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비춤]밀양시민 연대자 정수 씨

10년 동안 밀양 싸움이 계속됐지만 모르는 사람은 모른다. 밀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정수(54·사진) 씨도 그랬다. 밀양에서 살면서도 몰랐다. 지난해 이맘때 그의 삶은 할매들을 만나면서 바뀌었다. 삶의 전환점이었다고 그는 표현했다.

밀양 송전탑 취재 때 부북면 위양리 화악산 127번 농성움막에서 자주 만났던 그다. 지금도 그는 다시 지은 마을 앞 움막에서 할매들과 앉아 있을 때가 잦다.

할매들이 그에게 붙여준 별명은 '밀양 연대자 여자 1호'. 단체 소속이거나 활동가도 아니다. 연대자들과 주민들이 모이는 밀양장터에 내놓을 손수건에 수를 놓으면서 지난 이야기를 풀었다. 옆에서 민화투를 치던 할매는 "기사 나가면 집에서 후둘키(쫓겨) 날낀데"라고 했다.

그는 서울에서 줄곧 살다 20여 년 전 시댁인 밀양으로 왔다. 시어머니 돌아가시고 작은 건설업체를 운영하며 아이들을 키웠다.

아이들 취직하고 대학 보내고 나니 글을 쓰고 싶었단다. 부산의 인문학 모임을 드나들던 어느 날이었다. 친구가 보이지 않아 전화를 했더니 127번 움막에 있다고 하더란다. "'친구가 송전탑 모르나' 하는데, 밀양에 살면서도 잘 몰랐어요. 애써 외면했는지도 모릅니다."

그제야 '밀양', '765㎸'를 검색해서 봤는데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여태껏 나이만 먹고 뭐하고 살았나?' 생각하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다음날 바로 127번 움막에 올랐다.

움막에서 만난 할매들의 모습과 이야기는 충격이었다. 공사 들어오면 목에 감을 쇠사슬에 죽겠다며 파놓은 무덤이 그랬다. "어머니들이 설명을 하는데 나 같은 죄인이 없더라고요."

한 할매가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는데 한참만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밀양에서 왔다하니 할매들이 믿지 못하더란다. "펑펑 우시는 거예요. 대책위 사람 말고 지금까지 밀양사람이 연대하러 온건 처음이라면서. 너무 죄스럽고. 같이 부둥켜안고 울었죠."

집에 돌아와 밤잠을 설치다 공사도 연기하고 다음날 짐을 꾸려서 다시 움막에 올랐다. 발길을 끊지 못한 그는 그때부터 '127번 할매지킴이'가 됐다.

지난 1년 동안 절반을 움막에서 할매들과 함께했다. 같이 밥지어 먹고, 아플 땐 병원, 목욕탕에 모시고 다니면서. 서로가 한 식구 같고, 안 보면 안 되는 사이가 됐다. 시어머니 같은 덕촌 할매를 많이 따른단다.

지난 6월 11일 행정대집행 때 많이 힘들었다고 했다. 큰일이 날까 봐 걱정이었다. 철탑이 서면서 어르신들이 실망하지 않을까 걱정도 들었다.

할매를 만난 것이 삶의 전환이라고 할 정도로 그는 많이 바뀌었다. "내 가족, 내 생각만 하고 편하게 편승해서 살아왔는데 많이 생각했고 달라졌어요. 정의를 실천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혼자 군소리하는 게 아니라 이제는 옳지 않은 것은 이야기할 수 있게 됐어요." 그는 스스로에게도 잘했다고, 잘할 수 있다고 '토닥토닥' 한다.

'밀양 연대자 여자 1호'가 생각하는 '연대'는 뭘까? "손잡아주고, 같이 있어주고 대단한 것이 아니에요. 순수한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입니다. 정치적인 것과 다르죠."

안타까움도 전했다. 밀양 사태에서 가장 큰 피해는 이웃 간 반목, 마을공동체 파괴, '외부세력'이라며 편을 가르는 행태들이었다. "사람이 가장 안 되는 게 역지사지인 것 같아요. 제발 한 번 돌아봐 줬으면 좋겠어요. 내 부모고 내 땅이라면 그럴 수 있을까? 너무 심했어요. 너무 이기적이죠."

그는 할매들과 이어진 끈을 계속 가져가고 있다. 밀양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고, 할매들은 송전탑이 섰지만 끝나지 않았다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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