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렇게 결혼했어요]김광진·서숙주 부부

동갑내기 김광진·서숙주(김해시 삼계동) 부부는 서로를 알게 된 지 27년 됐다. 둘 나이는 이제 마흔 살이다.

부부의 지난 시간을 관통하는 몇 가지가 있다. '소설 <소나기>' '초등학교 짝꿍' '편지' 같은 것들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많은 이가 그랬던 것처럼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에 광진 씨 역시 마음을 빼앗겼다. 유독 그랬던 것 같다. 아마 사춘기가 겹쳤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무렵 한 여자아이, 숙주 씨가 바람처럼 눈에 들어왔다. 마치 <소나기> 속 여주인공을 만난 느낌이었다.

"제가 소설에 너무 빠져있었기 때문이었을 거예요. 그때는 정말 그 여자 주인공처럼 느껴졌어요. 우연하게 짝지까지 됐으니 얼마나 기뻤겠어요. 그런데 짝지를 정기적으로 한 번씩 바꾸잖아요.

저는 계속 같이 있고 싶은 마음에 용기를 냈어요. 선생님께 '숙주와 또 짝지 하고 싶다'고 쪽지로 말씀드렸죠. 선생님이 참 고마운 분이셨어요. 짝지를 다시 정하게 됐을 때, 우연인 척하면서 저와 숙주를 나란히 앉혀 주신 거죠."

광진 씨는 초등학생이기는 했지만 가슴 뜨거운 사춘기 남자이기도 했다. 12월 25일에 크리스마스카드를 주면서 '좋아한다. 앞으로도 잘 지내고 싶다'는 마음을 전했다. 숙주 씨는 그냥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광진 씨 마음이 초조해진 건 많지 않은 시간 때문이었다. 겨울방학, 그리고 개학 후 얼마 지나면 곧 졸업이었다. 그렇다고 별 달리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둘은 그렇게 졸업 후 다른 학교로 가면서 얼굴을 볼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광진 씨는 연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 당시만 해도 집에 전화하거나 직접 만난다는 건 쉽지 않은 분위기였죠. 그래서 계속 편지를 보냈습니다. 숙주는 저와 같은 마음까지는 아니었지만, 친구로서 답장해 주었고요. 그렇게 학창시절 내내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둘 다 대학생이 된 후로는 좀 소원해졌다. 그 사이 광진 씨는 군대를 다녀왔다. 그런데 다시 숙주 씨가 떠올랐다.

"동창회 사이트가 한창 인기일 때였어요. 저는 실제로 동창회 모임에 나가지는 않았고요, 친구들을 통해 숙주 연락처만 알아냈죠."

용기 내어 전화를 했다. 그리고 부산 서면에서 직접 만나기로 했다. 초조하게 기다리는 광진 씨 어깨를 누군가 뒤에서 쳤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고개를 돌렸다. 초등학교 졸업 후 10년 만에 다시 본 숙주 씨 얼굴이었다. 광진 씨에게는 여전히 소설 <소나기> 속 여주인공, 그 느낌 그대로였다.

그날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공유할 수 있는 같은 기억은 둘 마음을 엮어 주었다. 그날 광진 씨는 숙주 씨 손을 살며시 잡았다. 숙주 씨도 뿌리치지 않았다.

그렇게 친구 같은 연인이 되어 7년 넘게 연애했다. 긴 시간 함께하다 보니 시기의 문제였지, 결혼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 다만 오토바이를 즐겼던 광진 씨가 큰 사고를 당했을 때, 서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전치 14주였고, 의사 선생님은 앞으로 상황에 대해 불안한 말을 하기도 했다. 숙주 씨가 병원에서 살다시피 하며 간호했다. 광진 씨는 몸이 그러니 마음도 지쳐갔다. 그래서 숙주 씨를 놓아주어야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러한 상황을 다잡아 준 것 역시 숙주 씨였다. 둘은 다시 몸과 마음을 건강히 다스린 끝에 지난 2005년 결혼했다.

광진 씨는 되돌아보면 숙주 씨 말고 다른 사람에게 눈 돌려본 기억이 없다. 대학교 때 단체 미팅 몇 번 한 것 정도? 숙주 씨만 마음속에 품고 있었고, 또 지금 그러고 있다. 27년이라는 시간이다. 앞으로의 시간에 비하면 많은 것이라 할 수도 없겠다.

광진 씨는 7살 된 딸아이 얼굴을 쳐다본다. 13살 때 만난 숙주 씨 얼굴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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