가장 큰 것은 마음 깊은 곳에 자라는 희망, 자신감이었을 것이다.

10월 3일에는 유엔의 인종차별특별 보고관 무토마 루티에르 씨가 경남이주민센터를 방문해 경남의 차별 사례를 조사했다. 생김새가 다르다는 이유로 목욕탕 출입을 금지 당한 결혼 이주여성과 성희롱 당한 유학생 사건이 주 조사 대상이었다.

목욕탕 사건의 경우 극히 일부 특수한 사례를 침소봉대해 한국인 전체를 매도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이주민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아주 광범위하고 깊다. 목욕탕 사건은 변하기 참 힘든 우리 속 오랜 편견을 드러낸 극히 일부 사건이라는 생각이다.

얼마 전 이주민센터에 주민 한 분이 찾아와서 정색하며 항의한 사건이 있었다. 전날 센터 근처에서 외국인들끼리 다툼이 있었던 모양이다. 근처에 이주민센터가 있어 무서워서 못살겠다며 당장 센터를 옮기도록 민원을 넣겠다며 한참을 흥분하고 가셨다. 그분을 달래며 만약 한국인이 다투었더라면 어떤 말을 했을까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절망보다 희망을 본다. 맨 처음 이주민 한국어학당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을 때 수강생들에게 한국에서 가장 좋은 점이 무엇인지 물었던 적이 있다. 그때 내 예상과 달리 대부분 학생이 '친절'이라 답했다.

뭔가 혼란스러웠지만 답도 함께 찾았다. 우리 속의 선한 의지, 소수자를 돕고자 하는 의지가 결국은 더 좋은 세상을 향한 답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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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보다 키가 두 배는 큰 선수들 앞에서 힘주어 애국가를 부르는 아이들의 표정은 야무지다 못해 비장해보이기까지 했다. 아이들 뒤에서 가슴에 손을 얹고 태극기를 향한 문태종 선수를 보며 아이들이 오늘의 감동과 감격을 깊이 기억해 더 많은 인순이, 더 훌륭한 문태종이 나오기를 기도했다. 머지않은 장래에 그 기도가 이뤄질 것이라 확신한다.

/윤은주(수필가·창원다문화어린이도서관 '모두' 운영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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