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따라 내 맘대로 여행](34) 경남 함양 개평마을

황금 들판이 펼쳐진다. 지곡 IC를 통과해 함양 개평마을로 향하는 길은 누런 벼들의 향연이다. 깊어지는 가을 속에 곡식은 결실을 보고 잎들은 절정의 단풍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함양은 예부터 '좌 안동 우 함양'이라 불리는 선비의 고장이다. 함양 중앙부에 위치한 개평마을은 많은 유학자를 배출한 영남의 대표적인 선비마을로 잘 알려져 있다. 온 세상이 축제로 들썩이는 이때 고택에서 조용하게 가을을 느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지곡 IC에서 5km 정도 더 달리면 개평마을에 도착한다. 입구 개평교 옆에 표지석이 세워져 있어 찾는 데 그리 힘들지 않다.

하동 정씨와 풍천 노씨 그리고 초계 정씨 3개 가문이 오래도록 뿌리를 내리고 살아오면서 마을을 이룬 동네. 김굉필, 조광조, 이언적, 이황과 함께 조선조 5현 중 한 분인 일두 정여창과 옥계 노진 등을 배출한 곳이다.

일두 고택을 비롯한 많은 전통 가옥이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선조들 생활 모습을 그대로 엿볼 수 있다. 풍류를 즐겼던 교수정과 정여창의 명상 장소였던 개평리 소나무군락지도 남아 절경을 이루고 있다. 예스럽고 멋스러운, 그러면서도 정겨운 담장이 먼저 우리를 반긴다. 발끝에 살짝 힘을 주어 까치발을 하면 앞마당을 살짝 넘볼 수 있다.

▲ 가을 들판 너머 고즈넉한 풍경을 보여주는 함양 개평마을 풍경.

단절과 소통이 공존하는 담장 길을 따라 걸으면 일두 고택 문 앞에 서게 된다. 원래 17동이었는데 지금은 안채와 사랑채, 사당, 문간채 등 12동만 남아 있다. 고택에 들어설 때 솟을대문을 그냥 지나치면 안 된다. 솟을대문에는 나라에서 내린 정려편액인 효자문 문패가 다섯 개나 걸려 있다. 붉은 바탕에 흰 글씨의 정려편액이 한 집안에 5개나 걸린 건 흔치 않은 예라고 한다.

일두 고택은 1987년 <토지>의 최참판댁, 2003년 MBC <다모> 등 드라마 촬영지로도 익히 알려진 곳이다. 세월을 가늠하기 어려운 노송은 안채와 사랑채 담장을 오가며 위용을 보여준다. 사랑채에는 천장까지 한지로 덧댄 흔적이 뚜렷한 '충효절의'라는 글씨가 눈앞에 쏟아질 듯하다. 한지 글씨가 바래면 다시 한지를 덧대어 똑같이 필사한다고 하는데 겹겹이 붙여진 그 모습에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일두 고택에서 나오면 500년 동안 내려오는 가양주 '솔송주 문화관'이 자리해 있다. 정여창 13대손이 조상의 음덕을 기리는 제사상에 최고의 술을 올리려고 품질 좋은 햅쌀과 솔잎 솔순을 재료로 빚은 술인데 우리나라 최고의 가양주로 꼽힌단다. 대낮이지만 시음으로 권하는 한 모금을 거절할 수가 없다. 2010·2011·2012년 우리 술 품평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 정성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간다.

일두고택.

다시 담벼락을 따라 걷는다. 끊임없이 재잘대는 새소리 사이로 졸졸졸 물소리가 들려온다. 이내 일두의 산책로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종암교를 지나 종암우물과 초가로 만든 체험장을 거쳐 그 위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숙박촌과 정일품 명가가 있는데 개평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그 뒤를 돌아 소나무군락지에 발길이 닿으면 감탄이 저절로 나오는 경치가 펼쳐진다.

개평마을에서 15분 남짓 차로 이동하면 닿는 상림숲에서는 오늘(10일)부터 3일간 '함양물레방아골축제'도 열린다.

돌담이 멋스러운 개평마을 골목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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