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봅시다]집앞 사육장

도시에서는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다. 이웃 간 사소한 일로 언성을 높이고 얼굴을 붉히는 일이 잦다. 하지만 시골은 다르다. 이웃들이 옹기종기 모여있고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다. 좋지 않은 일이 있어도 참고 털털하게 웃어넘긴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유천마을도 그랬다.

유천마을은 언제부턴가 악취가 진동하고 파리가 많아졌다. 마을주민은 그 원인을 '축사'로 추정했지만 한 마을에 사는 이웃이기에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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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유천마을은 32가구가 산다. 전 마을이장이 30년 동안 축사를 해왔고, 주민들은 냄새로 고통을 받았지만 참았다. 그런데 전 마을이장이 주민 통보없이 축사를 외지인에게 팔았고, 외지인은 이곳에 말사육장을 만들었다./ 김민지 기자

축사 주인은 마을이장. 그는 마을 주민들의 동의로 30년 전부터 이곳에서 소와 닭을 키웠다. 주민은 축사에서 나오는 냄새로 오랫동안 불편을 겪었다. 하지만 한 집 건너면 모두 아는 사이라 눈을 감아줬다. 가족과 같은 정 때문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30년 동안 참았던 가슴 속 응어리가 터져나왔다.

이장은 이웃들 모르게 축사를 외지인에게 팔았고 외지인은 이곳에 말을 키우기로 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이장에게 따졌고, 이장은 "주민들을 위해서 그랬다"고 했다.

주민과 이장 사이에 팬 갈등의 골은 쉽게 해소되지 않았다. 급기야 마을이장은 9월 17일 사퇴했고 다음날 마을회관에서 긴급회의가 열렸다.

한 주민은 "짐승은 무조건 안 된다. 이때까지 똥냄새와 들끓는 파리 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라고 고개를 저었다. 다른 주민은 "밥 먹을 때 숟가락과 파리가 같이 들어올 정도다. 지금까지 봐줬으면 이장이 보답을 해야지, 어떻게 동네사람도 모르게 축사를 말사육장하는 사람에게 팔 수 있나"라고 가슴을 쳤다.

30년 동안 가슴 속에 쌓인 응어리는 단단했다.

전 이장은 주민들의 성화에 고개를 떨구었다. 전 이장은 "주민이 겪었던 불편은 말 안해도 알고 있다"면서 "말은 소, 닭과 달리 깨끗한 동물이라서 오히려 주민들이 좋아할 줄 알았다"고 했다. 자금 사정이 안좋았던 그는 축사를 팔아 해결하고, 또 소와 닭 대신 말을 기른다기에 기쁜 마음에 외지인에게 팔았단다.

말사육장은 마을회관에서 불과 10m 거리에 있다. 현재 말은 4마리이지만 더 늘어날 수도 있다.

말사육장 주인은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을회관에서 사정을 설명했지만 다 강경하다"고 했다.

급기야 이달 초 주민 20여 명은 마산합포구청 앞에서 말사육장 공사반대 집회를 했다.

한 주민은 "소와 닭 때문에 지금까지 시달렸는데 이젠 말이다. 말 우는 소리가 쩌렁쩌렁해 신경이 쓰여 잠이 안 온다"면서 "우리 마을에 말사육장은 절대 안 된다"고 불만을 호소했다.

이날 합포구청 대민기획관실에는 유천마을 주민과 구청 건설과, 환경미화과, 창원시농업기술센터 관계자가 모였다. 하지만 별다른 대책은 내놓지 못했다.

공무원들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어 제재는 힘들다"고 말하고 있고, 주민들은 "앞으로 마을회관 앞에서 집회를 계속 이어나가겠다"고 밝혀 말 사육장을 둘러싼 주민들의 갈등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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