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신의 바느질로 만든 양복 내 몸에 착~

대학교에 입학한 아들에게 아버지가 선물이라며 맞춰주시던 맞춤 양복 한 벌. 어떤 이에게는 가슴 한편에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경험일 테다.

'○○양복점' '△△라사'.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도시 번화가뿐만 아니라 동네 골목 어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맞춤양복점. 공중전화 부스같이 이제는 찾아보기 어려운 풍경 중 하나다.

창원 마산합포구 동성동 불종거리 한편에 짙은 남색 바탕에 묵묵한 글씨체로 쓰인 '형제양복점' 간판.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나무 벽면에 걸린 재킷과 트렌치코트 몇 벌이 시계를 거꾸로 돌린 듯한 장면을 연출한다. 가게 안쪽 작업실에서 바느질에 열중하던 얼굴이 인기척을 느끼고는 이내 웃는 낯으로 방문자를 맞는다.

이곳 주인 주장희(64·창원시 마산합포구 산호동) 씨다.

주 씨는 40여 년 경력을 가진 양복 장인이다.

사천에서 나고 자란 주 씨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양복 기술 배워보라"는 아버지 손에 이끌려 진주의 유명한 맞춤양복점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품삯도 제대로 받지 않고 심부름하고 바느질을 배웠다.

하지만 공부를 더 하고 싶었던 주 씨는 남들보다 늦게 야간학교에 진학했고 서울로 전학을 갔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주 씨는 서울 유명 양복점 봉제공장에서 일하다 진주로 돌아왔다. 서울 가기 전 일을 배웠던 곳에서 재단사로 있던 분이 개업한 양복점에서 일을 하다 1974년 그분의 추천으로 마산의 한 양복점으로 옮겼다. 재단 보조로 일하다가 군대에 갔고, 전역 후 그곳 재단사로 있던 분이 차린 양복점에서 일을 했다.

실력을 쌓은 주 씨는 1980년 양덕동 골목에 첫 가게를 열었다.

"결혼도 해야 하는데 남의 집에 있다간 이도 저도 안 될 것 같았어요."

혼자 하는 작은 가게였지만 유명 양복점에서 일했다는 소문을 탔는지 한 달에 30벌 정도 주문이 들어왔다. 일이 신났고 노동의 보람을 느끼는 날들이었다. 몇 해 뒤 성안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 마산점) 뒤편으로 가게를 옮겼다. 1995년쯤 당시 마산 제일 번화가였던 창동으로 또 한 번 자리를 옮겼다.

양복점을 그만두려던 때도 있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가게가 잘 안 됐습니다. 손 떼려고 했어요. 처남이 김해에서 피자가게를 했는데 처제가 피자 기술 배워보라고 권했어요. 한 3개월 배웠는데, 안 되겠더라고. 내가 배운 건 양복인데… 다시 돌아왔어요."

2001년 일이고 주 씨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다.

기성복의 대중화로 맞춤 양복을 찾는 이들이 뜸해졌지만 주 씨는 이 일을 손에서 놓지 못한다. "수습 시절 힘든 일 생각하면 손을 뗄 수가 없어요. 지금이라면 이해 안 되지만 그땐 조금 실수하면 무조건 맞았어요. 그렇게 고생한 것 때문에라도 도저히 그만두지 못합니다"라며 웃어넘기지만 사실은 맞춤 양복에 대한 자부심 때문이다.

"맞춤 양복을 찾는 이들은 대개 체형이 특이한 사람들입니다. 기성복이 맞지 않아요. 단 한 사람에게 꼭 맞는 옷을 짓는 매우 섬세한 일입니다. 보람 있는 일이죠. 또 손바느질로 만든 옷은 그 자체로도 예민합니다. 맞춤옷은 옷감과 옷감 사이에 공간이 있어서 습기가 많거나 비가 오면 옷감이 울어요. 햇볕 아래서는 찰랑찰랑 거리죠. 그래서 옷이 살아있다고들 합니다."

스무 살 무렵부터 이 일을 해 왔다. 지금까지 만든 양복은 어림잡아 수천 벌은 될 것이다. 그리고 한 벌 지을 때마다 수천 번 바느질을 했으니 눈 감고도 양복 한 벌 뚝딱 만들어낼 수 있을 경지에 올랐을 주 씨이지만 겸손하다.

"아직도 모르겠어요. 많이 부족합니다. 양복은 유행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계속 공부를 해야 합니다. 기회가 닿을 때마다 서울에 가요. 기능경진대회 같은 데 매년 나가려고 합니다. 상을 타려고 가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옷을 짓는지 배우려고요. 나만의 기술로는 흐름을 따라갈 수 없어요."

주 씨가 가장 최근에 주문받은 날은 9월 27일이다. 얼마 전 퇴임한 공직자라고 한다. 주위 사람들에게서 추천받아 의령에서 찾아왔단다. '고객이 몸에 딱 맞는 옷을 입고 기분 좋게 가게를 나설 때 가장 행복하다'는 주 씨는 며칠 뒤 주문한 옷을 찾으러 올 고객의 만족스러운 미소를 상상하며 오늘도 한땀 한땀 정성껏 바느질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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