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따라 내 맘대로 여행] (33) 충남 공주 갑사

'춘마곡 추갑사(春麻谷 秋甲寺)'라는 말이 있다. 봄에는 공주 마곡사, 가을에는 갑사의 정취가 빼어나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굳이 가을이 아니라도 갑사는 한번은 꼭 가봐야 할 사찰이다. '하늘과 땅과 사람 가운데서 가장 으뜸간다'고 해서 갑등의 이름으로 갑사가 되었다고 전해지니 더욱 그 모습이 궁금하기도 했다.

유명한 절로 향하는 초입은 시끌벅적하다. 속세와 절 사이 간극에서, 마치 통과의례 같다. 찬찬히 한 걸음씩 옮기다 보면 사람들 소리가 점점 잦아들고 새소리와 물소리가 가까워진다. 비로소 세상과 멀어진다.

갑사 입구 오리숲에서 금잔디고개에 이르는 약 3km 계곡은 아직 초록 세상이다. 오리숲은 옛날 갑사 경내로 가는 길에 소나무와 느티나무 숲이 약 2km(5리) 이어져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길 중간 산책로로 이어진 샛길에는 힘을 다한 나뭇잎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부스럭거린다. 가을이 한층 다가왔음을 느낀다. '바스락' 낙엽을 지르밟고 아무 곳에나 걸터앉아 햇볕을 쬐며 책이라도 읽으면 딱 좋을 길이 갑사로 향하는 길목에서 유혹한다.

사찰로 들어가는 길에는 세 개의 문이 있다. 느티나무가 든든히 옆을 지키는 일주문을 지난다. 네 명의 사천왕이 동서남북을 지키는 사천왕문을 통과한다. 사천문을 통과하면 울창한 숲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해탈문을 통과하면 부처님 땅인 사찰 내부에 이를 수 있다. 가는 길 내내 세월이 가늠되지 않는 울창한 나무들이 마치 우리를 굽어보듯 적당히 햇볕을 가려주며 길을 안내한다.

1600년 동안 제자리를 지킨 갑사에 다다랐다. 계룡산에 남아 있는 전통 사찰 중 제일 오래된 곳이다. 통일신라시대에는 화엄종 10대 사찰이었다. 삼국시대 초기 백제 구이신왕 원년(420)에 고구려에서 온 아도화상이 창건했다는 설이 있다. 조선 세종 6년에 일어난 사원 통폐합에서도 제외될 만큼 일찍이 이름이 났던 절이었단다. 세조 때는 오히려 왕실의 비호를 받아 <월인석보>를 판각하기도 했는데 1597년 정유재란 당시 전소했다. 선조 37년에 대웅전과 진해당 중건을 시작으로 재건되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렀다.

불자가 아니더라도 갑사의 풍경은 누구나 감탄을 자아낼 만하다. 단청은 퇴색되고 무늬의 흔적만 남아 있는 갑사 강당 등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기교를 부리지 않은 웅장함에 마음이 경건해진다.

저마다 어떤 간절함을 가지고 있을까? 한참을 자신을 낮추고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고즈넉한 사찰은 계절을 한껏 머금어 고요하면서도 아름답다. 언제부터 자리를 잡았을지 모를 고목들이 위엄을 자랑한다. 가늠하기 힘든 시간 동안 씨를 내리고 꽃을 틔우고 지기를 반복했을지 모를 각종 야생화가 곳곳에서 생명을 뽐내고 있다.

천년 고찰 갑사에는 지정 문화재만 국보인 갑사 삼신불괘불탱화(국보 제298호) 1점을 비롯해 보물 5점, 도 유형문화재 7점, 문화재자료 5점 등이 있다.

대웅전 삼장탱화, 삼성각 칠성탱화 등 비지정 문화재도 다수라고 하니 불자가 아니더라도 그 모습들을 하나하나 찾아 들여다보면 두 손이 절로 모인다.

갑사의 또 다른 여유는 계곡을 따라 걷는 것이다. 갑사 구곡은 일제강점기 윤덕영이 계룡산에 들어와 간성장이라는 별장을 짓고 계곡을 따라 올라가며 경치가 빼어난 곳을 이룬 곳마다 큰 바윗돌에 구곡경물을 설정해 놓은 것이다. 제1곡 용유소(용이 노니는 소)에서 제9곡 수정봉(산봉이 수정처럼 맑고 깨끗한 백색을 띤 암석)까지 주로 용과 닭을 주제로 경물을 지어 놓았다.

청아한 물소리가 이끄는 대로 갑사 구곡을 따라 걷다보면 어느새 가을은 발밑에 다가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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