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강 오백리] (9) 남원시 산내면 람천교~함양군 마천면 의탄교

해탈교(解脫橋)다. 달궁계곡과 뱀사골을 따라 우르릉 우당탕, 제법 요란하게 내려온 물길은 람천과 합류해 산내면 입석 들판을 굽어 돌면서 이미 순해졌다. 흐름은 느릿해졌고 물소리는 잦아들었다. 만수천 물길과 람천이 합류해 람천교를 지나고 곧 해탈교에 이른 것은 5분이나 될까 싶다.

해탈교는 남원시 산내면 백일리와 입석리를 잇는다. 백일리에 놓인 지방도 60호선에서 해탈교를 건너야 실상사로 갈 수 있다. 다리 건너에는 마을이 없다. 강물이 부려놓은 평평하고 너른 들판과 실상사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해탈교는 달리 '실상사 다리'다.

실상사는 흩어진 지기(地氣)를 모으고 지켜

해탈교 입구에는 백일리 주민 몇이 벌써 자리를 잡고 있다. 첫물 가을걷이를 했을까. 밤, 도토리묵, 고구마 등 전을 펼쳐놓았다. 절에 들어가던 걸음들이 잠시 멈춰선 채 구경을 한다. 그 옆에 돌장승 한 기가 서 있다. 1963년 홍수 때 한 기가 떠내려갔고 그후 남은 돌장승이다.

예전에는 해탈교가 있던 자리에 징검다리가 있었다. 실상사 승려들이나 람천 건너편으로 들일 가는 주민들이 주로 드나들었다. 섶다리가 있기도 했지만 뱀사골에서 큰물이 내려오면 금방 쓸려가곤 했다. 지금의 해탈교는 1983년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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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마(태풍) 때 다리가 떠내려가는 줄 알았어요. 저기까지 물이 차올랐거든요."

입구에 있는 실상마트 주인은 물난리 때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르는지 목소리가 금세 커졌다.

다리를 건너자니 지금은 실상사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 주민인지 관광객인지 구별이 어렵다. 해탈교를 건너면서 만나 실상사 경내까지 동행한 김종인(60·산내면) 씨는 우리나라에서 기가 가장 센 곳이 실상사라고 말했다.

해탈교 입구. 마을 주민들이 가을걷이 한 밤, 고구마 등 전을 펼쳐 놓았다.

"실상사가 흥하면 일본이 망하고 일본이 흥하면 실상사가 망한다 했다지요. 이곳이 흩어져 있는 땅 기운을 모아서 나라를 지킨다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실상사 보광전은 지리산(1915m) 천왕봉을 향해 있다. 거기에다 약사전 철조여래좌상은 마치 독대하듯이 천왕봉을 정면으로 보고 앉아 있다.

"철조여래좌상과 천왕봉이 일직선으로 만난다네요. 여래좌상과 천왕봉이 서로 좋은 기운을 계속 전부 끌어들인다고 하더군요."

언제부터 전해져온 것인지 모를 이야기는 실상사에 국보인 백장암 삼층석탑을 비롯해 보물 11점 등이 있어 사찰로는 가장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보다 더 흥미롭다.

실상사 경내 보광 전 앞 석탑과 석등. 지리산과 마주하고 있다.

실상사는 신라 흥덕왕 3년(828)에 홍척 스님이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현재 실상사가 사람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것은 이름난 천년 고찰이어서가 아니다. 이곳이 '골짜기 안 부처의 집'이 아니라 '중생들과 함께 현재를 사는 부처의 집'이기 때문이다. 실상사는 동시대 민중들과 함께해왔다. 일제강점기에는 의병 활동 근거지로, 수십 년 전부터는 사회 변혁의 터전으로서 그 역할을 자청해왔다. 생명평화운동, 귀농귀촌운동, 환경운동, 대안교육 등에 중심을 두고 지역민과 함께 목소리를 높여왔다. 최근 실상사를 중심으로 산내면, 인월면으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는 이유다.

지금도 실상사 경내 3층 석탑 앞에는 '세월호, 지리산 천일기도' '지리산댐 반대, 강은 흘러야 한다' '지리산 케이블카 유치 반대' 등 현수막과 대자보가 붙어 있다.

사방 골짝물이 지리산에 닿아 있다

실상사를 넘어온 람천 물길은 어느새 경남 함양군 마천면 가흥리로 들어선다. 도 경계와 시·군 경계를 넘어섰다. 물길은 실뭉치를 풀어놓은 듯 끝이 없다. 산청군 생초면에서 거슬러 올 때는 임천(엄천강)은 그저 남강 지류였다. 하지만 물길은 또 다른 물길로 이어지고, 다시 물길은 마을로 골짝으로 산으로 천지사방으로 이어졌다.

결국은 지리산(1915m)이다. 앞서 이야기한 바 있지만 지리산을 빼놓고 남강을 이야기하기란 어렵다. 남강 상류에 있는 람천(광천)과 임천(엄천강), 중류에 있는 덕천강 물줄기 등이 모두 지리산 자락을 끼고 휘돌아나온다. 혹자는 세 치 혀로 갖은 말을 다해도 다 말할 수 없는 곳이 지리산이라 말한다.

이중환(1690~1756)은 <택리지>(擇里志)에서 "지리산은 남해 가까이 있다. 백두산 줄기가 끝나면서 생긴 산으로 일명 두류산이라고도 한다. 세상 사람들은 금강산을 봉래, 지리산을 방장, 한라산을 영주라 하는데, 이것이 이른바 삼신산(三神山)이다"라고 했다.

지리산국립공원관리공단(이하 관리공단)에 따르면 지리산에는 1500m 이상의 봉우리가 18개, 1000m 이상의 봉우리가 40여 개다. 주봉은 천왕봉이다. 서쪽 끝의 노고단(1507m), 서쪽 중앙의 반야봉(1751m) 등 3봉을 중심으로 하여 동서로 100여 리에 이른다.

자연 생태계로서도 지리산은 보고다. 관리공단에 따르면 지리산에는 천연기념물인 반달가슴곰(329호), 수달(330호), 하늘다람쥐(328호), 사향노루 등을 비롯해 동식물 수백 종과 지리산에서만 있는 식생 분포를 볼 수 있다. 이는 지리산 물은 '약수와도 같다'는 말을 내세우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여기에다 골짝골짝 깃든 문화재 또한 주목할 만하다.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국보 12호)을 포함한 8점의 국보와 56점의 보물이 있다.

현재 행정구역에 따르면 지리산은 전남·북, 경남 등 3개 도와 5개 시·군, 15개 면에 걸쳐 있다.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지리산은 흙이 두툼하고 기름져서 온 산이 사람 살기에 적당하며 산 속에는 100리나 되는 길과 골이 있다"고 말한 그대로다.

산 하나에 수많은 사람과 마을이 깃들고 수많은 물길과 길이 얽혀 있다.

지리산에는 천왕봉에서 노고단에 이르는 주능선을 두고 두 개의 큰 강이 흐른다. 바로 남강과 섬진강이다. 이 가운데 남강은 심원, 뱀사골, 한신, 백무동, 칠선 등 북쪽으로 흐르는 골짝 물들을 다 모아 함양, 산청, 진주, 의령, 함안으로 물길을 잇는다.

하지만 이곳 마천면 소재지에서 덕전천을 따라 거슬러 가자면, 지방도 1023호선에서 왼쪽으로 백무동과 한신계곡이 골짝을 이룬다. 곧장 가면 벽소령이다. 단지 길목에 들어섰을 뿐인데 골짜기마다 늘 광대무변이라, 마치 넓고 끝이 없는 한 가운데 놓인 듯하다.

칠선계곡 물길도 임천으로 흘러들고

마천면 가흥리를 빠져나온 람천은 어느새 임천(엄천강)으로 불린다. 강을 끼고 지방도 60호선은 함양군 유림면까지 이어져 있다. 그런데 의탄리에 닿기 전이다. 지방도 60호선 앞에 석문을 연상케 하는 터널이 도로 위에 솟아 있다. 맨 위에는 '방장제일문'이라고 적혀 있다. 이곳이 지리산으로 들어가는 입구다.

그런데 임천 물길 쪽으로 구조물 하나가 있다. 들여다보니 K-water 남강댐관리단에서 1994년 설치한 '마천 수위우량국'이다. 이곳은 낙동강 수계 임천으로 하천 수위와 우량관측을 통해 하천 상황을 실시간 카메라 촬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천면을 지나오면서 강폭은 넓어졌고 수량은 눈에 띄게 불어났다.

칠선계곡 입구에 있는 벽송사.

의탄리 어귀에 이르자 의탄교보다 강 한가운데 공사 현장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크레인을 올리고 강바닥을 긁으며 한창 작업 중이다. 칠선계곡으로 가기 위해서는 의탄교를 건너야 한다. 다리 난간 양쪽으로 바퀴인 듯, 선녀의 가락지인 듯 둥근 조형물이 색다르게 다가오기도 한다. 의탄교는 제법 길이가 긴 다리다. 그런데 폭이 좁아 자동차가 겨우 한 대밖에 드나들 수 없다. 반대편 차량이 도착했다가 이쪽에서 가야 하니 딱 '외나무다리'와도 같다.

계곡을 잠시 따라가 칠선교를 건너면 벽송사와 서암정사로 가는 길이다. 벽송사는 한국전쟁 당시 불탔다가 최근에 복원했다. 입구에 있는 조선시대 목장승은 밤나무로 만든 것인데 이 중 하나는 불에 탄 듯하다. 당시 벽송사는 인민군 야전병원으로 이용됐다고 한다.

대방광문 석굴에서 바라본 서암정사.

특히 이곳 벽송사에서 송대마을로 가는 산길은 빨치산 루트로 알려져 있다. 비트로 추정되는 곳도 눈에 띈다. 이곳은 지리산 둘레길 4구간으로 포함돼 오히려 최근 많은 사람이 드나들고 있다.

벽송사 아래 서암정사는 특이하다 못해 특별한 절이다. 자연 암반에 불상을 조각한 석굴 법당이 있고 붉은 빛의 대웅전이 햇빛에 눈부시게 서 있다. 칠선계곡의 선녀들이 석굴 속에서 나올 듯하고 마치 극락세계가 거기 있을 듯해 이미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잡고 있다. 서암정사는 승려 원응이 한국전쟁 당시 죽은 수많은 원혼들을 달래기 위해 1989년에 시작해 10년에 걸쳐 불사했다. 엄숙함과는 달리 오히려 화려하고 활달한 기운으로 가득하다.

서암정사 종각 앞에 서면 빨치산 활동 근거지였다는 두지동과 그뒤 제석봉, 천왕봉이 먼발치에 들어온다. 경내를 돌아나오는데 황목련나무에서 붉은 씨앗이 후두둑 사방으로 흩어진다.

임천(엄천강)은 마천면 창원리를 지나 휴천면 문정리로 향한다. 이제 용유담에서 시퍼런 물길을 풀어놓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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